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림 제2주간 목요일(12/11)


    말씀의 초대
    하늘 나라의 사람은 세상의 어떤 인물보다 크다고 하신다. 주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 기준으로 하늘 나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의 이론과 가치 기준에 속하지 않는 나라다(복음).
    복음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늘 나라가 왜곡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개인적인 소유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이런 엉터리 이론과 가르침이 있었나 봅니다. 사람들은 하늘 나라를 쉽게 오해합니다. 죄짓지 않고 공로가 많은 사람들만 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는 이들만 모이는 곳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천국 가기에 당연한 삶’은 없습니다. 완벽한 삶이더라도 그것은 우리 판단이지 주님의 판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해야’ 그분의 허락을 받습니다. ‘사랑의 삶’이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사랑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아름다워집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삶을 계속해야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율법 준수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러기에 회개와 천국을 이야기하던 요한을 제거하려 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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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2주간 목요일(12/11)


      말씀의 초대
      하늘 나라의 사람은 세상의 어떤 인물보다 크다고 하신다. 주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 기준으로 하늘 나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의 이론과 가치 기준에 속하지 않는 나라다(복음).
      복음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늘 나라가 왜곡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개인적인 소유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이런 엉터리 이론과 가르침이 있었나 봅니다. 사람들은 하늘 나라를 쉽게 오해합니다. 죄짓지 않고 공로가 많은 사람들만 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는 이들만 모이는 곳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천국 가기에 당연한 삶’은 없습니다. 완벽한 삶이더라도 그것은 우리 판단이지 주님의 판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해야’ 그분의 허락을 받습니다. ‘사랑의 삶’이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사랑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아름다워집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삶을 계속해야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율법 준수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러기에 회개와 천국을 이야기하던 요한을 제거하려 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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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대림 제2주간 목요일(12/11)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 그분께서 백성의 손을 잡아 주시니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가난한 이들은 갈증을 느끼고 배고픈 이들은 먹을 것을 찾지만 주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다. 그분께서는 골짜기에서도 샘물이 솟아나게 하시는 분이시다(제1독서).
      제1독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1,13-20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보라, 내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 바람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그러나 너는 주님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 나는 광야에 향백나무와 아카시아, 도금양나무와 소나무를 갖다 놓고, 사막에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를 함께 심으리라.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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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이 많이 어렵고

    무겁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지요.

    “귀있는 사람은 들어라.” 라고~~

    촛불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제가 혹여

     아버지 나라를 폭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원하시는 가르침을 모른 채

    제 뜻대로 해석하며,

    제 편한대로 재설계를 하면서

    마치 아버지의 뜻인냥 쉽게 말하진 않았는지…

    그또한

     아버지 나라에 대한 폭력일텐데..

    그러한 폭력자인 저가

    아버지 나라를 멍들게 하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언젠가 나이 지긋한 자매님이 저더러 그랬답니다.

    “영세를 받으면

    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여.” 라고~

    그 말을 들은 저는

    “그건 아니지요.

    제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시고

    허락하신다면 들어갈 수 있지요.”

    라고 생각없이 대답했습니다.

    근데 그 노자매님의 언성이 높아졌지요.ㅎㅎ

    당신이 영세를 받은지 몇십년이 넘었다고….

    전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상처를 받을까봐서요.

    그리고 전 아직 병아리니까요.

    노자매님의 모습이 저의 모습일 수 있음도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저역시 그렇게

    나이를 먹은 늙은 바리사이되어

    한생을 마감할테니까요.

    머리로 계산하며 율법을 지키는 바리사이들이

    자신들은 완벽한 삶이라 자신하듯,

    저또한 그들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진 않았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나라에 들어갈 그 날을 기원하며

    희망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냄에 있어 설레이는 맘으로

    여유롭게 보내야 하는데

    그리 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마치 로또복권을 사가지고 설레이는 맘으로

    한주간을 보내는 것처럼~~

    남편이 가끔 그렇게 한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안맞지만 한주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기분 때문에

    다들 사는 것일꺼야.” 라고~~

    재밌죠?

    한가닥의 희망이 그렇게 마음을 바꾸어 주듯이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가르침대로

    맘을 비우고 사랑을 채우며

    엵심히 살아갈 때

    제 삶의 보자기 색을

    멋있게 물들일 수 있을것이라 믿습니다.

