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비유는 형식적인 믿음을 꾸짖으시는 말씀이다.
몸만 따라가고 마음은 멀리 있는 믿음을 질책하시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세리와 창녀들을 칭찬하신다.
그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자
‘몸과 마음’을 즉시 바꾸었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두 아들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할 것을 당부합니다.
큰아들은 거절하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바꿉니다.
작은아들은 가겠다고 해 놓고서는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더 순종하는 아들인지 질문하십니다.
대답하는 그대들은 어느 아들에 속하는지 묻고 계신 것입니다.
가겠다는 말만 하고
‘가지 않은 아들’은 누구의 모습일는지요?
문맥으로 보면 바리사이들입니다.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든 “예!” 하고 답하지만 적당히 대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오늘에도 많습니다.
행동은 적고 요구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절했다가 ‘일하러 간 아들’을
‘세리와 창녀’에 비유하십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입니다.
율법에서는 죄인으로 간주되던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큰아들의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비유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세리와 창녀들도 삶을 바꾸는데
‘왜 바꾸지 못하는가?’ 하는 질책입니다.
바꾸어야 은총이 함께합니다.
맏아들은 싫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러기에 순종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도움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쁨과 함께 답을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두 아들의 비유는 형식적인 믿음을 꾸짖으시는 말씀이다.
몸만 따라가고 마음은 멀리 있는 믿음을 질책하시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세리와 창녀들을 칭찬하신다.
그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자
‘몸과 마음’을 즉시 바꾸었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두 아들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할 것을 당부합니다.
큰아들은 거절하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바꿉니다.
작은아들은 가겠다고 해 놓고서는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더 순종하는 아들인지 질문하십니다.
대답하는 그대들은 어느 아들에 속하는지 묻고 계신 것입니다.
가겠다는 말만 하고
‘가지 않은 아들’은 누구의 모습일는지요?
문맥으로 보면 바리사이들입니다.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든 “예!” 하고 답하지만 적당히 대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오늘에도 많습니다.
행동은 적고 요구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절했다가 ‘일하러 간 아들’을
‘세리와 창녀’에 비유하십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입니다.
율법에서는 죄인으로 간주되던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큰아들의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비유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세리와 창녀들도 삶을 바꾸는데
‘왜 바꾸지 못하는가?’ 하는 질책입니다.
바꾸어야 은총이 함께합니다.
맏아들은 싫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러기에 순종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도움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쁨과 함께 답을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하느님의 말씀을 거절하면 불행해진다.
아무리 예루살렘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반항하면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민족의 침략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하고 생각을 바꾼다면 평화를 누릴 것이다.
용서와 함께 축복이 있을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구세주의 구원이 모든 가난한 사람에게 약속되리라.>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2.9-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리라.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
그날에는 네가 나를 거역하며 저지른 그 모든 행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에는 내가 네 가운데에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
그러면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서 다시는 교만을 부리지 않으리라.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는 당신이 아무리 저를 사랑한다고 하셔도 믿지 않았지요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 당신모상으로 만드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고 듣는다고 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입으로만 믿고 듣고 실천한다고 늘 떠들었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고 행동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보고도...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을 보고 듣고도... 저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당신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말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복음묵상을 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기를 수십번..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실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 뿐이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한다고 ...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을 사랑한다고.. 성경공부도 복음묵상도 보여지는 것에는 열심한 척... 남들이 교우들이 외인들까지 그럽니다 바쁜데도 열심히 한다고 대단하다고... 하늘에다 보물을 열심히 쌓고 있다고 ... 하지만 모두가 빈수레입니다 요란하고 실속없고 울리는 징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실망을 하지 않겟습니다 가지 않겟다고 하고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둘째아들이 아닌 가지 않겠다고 대담하고 포도원에 일하러간 큰 아들처럼 이제부터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겸손하고 믿음있는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눈멀고 귀 먹은 저 헬레나가 당신의 사랑으로 믿음있고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도록 미천하고 교만한 헬레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저는 당신이 아무리 저를 사랑한다고 하셔도 믿지 않았지요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 당신모상으로 만드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고 듣는다고 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입으로만 믿고 듣고 실천한다고 늘 떠들었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고 행동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보고도...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을 보고 듣고도... 저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당신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말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복음묵상을 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기를 수십번..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실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 뿐이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한다고 ...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을 사랑한다고.. 성경공부도 복음묵상도 보여지는 것에는 열심한 척... 남들이 교우들이 외인들까지 그럽니다 바쁜데도 열심히 한다고 대단하다고... 하늘에다 보물을 열심히 쌓고 있다고 ... 하지만 모두가 빈수레입니다 요란하고 실속없고 울리는 징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실망을 하지 않겟습니다 가지 않겟다고 하고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둘째아들이 아닌 가지 않겠다고 대담하고 포도원에 일하러간 큰 아들처럼 이제부터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겸손하고 믿음있는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눈멀고 귀 먹은 저 헬레나가 당신의 사랑으로 믿음있고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도록 미천하고 교만한 헬레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고통과 아픔이 클때는 눈물을 흘리며 결심합니다.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그런데 작심하루 아니라 몇분 몇 시간밖에 못 가는 저를 봅니다.
