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2/13)


    루치아 성녀는 남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귀족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았다. 부친이 죽자 어머니는 딸의 신변을 염려해 귀족 청년과 혼담을 주선한다. 그러나 루치아는 동정을 결심하고 있었기에 혼인을 거절한다. 격분한 청년은 루치아를 신자라고 고발하였고, 성녀는 결국 304년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순교하였다. ‘루치아’(Lucia)라는 이름은 ‘빛’ 또는 ‘광명’을 의미하는 라틴 말에서 유래되었다.
    말씀의 초대
    구약 성경에서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 엘리야도 함께 온다고 믿었다. 먼저 와서 사람들을 준비시킨다고 여겼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에 비유하신다. 당신의 오심을 준비했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0-13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언자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에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임금은 ‘아합’이었습니다. 그는 폭군이며 가나안의 토속 신앙인 ‘바알 우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을 강렬하게 비난하지요. 이윽고 두 사람은 ‘카르멜 산’에서 대결합니다. 어느 신앙이 옳은지 백성들 앞에서 가리는 대결이었습니다. 당연히 엘리야가 승리합니다. 하느님께서 기적으로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열왕기 상권 18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후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타는 마차’를 타고 승천합니다. 그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종말이 되면 다시 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구세주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온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준비’를 알려 주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엘리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그런 의미에서 엘리야라 했습니다. 위대한 사람 뒤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습니다. 주인공을 돕는 조연들입니다. 조연이 있기에 주연이 빛납니다. 요한은 자신의 위치를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고 했습니다.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행복한 조연이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서로의 빛이 되어 / 권 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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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2/13)


      루치아 성녀는 남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귀족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았다. 부친이 죽자 어머니는 딸의 신변을 염려해 귀족 청년과 혼담을 주선한다. 그러나 루치아는 동정을 결심하고 있었기에 혼인을 거절한다. 격분한 청년은 루치아를 신자라고 고발하였고, 성녀는 결국 304년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순교하였다. ‘루치아’(Lucia)라는 이름은 ‘빛’ 또는 ‘광명’을 의미하는 라틴 말에서 유래되었다.
      말씀의 초대
      구약 성경에서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 엘리야도 함께 온다고 믿었다. 먼저 와서 사람들을 준비시킨다고 여겼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에 비유하신다. 당신의 오심을 준비했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0-13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언자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에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임금은 ‘아합’이었습니다. 그는 폭군이며 가나안의 토속 신앙인 ‘바알 우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을 강렬하게 비난하지요. 이윽고 두 사람은 ‘카르멜 산’에서 대결합니다. 어느 신앙이 옳은지 백성들 앞에서 가리는 대결이었습니다. 당연히 엘리야가 승리합니다. 하느님께서 기적으로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열왕기 상권 18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후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타는 마차’를 타고 승천합니다. 그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종말이 되면 다시 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구세주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온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준비’를 알려 주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엘리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그런 의미에서 엘리야라 했습니다. 위대한 사람 뒤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습니다. 주인공을 돕는 조연들입니다. 조연이 있기에 주연이 빛납니다. 요한은 자신의 위치를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고 했습니다.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행복한 조연이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서로의 빛이 되어 / 권 성일 
    
    
    
    
    

  2. guest 님의 말: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라고 산에서 내려오며

    제자들이 예수님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

    겸손되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한 율법학자들!

    온 유다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인정을 하지 않았나 봅니다.

    이미 왔는데~~ 그쵸?

    허긴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겠지요.

    멋진 사람을 보고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씀을 묵상하면서

    “난 아닐꺼야” 라고 속삭여 봅니다.

    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겠지요.

    보고도 인정하지 않는 자세,

    바른 가르침을 줌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서

    저를 찾아봅니다.