    “아버지! 저 잘 할수 있어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귀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라고~

    하늘 나라는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겁지만 그래도 큰 가르침이 되어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제가 바로 그 폭력자임이 될 수도 있음을

    반성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지금까지 그런 폭력자로

    살아왔었는지도 모르지요.

    가르침대로 살지못하면서

    저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제멋대로 해석하고

    제게 맞는 옷으로 바꾸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들을 귀가 있음에도

    아버지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아

    알지를 못한채로 지금까지 살아오진 않았는지

    가슴깊이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말씀을 접할때마다

    바리사이들을 미워하고 욕했지만

    돌아서면 저 자신이 바로

    그들이었음을 모르진 않았는지~~

    늘 깨어 기도하면서

    귀를 열고 눈을 뜬채로

    아버지의 말씀과 향취에 머물렀는지~

    아버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지금처럼

    말씀에서 아버지의 온기를 느끼게 하소서.

    말없이 미소로 칭찬을 주시고

    자국없는 채찍으로 저를 혼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속에서

    폭력자되지 않게 하소서.

    매일 매일 말씀에서 힘을 얻어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을 휘감는

    저가 되게 하시어

    작은 힘이나마

    아버지를 위해 쓰게 하시고,

    사랑으로 언제까지나 아버지 곁에서 머물게 하소서.

    말씀에 귀 기울이며 예쁜 자세로

    인정의 눈과 입을 주시고

    사랑의 넓은 마음 주시어 바로서게 하소서.

    아멘.

     

    기도는 열심히 해야하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때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된다고….

    그리고

    사랑의 기도는

    희망과 더 큰 불씨를 낳는다고…

    그러면 삶이 힘들어도

    다 삭히며 병들지 않은 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신

    친정 엄마가 생각납니다.

    사랑이 없는 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을 영원히 품을 수 없을수도 있다고….

    그래서 당신은 무척 힘들었었노라고…

    그러니 너만은 그러지 말라고…

    친정 엄마가 보고 싶은 밤입니다. ^*^

     

     

                  

  4. guest 님의 말:

    (no content)

  5. guest 님의 말:

     

    세례자 요한- 그가 바로 엘리야이니…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1. 말씀읽기:마태11,11-15

    2. 말씀연구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진리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길을 미리 준비하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틀에 맞추어 세상을 보려 하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못 마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틀을 벗어나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나 또한 내 틀을 벗어 던지고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그의 임무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과거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높여 주고 계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요한은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던 인물입니다.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고, 아버지 즈카르야도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축복하셔서 요한은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에게 엘리야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일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 다음이어야지 왜 첫째입니까?”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하늘 나라에 있는 자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는 구약시대에 속하고 선구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그런데 복음위에 서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본다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은총의 시대는 요한이 머물고 있는 율법의 시대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자 요한은 단지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기에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율법의 시대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명을 지닌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요한까지가 예언자와 율법의 시대이며, 이제부터는 복음이라는 새로운 은총의 시대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도 하느님의 나라와 회개를 선포했기에 세례자 요한의 날부터 지금 예수님의 날까지를 한데 묶어서 하늘나라 시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는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요한을 마캐루스 요새에 가두었고, 율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스스로도 들어가려 하지 않고 다른 이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힘쓰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강탈한 것입니다. 게다가 세례자 요한에게도, 예수님에게도 관심이 없었으니 하느님의 나라는 선포까지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하느님의 나라를 강탈하고,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좀 알고 있다고 하는 이들, 뭔가 하고 있다고 하는 이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떤 조건 안에서, 관계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참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나는 하느님 나라를 보여줄 수 없고, 이끌어 줄 수도 없습니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율법과 예언서의 역할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안내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이(메시아에 대한 일) 세례자 요한과 더불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율법과 예언의 시대는 끝이 났고 완성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모든 예언과 율법은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될 것입니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엘리야 예언자는 죽지 않고 산 채로 불 수레를 타고 승천했습니다(2열왕2,11).그는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직전에 다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화해시키고 열두 부족을 재건할 것입니다(말라3,1.23;집회48,9-10). 엘리야는 종말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인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요한을 통해 육체적으로 나타났다거나 세례자가 엘리야의 화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온 것입니다.

     하지만 힘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요한을 엘리야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세례자 요한의 일을 바라보지 못했고, 믿음이 없었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유대인들은 아직도 엘리야를 기다고 있습니다.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당신의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을 열고 귀를 열어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분을 알아 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커다란 축복으로 다가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가 하느님 나라의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되기 위해서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이 있습니까?


    ②“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는 말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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