이렇게 말로만 그분을 찾고 금새 잊어버리고 맙니다.
결연한 의지와 과감한 결단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제게 오늘 주님께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근사한 말과 감언이설, 글로만 떠들게 아니라
과감하게 나를 깨고 행동으로 옮기라 하십니다.
그럼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속박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물질에 대한 애착 욕심이 아닌가 묵상해 봤습니다.
이것을 내려놓을때
그제서야 당신과 함께 할수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고통과 아픔이 클때는 눈물을 흘리며 결심합니다.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그런데 작심하루 아니라 몇분 몇 시간밖에 못 가는 저를 봅니다.
이렇게 말로만 그분을 찾고 금새 잊어버리고 맙니다.
결연한 의지와 과감한 결단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제게 오늘 주님께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근사한 말과 감언이설, 글로만 떠들게 아니라
과감하게 나를 깨고 행동으로 옮기라 하십니다.
그럼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속박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물질에 대한 애착 욕심이 아닌가 묵상해 봤습니다.
이것을 내려놓을때
그제서야 당신과 함께 할수 있다고 하십니다.
지난 주말 레지오를 하면서 처음으로 쉬는교우 방문을 다녔습니다.
우리에게 내려주신 활동의 내용인즉슨, 쉬는 교우 집 열 곳을 방문하여
주임신부님께서 특별히 작성하신 편지를 전하고 대림시기임을
설명하고 판공성사가 있음을 안내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출발하기 전에 ‘예수님, 둘 이상이 있는 곳에 함께 하여
주신다고 하셨으니 꼭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라고 기도하고
포부도 당당하게 약간 들뜬 마음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하다 못해 참패였습니다.
단 한사람의 얼굴도 마주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저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맛보았지요. 날씨나 포근했나… 칼바람 부는 황량한 겨울 도시를 하루종일
돌고 나니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지요.
오늘 복음의 작은 아들처럼 간다고 햇지만 가지 말것을…괜히 시작했나
하는 후회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오기가 생기니, 하루종일 추위에 떨면서
발품을 팔았던게 억울해서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지요.
해당 구역의 반장님 연락처를 알아내서 이사갔는지의 여부와
오래된 전화번호라도 받아서 차근차근 정리를 하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는…
일곱 집은 오래전에 이사를 갔고, 나머지 두 집은 오랜기간 쉬고 있다하여
편지만 전해주었으며, 나머지 한 집은 이사를 갔는데…
아는 자매님이었지 뭡니까? 그 분께는 판공성사를 보도록 노력하겠다는
대답을 받았으니.. 열 명 중 한명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 예수님께서는 저희들의
바램을 결코 저버리시지는 않으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말로만 듣던 쉬는교우 방문의 그 첫걸음이 만만치 않았음을
뼈저리게 느꼈던 …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며 보낸
주말이었답니다. 좀더 따뜻하고 정다운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큰아들은 가지않겠다고 하였다가 나중에
깨달은 바 있어 일터로 나갔고, 처음부터 가겠다고 했다가
끝내 일하러 나가지 않은 작은 아들의 사건을 세리와 창녀들의
회개에 비유하심으로써…
오늘도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실천하는 것은 거의
눈곱만큼인 저 루실라를 향해 호되게 꾸중을 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주님! 제가 좀더 겸손한 마음으로 쉬는 교우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지혜와 슬기를 주소서.
