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11/23)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6).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지내 오고 있다. 성경을 늘 가까이하며 ‘매일의 양식’으로 받아들이자는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의 초대
    최후의 심판 때는 선인과 악인이 갈라질 것이다. 기준은 놀랍게도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냐는 것이다. 이웃의 작은 이들을 예수님을 대하듯 하였냐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는 묻지 않으신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그들을 가를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십니다.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진정으로 그렇게 고백하면 그분은 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주십니다. 평범한 이 진리를 다시 기억하며 실천하라는 것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교훈입니다. 그러니 구원을 죄와 연관된 것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에 구원이 달린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며 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도 이웃에게 행한 것이 ‘예수님 당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해야 할 ‘작은 이웃’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제쳐 놓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상처 주면서 ‘사랑의 길’을 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왕이란 딱딱한 표현입니다. 누구나 그 앞에선 벌벌 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왕이 아니심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그분은 사랑의 왕이십니다. 오늘만큼은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며 주위의 ‘작은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dies irae[연송(진노의 날에)위령미사 sequesia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그들을 가를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그리스도 왕 대축일(11/23)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6).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지내 오고 있다. 성경을 늘 가까이하며 ‘매일의 양식’으로 받아들이자는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의 초대
      최후의 심판 때는 선인과 악인이 갈라질 것이다. 기준은 놀랍게도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냐는 것이다. 이웃의 작은 이들을 예수님을 대하듯 하였냐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는 묻지 않으신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그들을 가를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십니다.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진정으로 그렇게 고백하면 그분은 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주십니다. 평범한 이 진리를 다시 기억하며 실천하라는 것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교훈입니다. 그러니 구원을 죄와 연관된 것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에 구원이 달린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며 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도 이웃에게 행한 것이 ‘예수님 당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해야 할 ‘작은 이웃’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제쳐 놓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상처 주면서 ‘사랑의 길’을 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왕이란 딱딱한 표현입니다. 누구나 그 앞에선 벌벌 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왕이 아니심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그분은 사랑의 왕이십니다. 오늘만큼은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며 주위의 ‘작은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dies irae[연송(진노의 날에)위령미사 sequesia
    
    
    
    
    
    

  2. guest 님의 말:


    그리스도 왕 대축일(11/23)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6).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지내 오고 있다. 성경을 늘 가까이하며 ‘매일의 양식’으로 받아들이자는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양 떼를 찾아 보살펴 주실 것이라 한다. 전쟁으로 흩어진 백성을 모으실 것이란 말씀이다. 이방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 양들을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되살아나셨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왔듯이 부활 역시 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아담으로 모든 이가 죽음을 맞게 되었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는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제2독서).
      제1독서
      <너희 나의 양 떼야, 나 이제 양과 양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4,11-12.15-17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너희 나의 양 떼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20-26.28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 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dies irae[연송(진노의 날에)위령미사 sequesia
    
    
    
    
    
    

  3. guest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복사회합때 아이들이 한 얘기가 떠올라

    혼자 웃음을 지으며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복음 말씀과 함께 느낌을 써오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한지요.

    복음 말씀이 어려울수도 있을텐데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서로가 재재거리며 얘기를 하는데

    어찌나 이쁘던지요.

    너무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양과 염소에 비유해서도~~

    그리고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도

    이젠 손을 내밀어 잘 놀아야 양이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린양이 나쁜 환경에서 자라면

    고약한 염소로 돌변한다고…

    그래서 나쁜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순한 양이 되려면

    주일학교에 열심히 나와야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한다고~~

    ㅎㅎㅎ 정말 이쁘지요?

    제가 아버지께 떠는 수다보다

    이녀석들의 수다가 한수 위더라구요.

    살짝 밥을 했는데 아이들이 반찬을 하고,

    상을 차리고,수저까지 놓더군요.

    참 기쁜 하루였습니다.

    한주간 너무나 바쁘게 허덕였는데

    오늘 이 기쁨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 재재거리고 내일 말썽을 부린다 해도 마냥 이쁜 아이들!

    그렇죠?

     

    저역시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어느쪽일까?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쪽 저쪽 아무데도 아니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습니다.

