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대림 제1주간 화요일(12/2)


    말씀의 초대
    철부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그들은 기적을 보았고 기적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기에 그분 안에 하느님의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이끄심이었다. 주님께서 내려 주신 은총이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르면 누구나 이런 은총을 만나게 된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1-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왜 그들은 못 보고 제자들은 볼 수 있었는지요? 주님께서 보여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보여 주시고자 해도 그럴 자격이 없었거나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입니다. ‘하늘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지적으로도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예언자답게 사는 것이 먼저입니다. 예언자가 예언자답게 살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임금은 권력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권력 역시 위임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이 세상의 권력이지 ‘저세상’까지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위임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총이 함께합니다. 착각하기에 사람을 괴롭힙니다. 복음의 백부장은 한낱 종을 위해 자신을 숙였습니다. 기적을 받을 사람답게 행동했던 것입니다(마태 8,5-13 참조). 우리 역시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오 주없인 살수없네 / 인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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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1주간 화요일(12/2)


      말씀의 초대
      철부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그들은 기적을 보았고 기적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기에 그분 안에 하느님의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이끄심이었다. 주님께서 내려 주신 은총이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르면 누구나 이런 은총을 만나게 된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1-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왜 그들은 못 보고 제자들은 볼 수 있었는지요? 주님께서 보여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보여 주시고자 해도 그럴 자격이 없었거나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입니다. ‘하늘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지적으로도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예언자답게 사는 것이 먼저입니다. 예언자가 예언자답게 살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임금은 권력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권력 역시 위임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이 세상의 권력이지 ‘저세상’까지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위임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총이 함께합니다. 착각하기에 사람을 괴롭힙니다. 복음의 백부장은 한낱 종을 위해 자신을 숙였습니다. 기적을 받을 사람답게 행동했던 것입니다(마태 8,5-13 참조). 우리 역시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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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대림 제1주간 화요일(12/2)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은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다윗은 유다 지파 출신으로 임금이 되었으며, 그의 아버지가 ‘이사이’였다. 이 집안은 유명해진다. 메시아를 배출할 가문으로 알았기 때문이다(제1독서).
      제1독서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를 것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1-10 그날에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늑대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어린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젖먹이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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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요즈음 며칠 동안  이곳 사이버성당이 문이 닫혀
    들어오지 못해  마음이 산란하였습니다
    사실 몇 년동안 이곳에서 복음을 묵상면서 힘들고
    어려 울때도 많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생각이 사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몸에 배어버린 복음묵상을(사실 아직도 초보수준이지만)
    하는 것이 저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푸념도 하고 기쁘면 기쁘다고 수선도 피고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손이 가는대로 독수리타법으로 했던 
    복음묵상을 하지 못하고 지낸 며칠동안이 몇 년이 지난 것 같게
    느껴집니다

    반성도 많이 했지요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있을 때 잘할 껄 후회도 하면서
    평소에는 하루에  수차례 사이버성당을 방문했지만
    문이 닫힌 며칠동안은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마음은 아마 수 천번  방문했던 것같습니다
    이제...
    아직도 제대로 복구가 되지 않앗지만 어설프나마 이렇게 복음묵상을
    다시 시작하게 되어 기쁩니다
    다짐도 했지요 
    이제부터는 게으름도 피지 않고 열심히 복음묵상도 하면서
    당신의 사랑을 전해야겠다구요

    사랑이신 주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저의 변덕이 언제 변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열심히 해야겠다는
    지금의 이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으며
    당신께서 마련해주신 이곳 사이버성당에서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당신의 사랑을 전하게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힘들고 지칠지라도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복음묵상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봅니다

    “보라,
    우리 주님께서 능력을 지니고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

    아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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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uest 님의 말:

     

    예수님의 기쁨

    1. 말씀읽기: 루카 10,21-24

    2. 말씀연구

    일흔 두 제자는 선교 여행에서 겪은 일들을 예수님께 보고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들이 제자들의 명령에 복종하였고,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복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사탄의 권세까지도 제자들에게 복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일흔 두 제자는 기쁨에 넘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낸 것은 사탄의 세력에 대한하느님 나라의 승리를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표징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사탄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를 함께 누렸습니다. 뱀과 전갈은 그 사악한 본성과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성경이나 성경적인 용어에서는 사탄의 부하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구세주는 전갈들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실 분이십니다. 즉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세력들로부터 구해주실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도록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각 동네가 그 동네 주민의 명단을 보존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 명단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그 동네가 제공하는 모든 특혜를 누렸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생명에 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돌아오자 기쁨의 탄성을 지르십니다. 기쁨으로 가득 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예수님의 감사 기도는 인사말의 형태로 시작하여 선언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그 중간에 감사의 이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을 보면 모두 아버지란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정답게 부를 때에 사용하던 아람어 “아빠(Abba)(마르코 14,36)라는 단어의 번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근한 어조로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아버지 앞에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는 신뢰와 존경의 말씀이 선행되고 있습니다.


     지혜롭다는 사람들은 “예지의 소유자”라는 뜻입니다. 또 “슬기로운 사람들”은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 어려움을 교묘하게 뚫고 나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지혜롭다는 사람은 율법학자요, 슬기로운 사람은 빛을 거부한 사두가이파 헤로데 당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오만으로 소경이 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소박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문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활동으로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은 당신 나라를 세우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안다는 자들과 똑똑하다는 자들은 하느님 나라와 그 정의가 예수님을 통하여 현존하여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펼치시는 활동의 의미를 꿰뚫고 그 활동을 이어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백성에게 지운 무거운 짐을 벗겨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가져다주십니다. 이제 앞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 전달자로 될 것이고, 복음을 전하러 떠날 것입니다. 바로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감추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드러내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알려줘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바로 율법학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율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교육받은 일도 없기에 죄를 피하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죄를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받아들이고, 메시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그것이 바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요,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신비를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란 구절은 이미 하신 말씀에 대한 기쁨에 찬 반복입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감사와 찬양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기꺼이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결정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기초한 하느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참된 기도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동의의 표현과 하느님께서 기꺼워하시는 바에 대한 내어맡김으로 끝맺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 하느님은 아들 예수님을 아십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아십니다. 그리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라는 말씀 안에서 제자들과 우리가 아는 것과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완전히 인식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안에서 아들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에게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기에 알려 주신 것만큼은 알 수 있습니다.


     차량에 네비게이션을 달면 모르는 길도 쉽게 찾아 갈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신앙생활에도 네비게이션을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네비게이션은 바로 성경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을 자주 읽다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아버지를 가르쳐 주신 말씀.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말씀을 알게 될 것입니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적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보여 주신 계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았고, 그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들 중 대다수는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예언자보다 뛰어난 예언자시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불충분한 것입니다. 그분의 인격을 완전히 알기 위해서는 솔직하고 착한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믿고 온전히 따르려는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볼 수 있습니다. 눈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을 모든 성인들도, 많은 제왕들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오직 하나의 기대는 메시아였습니다. 그분을 보고 그분에게서 말씀을 듣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만이 메시아를 보았고, 그분과 함께 하느님 나라 확장을 위해 일하는 행복을 얻었습니다.


     그 행복이 눈앞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 앞에 기도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참된 행복임을 생각한다면 좀더 기도생활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복음을 전하여 교회로 이끈 사람에 대해서 기쁨에 넘쳐 이야기해 봅시다.



    ②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기도가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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