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대림 제3주간 월요일(12/15)


    말씀의 초대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는 예수님의 언행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백성의 지지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제지할 구실을 찾지만 실패한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막을 수 없다. 그분을 따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복음).
    복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3-27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들로서는 당연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언행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시건만 ‘성전의 사람들’이 공격합니다. 백성을 위한 일이건만 ‘율법의 사람들’이 핍박을 가합니다. 세례자 요한에게도 그렇게 했고, 예수님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했지만 제대로 대접 못 받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그만큼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세상에서 공평을 원하면 늘 가슴앓이를 해야 합니다. 공평함은 하늘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도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기적의 자리에 함께했던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무작정 찔러 보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조용히 답하십니다. ‘요한의 세례’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넓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대해 화내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나의 영혼 만드신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월요일(12/15)


      말씀의 초대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는 예수님의 언행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백성의 지지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제지할 구실을 찾지만 실패한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막을 수 없다. 그분을 따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복음).
      복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3-27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들로서는 당연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언행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시건만 ‘성전의 사람들’이 공격합니다. 백성을 위한 일이건만 ‘율법의 사람들’이 핍박을 가합니다. 세례자 요한에게도 그렇게 했고, 예수님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했지만 제대로 대접 못 받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그만큼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세상에서 공평을 원하면 늘 가슴앓이를 해야 합니다. 공평함은 하늘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도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기적의 자리에 함께했던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무작정 찔러 보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조용히 답하십니다. ‘요한의 세례’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넓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대해 화내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나의 영혼 만드신 
    
    
    
    
    

  2.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월요일(12/15)


      말씀의 초대
      발라암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스라엘에 내릴 주님의 축복과 보호를 알린다. 광야를 떠돌던 백성은 위로를 얻는다. 모압과 에돔의 침략에 전전긍긍하던 그들에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주님만이 그들의 보호자이심을 뼈저리게 깨닫는다(제1독서).
      제1독서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는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4,2-7.15-17 그 무렵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그러고 나서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나의 영혼 만드신 
    
    
    
    
    

  3. guest 님의 말: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처럼 기분이 통쾌한 적이 없었습니다.

    속이 후련해지는 이 기분!

    “역시 아버지셔~”

    라고 하면서 혼자 웃었습니다.

    맨날 맞던 애한테 드디어 한방 먹였을 때의 그런 기분이요.

    아버지의 권한을 문제 삼는 수석사제들에게

    아버지의 넓은 마음에서 나오시는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는 목소리로

    한방 먹였을텐데~~ 맞지요?

    그래도 결국은 그 어느쪽도 인정하지 않는 이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제 모습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도 다 인정하지 않았던 이들!

    어떻게든 옭아매려 해 보지만 이번에도 실패했지요.

    저도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는 정말 인정이란게 싫었습니다.

    인정이라는 자체가 제 자리를 뺏김이라 생각했지요.

    그를 인정하면 제가 내려짐만을 생각했지

    더 깊은 제가 됨을 몰랐었답니다.

    능력과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댓가의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 분주히도 움직였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있었지만

    제 맘은 콘크리트로 굳게 굳어지고 있음을

    알지를 못했었지요.

    인정을 부정하는 욕심보였기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려 밤을 새며

    저를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인정이 싫었기에 그보다 위에서 머물러야 했으니까요.

    그래야 그를 밀어주고 도와주며

    제가 그 인정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정말 나빴죠?

    그게 바로 오늘 아버지를 옭아매려 하는

    수석사제나 원로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아마 그들도 속으로는 아버지를 믿었을지도~~

    그리고 아버지나 요한을 인정했을지도 몰라요.

    저도 그땐 속으론 인정하면서

    그 인정의 현실화에서

    제가 작아질까봐 드러내질 않았었거든요.

    아버지!

    저 정말 보잘 것 없었죠?

    인정을 하는 것보다 인정을 받는 편에 서기 위해

    밤을 새며 욕심보를 채웠던 저!

    이제야 비로소 사람되어 철이 들어가고 있지요.

    아버지를 알지 못했다면

    아직도 저들처럼 비굴하게 저를 지키려 허덕이고 있었을텐데~

    그치요?