    함께 봉사를 하면서

    의로운 이의 편에 서서 그를 도와주었는지~

    준비하는 자세로 뭔가를 열심히 하는 이에게

    칭잔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바른 말을 하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열심히 움직이는 이에게

    돌을 던지진 않았는지~~

    의로운 이가 제 눈앞에 있어도

    저의 자존심이 눈 멀게 하진 않았는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산을 내려오며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라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러

    길을 닦으러 온 세례자 요한을 인정하지 않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지금의 저의 모습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미 와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으며

    다른 것을 기다리는 척 외면하는 사람들!

    막상 오셨다 해도

    또 다른 핑계를 대며 굽히지 않겠지요.

    이미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를 못한,

    아니 인정하지를 않는 모습이

    저의 부족한 모습은 아닌지요.

    인정함이 저가 낮추어 지는게 아닌데

    봉사를 하면서 혹여 그런 적은 없었는지요.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더 깊은 곳으로 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저를 더 작게 만듬을 알게 하시어

    아버지의 길을 준비하는 자식으로서

    볼 눈을 가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의 소리를 듣게 하시고

    아버지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하시어

    뒤늦은 후회를 하며 울게 하지 마소서.

    아멘.

     

    제가 놓친 것이 참으로 소중한 알림임을

    늘 깨닫게 하소서.

    만약 알았더라면

    예수님의 길을 바꿀수 있었을까요?

    아니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릴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세례자 요한을 알아보았더라면

    준비하는데 있어서

     좀더 잘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3. guest 님의 말: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와야 하는데

    1. 말씀읽기:마태17,10-13 엘리야의 재림 (마르 9,11-13)


    2. 말씀연구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체험한 제자들은 한 가지 의문에 싸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은 분명한데 엘리야는 누구인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분명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제자들에게 두려움과 환희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거룩한 변모를 겪고서 산에서 내려오다가 제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산에서 그들은 모세도 보았고 엘리야도 보았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함께 계시고.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 엘리야가 다시 이 세상에 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엘리야를 산에서 보았습니다. 메시아라고 믿고 있는 스승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 예고를 하셨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 일인가?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눈앞에 계신데 엘리야는 오지 않았으니…,  제자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내용을 여쭈어 봅니다.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라고.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벌써 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확실히 이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사람들이 엘리야의 도래와 더불어 기대하던 바를 실현하면서 메시아 시대를 선포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백성의 지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예수님의 사명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를 보여 줄 것입니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엘리야가 이이 왔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선구자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그를 자신의 뜻에 따라 제멋대로 다루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멀었으며 그 행위는 악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언행을 통해 엘리야를 알아보았어야 했습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눈앞에 있는 중요한 사람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나는 예언자를 예언자로 대해주고 있습니까?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② 교리나 성경을 대하다보면 어려운 내용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나는 어려운 내용들을 해결할 수 있는 스승이 있습니까?


  4. guest 님의 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생각속에 무엇이 가장 많이 자리 잡고 있는가…
    그안에 그분이 계시다면
    엘리야가 이미 오셨든 아니 앞으로 또 오시든 왈가왈부 할 필요없이
    나는 엘리야를 볼것이다.
    그런데 엘리야가 또 오실까? 그럼 누구란 말인가… 궁금해 하고 논쟁을 벌일때가 종종있다.

    그분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기 때문일게다.
    그래서 남의 말과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이 나와 연관된 문제라면
    절실하게 그분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안에 그분이 없다.
    나약한 인간인지라 고난을 거부하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고난을 거부하는 삶은
    그분을 만나뵐수 없음이 아닌가…

    오늘은 나 자신을 가지치기 해야겠다.
    나무에 더 많은 영양분을 주고 내가 살기 위해서 말이다.

    내게 있어 그분은 어떤 존재이던가.
    그분은 거대한 나무고 나는 잔가지일뿐임을…
    그래서 중심이신 그분을 드러내기 위해선
    어떠한 유혹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잘려나갈수 있어야 한다.
    겸손되이….
    세자 요한처럼 말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분은 나를 영원히 살릴수 있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주님!
    십자가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을 없애주시고
    절 유혹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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