    온순한 모습으로 주인의 말에 귀기울이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저였는지~~

    작은 일에 주저앉으며 남탓을 하진 않았는지~~

    겉은 양의 모습으로

    속은 염소의 모습이 되어 선을 위해 악을 행하고,

    악을 위해 선한 양의 모습은 하지 않았었는지

     반성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한다지만 진정한 사랑의 나눔이었는지~~

    혹여 있는자에 대한 고개숙임이 사랑인줄로 착각하며

    저의 목을 교만으로 뻣뻣하게 만들고,

    악과 선의 갈림길에서 늘 고민하고 계산하진 않았는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들어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자기 왼쪽에 세울 것이다.” 라고 하신

    이 말씀이 마음 깊은 곳에 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장례미사때 늘 고민에 빠져 보는 그런 기분으로~~

    봉사를 한다면서

    진정한 사랑의 움직임이었는지를 반성해 보았고

    분주히 움직이지만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식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아버지께서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너무도 부족한 모습만이 떠 오릅니다.

    가장 작은 이에게 해 주는 것이

    아버지께 해 주는 것이라 했는데

    과연 제가 그랬는지~~~

    아버지!

    정말 부족한 제가 아버지 말씀에 귀기울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어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설계하는 기쁨의 삶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작은 움직임에 사랑을 싫어

    기쁨과 행복을 전하며

    언제 어디서든 한 모습으로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는 기름이 되게 하소서.

    저 때문에 아버지께서 마음 아파하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구원에 목메는 어리석은 딸이 아니라

    구원을 믿고 실천하는 딸이 되게 하소서.

  4.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복사회합때 아이들이 한 얘기가 떠올라

    혼자 웃음을 지으며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복음 말씀과 함께 느낌을 써오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한지요.

    복음 말씀이 어려울수도 있을텐데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서로가 재재거리며 얘기를 하는데

    어찌나 이쁘던지요.

    너무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양과 염소에 비유해서도~~

    그리고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도

    이젠 손을 내밀어 잘 놀아야 양이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린양이 나쁜 환경에서 자라면

    고약한 염소로 돌변한다고…

    그래서 나쁜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순한 양이 되려면

    주일학교에 열심히 나와야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한다고~~

    ㅎㅎㅎ 정말 이쁘지요?

    제가 아버지께 떠는 수다보다

    이녀석들의 수다가 한수 위더라구요.

    살짝 밥을 했는데 아이들이 반찬을 하고,

    상을 차리고,수저까지 놓더군요.

    참 기쁜 하루였습니다.

    한주간 너무나 바쁘게 허덕였는데

    오늘 이 기쁨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 재재거리고 내일 말썽을 부린다 해도 마냥 이쁜 아이들!

    그렇죠?

     

    저역시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어느쪽일까?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쪽 저쪽 아무데도 아니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습니다.

    온순한 모습으로 주인의 말에 귀기울이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저였는지~~

    작은 일에 주저앉으며 남탓을 하진 않았는지~~

    겉은 양의 모습으로

    속은 염소의 모습이 되어 선을 위해 악을 행하고,

    악을 위해 선한 양의 모습은 하지 않았었는지

     반성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한다지만 진정한 사랑의 나눔이었는지~~

    혹여 있는자에 대한 고개숙임이 사랑인줄로 착각하며

    저의 목을 교만으로 뻣뻣하게 만들고,

    악과 선의 갈림길에서 늘 고민하고 계산하진 않았는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들어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자기 왼쪽에 세울 것이다.” 라고 하신

    이 말씀이 마음 깊은 곳에 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장례미사때 늘 고민에 빠져 보는 그런 기분으로~~

    봉사를 한다면서

    진정한 사랑의 움직임이었는지를 반성해 보았고

    분주히 움직이지만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식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아버지께서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너무도 부족한 모습만이 떠 오릅니다.

    가장 작은 이에게 해 주는 것이

    아버지께 해 주는 것이라 했는데

    과연 제가 그랬는지~~~

    아버지!

    정말 부족한 제가 아버지 말씀에 귀기울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어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설계하는 기쁨의 삶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작은 움직임에 사랑을 싫어

    기쁨과 행복을 전하며

    언제 어디서든 한 모습으로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는 기름이 되게 하소서.

    저 때문에 아버지께서 마음 아파하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구원에 목메는 어리석은 딸이 아니라

    구원을 믿고 실천하는 딸이 되게 하소서.

user#0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