    그러면서 어떤 구실로든

    올라오는 이를 묶어두기 위해

    고민을 했을텐데요.

    수석사제와 원로들처럼이요.

    지금은 인정이 아니라 더한것도 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철없지만 배려도 참 잘해요. ㅎㅎ

    바보같을 때가 있을정도로…^*^

    그러니까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지더라구요.

    제겐 아버지께서 계시니까요.

    때리면 맞으면 되고~

    욕하면 먹으면 되고~

    그 상처는 아버지께서 약발라 주시니까요.

    수다떨기 전에 먼저 치료해 주시고

    제 얘기를 다 들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늘 기뻐 재재거릴수 있게 되었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사제와 원로들이,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오?” 하고 묻자

    시원하게 한방 먹이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얘기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겠노라 하십니다.

    참 많은 생각이 제 뇌리를 스칩니다.

    봉사를 하면서

    “니가 뭔데?” 라는 소리가 무서워 눈치를 보는 것들~

    예수님과 요한을 다 인정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옭아매려 발버둥을 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의 지난 철없던 시간들이

    저를 한참동안 묶어 두었습니다.

    그 어느쪽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난 저의 모습을 다시 보게 해 주시는 것 같아서

    가슴깊이 와 닿았습니다.

    알면서 모르는 척,

    속으론 인정을 하면서 드러내지 않았던 것들,

    바로 오늘 나오는 수석사제들의 모습이었지요.

    아버지께서 제게 기회를 주시어

    제가 새로 날 수 있었음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수석사제들에게도 사실은 한번의 기회를 주심일텐데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겨우 붙잡고 일어서려는 제가

    더 깊이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시어

    바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을 수 있게 손을 잡아 주소서.

    그리하여

    더 넓은 가슴으로

    더 맑은 머리로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버지께서는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리된다 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제 사랑이 헛되지 않게

    변화된 삶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처럼 기분이 통쾌한 적이 없었습니다.

    속이 후련해지는 이 기분!

    “역시 아버지셔~”

    라고 하면서 혼자 웃었습니다.

    맨날 맞던 애한테 드디어 한방 먹였을 때의 그런 기분이요.

    아버지의 권한을 문제 삼는 수석사제들에게

    아버지의 넓은 마음에서 나오시는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는 목소리로

    한방 먹였을텐데~~ 맞지요?

    그래도 결국은 그 어느쪽도 인정하지 않는 이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제 모습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도 다 인정하지 않았던 이들!

    어떻게든 옭아매려 해 보지만 이번에도 실패했지요.

    저도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는 정말 인정이란게 싫었습니다.

    인정이라는 자체가 제 자리를 뺏김이라 생각했지요.

    그를 인정하면 제가 내려짐만을 생각했지

    더 깊은 제가 됨을 몰랐었답니다.

    능력과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댓가의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 분주히도 움직였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있었지만

    제 맘은 콘크리트로 굳게 굳어지고 있음을

    알지를 못했었지요.

    인정을 부정하는 욕심보였기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려 밤을 새며

    저를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인정이 싫었기에 그보다 위에서 머물러야 했으니까요.

    그래야 그를 밀어주고 도와주며

    제가 그 인정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정말 나빴죠?

    그게 바로 오늘 아버지를 옭아매려 하는

    수석사제나 원로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아마 그들도 속으로는 아버지를 믿었을지도~~

    그리고 아버지나 요한을 인정했을지도 몰라요.

    저도 그땐 속으론 인정하면서

    그 인정의 현실화에서

    제가 작아질까봐 드러내질 않았었거든요.

    아버지!

    저 정말 보잘 것 없었죠?

    인정을 하는 것보다 인정을 받는 편에 서기 위해

    밤을 새며 욕심보를 채웠던 저!

    이제야 비로소 사람되어 철이 들어가고 있지요.

    아버지를 알지 못했다면

    아직도 저들처럼 비굴하게 저를 지키려 허덕이고 있었을텐데~

    그치요?

    그러면서 어떤 구실로든

    올라오는 이를 묶어두기 위해

    고민을 했을텐데요.

    수석사제와 원로들처럼이요.

    지금은 인정이 아니라 더한것도 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철없지만 배려도 참 잘해요. ㅎㅎ

    바보같을 때가 있을정도로…^*^

    그러니까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지더라구요.

    제겐 아버지께서 계시니까요.

    때리면 맞으면 되고~

    욕하면 먹으면 되고~

    그 상처는 아버지께서 약발라 주시니까요.

    수다떨기 전에 먼저 치료해 주시고

    제 얘기를 다 들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늘 기뻐 재재거릴수 있게 되었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사제와 원로들이,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오?” 하고 묻자

    시원하게 한방 먹이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얘기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겠노라 하십니다.

    참 많은 생각이 제 뇌리를 스칩니다.

    봉사를 하면서

    “니가 뭔데?” 라는 소리가 무서워 눈치를 보는 것들~

    예수님과 요한을 다 인정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옭아매려 발버둥을 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의 지난 철없던 시간들이

    저를 한참동안 묶어 두었습니다.

    그 어느쪽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난 저의 모습을 다시 보게 해 주시는 것 같아서

    가슴깊이 와 닿았습니다.

    알면서 모르는 척,

    속으론 인정을 하면서 드러내지 않았던 것들,

    바로 오늘 나오는 수석사제들의 모습이었지요.

    아버지께서 제게 기회를 주시어

    제가 새로 날 수 있었음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수석사제들에게도 사실은 한번의 기회를 주심일텐데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겨우 붙잡고 일어서려는 제가

    더 깊이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시어

    바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을 수 있게 손을 잡아 주소서.

    그리하여

    더 넓은 가슴으로

    더 맑은 머리로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버지께서는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리된다 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제 사랑이 헛되지 않게

    변화된 삶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주님!
    기쁨의 주일인 대림3주간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대사제들과 원로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상대방이 잘하고 있을때 격려와 칭찬보다는
    질시와 무시, 시기로 상대를 깍아 내리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고 있는 못난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아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고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고치려해도 고쳐지지 않는 저의 편견과 교만시기와 질투
    그리고 남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등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저의 모습에 우울해집니다
    알량한 자존심은 왜 그렇게 부르는지...
    사실 자존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저의 생각 뿐이지요
    아마 남들이 보기에는 오기와 심술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니
    저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참 어렵습니다
    있는 것은 인정하지 못하고 진실을 진실대로 보지 않는 저의 
    모난 성격이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반성이 됩니다

    흰 개꼬리 삼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저의 모난 성격이 아무리 복음묵상을 열심히 한다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합니다

    하지만 좌절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모상으로 만드셨다는 사람 중에 저도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으며 언젠가는 당신께서 저의 부족함을 고쳐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포기도 하지 않겠습니다
    사랑이신 당신이 언제나 저의 곁에 계시니까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말씀을 깊이 새기며

    고치려해도 고쳐지지 않는 시기,질투 교만 게으름 불신앙 등
    저의 나쁜 습관을 사랑이신 당신께서 고쳐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자애를 보이시고,
    주님의 구원을 베푸소서”

    아멘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묵상하며

    ♬ 나의 영혼 만드신


  6. user#0 님의 말: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주님!
    기쁨의 주일인 대림3주간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대사제들과 원로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상대방이 잘하고 있을때 격려와 칭찬보다는
    질시와 무시, 시기로 상대를 깍아 내리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고 있는 못난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아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고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고치려해도 고쳐지지 않는 저의 편견과 교만시기와 질투
    그리고 남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등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저의 모습에 우울해집니다
    알량한 자존심은 왜 그렇게 부르는지...
    사실 자존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저의 생각 뿐이지요
    아마 남들이 보기에는 오기와 심술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니
    저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참 어렵습니다
    있는 것은 인정하지 못하고 진실을 진실대로 보지 않는 저의 
    모난 성격이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반성이 됩니다

    흰 개꼬리 삼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저의 모난 성격이 아무리 복음묵상을 열심히 한다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합니다

    하지만 좌절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모상으로 만드셨다는 사람 중에 저도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으며 언젠가는 당신께서 저의 부족함을 고쳐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포기도 하지 않겠습니다
    사랑이신 당신이 언제나 저의 곁에 계시니까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말씀을 깊이 새기며

    고치려해도 고쳐지지 않는 시기,질투 교만 게으름 불신앙 등
    저의 나쁜 습관을 사랑이신 당신께서 고쳐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자애를 보이시고,
    주님의 구원을 베푸소서”

    아멘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묵상하며

    ♬ 나의 영혼 만드신


  7. guest 님의 말:

    주님!
    저도 당신 일을 하는 사람에게 딴지를 걸고 삽니다.
    어느땐 밉고 오장이 뒤틀릴때도 있습니다.
    그들속에 당신만을 봐야 되는데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질없는 생각과 말들…
    결국은 당신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느껴봅니다.

  8. user#0 님의 말:

    주님!
    저도 당신 일을 하는 사람에게 딴지를 걸고 삽니다.
    어느땐 밉고 오장이 뒤틀릴때도 있습니다.
    그들속에 당신만을 봐야 되는데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질없는 생각과 말들…
    결국은 당신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느껴봅니다.

  9. guest 님의 말: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1. 말씀읽기: 마태21,23-27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다 (마르 11,27-33 ; 루카 20,1-8)

     

    2. 말씀연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으로 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강도의 집에서 기도하는 집으로, 하느님의 집으로 만들어 놓으십니다.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 성전의 관계자들은 무슨 권위로 자기들이 옹호하는 체제와 구조를 비판하고 파괴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대들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내 잘못을 일깨워준 이를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허물을 들췄다고 욕을 하거나 비난하고, 궁지에 몰아넣어서도 안 됩니다.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실 때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라고 따집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성인 남자들은 모두 가르칠 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것은 성전을 정화하시고 백성의 지도자들을 나무라시며 기적을 베푸시는 그 권능을 누구에게서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공식적인 직위를 받아서 그것을 예수님의 권위로 사용하시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주장하시는가?”를 물어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내가 메시아다”라는 공개적인 선포를 들으려고, 그래서 고발하려고 교활하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수호자들에게 예수님을 걸고넘어지려고 하는 의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충분히 흔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그런 메시아가 아니시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부활 이후에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셨는지 그 사명을 정확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질문으로 응답하십니다. 그 질문을 통해서 그들의 옹졸함과 편협함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 멋모르고 날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기도하며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걸러지게 되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 안에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물음에 일침을 가하십니다. 그리고 이 대답을 해 주어야만이 대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십니다. 그 질문 내용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입니다.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권한이 하늘이 준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준 것인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사실 쉬운 대답이지만 그들의 삶이 이미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비롯했다”고 대답한다면 세례자 요한을 목 베어 죽였으니 하느님께 도전하는 것이 되겠고, 또 요한을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찌하여 여러분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비롯했다”고 말한다면 군중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군중들은 모두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퇴양란, 바둑에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단수”, 장기에서는 “외통.” 어떻게 할 수 없는 외통수에 걸린 것입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미쳤다고 말하더니 예수님께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하고 욕했던(마태11,18-19)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자신들의 잘못된 삶으로 진퇴양란에 빠진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르겠소.” 그런데 백성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또한 백성의 지도자이면서 첨예한 문제를 모르겠다고 말한다는 것 또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말씀하셔도 못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에 근거하여 너희에게 가르쳤거늘 너희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구나. 그 누가 와서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해도 너희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너희에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구나. 또 내가 메시아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아니기에 너희들을 위해서 말하지 않겠노라. ”

    누군가를 시험하거나 떠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이 옳고 그른 것은 그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행동을 통해서 그분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그를 시험하지 않아도 그의 행동을 통해서 답변을 듣게 됩니다. 시험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행하기 어려운 것들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행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은 것들이 생겨납니다. 그것을 하지 않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댄 적은 없습니까?

     

    ② 교리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대답에 어떻게 응합니까? “몰라!”라고 이런 저런 핑계로 회피를 합니까? 아니면 “자세하게 알려주거나, 모르면 찾아서 알려 줍니까?”

     

user#0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