그리하여 다함께 세례성사의 은총을 다시금 되새기며,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데 참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각각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존중해 줍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어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합니다. 둘째 아들은 대답만 하고서 가지 않았습니다. 맏아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회개한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둘째 아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회개하지 않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을 가진 아버지와 두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들과 죄인이었지만 회개하고 의롭게 돌아서 의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그런데 큰 아들은 그 일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그렇게 잘 해주셨는데, 나는 이게 뭔가?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당연히 해야 될 일 조금 하라는 것을 왜 나는 거부하고 있는가?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래! 오늘부터는 아버지 일손을 도와 드려야겠다.”
그렇게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는 맏아들은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세리와 창녀들이었습니다. 회심하는 세리 자캐오, 향료의 단지를 깨뜨리고 그 향료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던 죄 많은 여인. 그들은 모두 큰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마음을 몰라주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내가 내 일에 집중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다보면 부모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나 더 나아가 작은 심부름조차도 거절하게 됩니다. 부모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시지만 나를 사랑하시기에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언젠가는 부모마음 알아주겠지!”하고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부모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그리고 기다리십니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대답만 하는 사람. 마음에도 없지만 그저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서 좋은 말을 하는 사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지 않았습니다. 이 둘째 아들은 바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유다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사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얼마나 구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행동을 보면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런 오만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결코 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답은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웃으면서 뭐든지 좋다고 합니다.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대답하고 행동으로 즉시 옮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하겠다고 말만하고 결국은 안 해 놓고 이 다음에 이런 저런 핑계만 댑니다. 그것도 웃으면서. 그리고 말합니다. “다음에는 꼭 할께요.”라고.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를 물으셨을 때 그들은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관련된 곤란한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큰 아들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자기들을 향한 질문인지를 모르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 그들 스스로 죄를 인정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로움과 경건의 가면을 썼기에 스스로도 의롭고 경건하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죄인들은 그들의 죄짓는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였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앞서서 하늘나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들을 경멸하고, 그들을 돌보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었던 그들이 세리와 창녀들의 목자였지만 돌보지를 않았습니다. 즉 대답만 “예”하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했지만 자기 하고 싶은 것들을 행했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이들의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죄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습니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은 정의의 길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다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물론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였으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 옆에서 신앙을 권고하는 사람들의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권고하는 사람이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리는 전혀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주변의 형제 자매들이 나를 위해서 해 주는 말에 귀를 기울입시다. 누가 평일미사나 레지오나 성경강좌, 기타 교리에 함께 가자고 할 때, 기꺼이 따라가야 합니다. 직장 일이 바쁘니까 못해요. 뭐가 있어서 못해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도 그것이 핑계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꺼이 응답합시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 세례자 요한의 삶과 메시지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면 그래서 행동이 바뀌었다면, 그래서 믿게 되었다면 그들은 구원의 문으로 성큼성큼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세례자 요한은 너무도 극단적이었고, 고행적이었고, 그들의 권위를 넘어섰기에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결국 세례자 요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기에 예수님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뀝니다. 행동이 바뀌면 내 삶이 바뀌고, 내 삶이 바뀌면 영생이 바뀝니다. 우리 모두 불신에서 믿음으로 생각을 바꿉시다. 그렇게 바뀌면 보이는 것들이 더욱 새롭게 보이고, 모든 것들이 나를 믿음에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내 옆에서 신앙에로 초대하는 사람들의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예”하고 응답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나는 큰아들의 모습입니까? 작은 아들의 모습입니까? 하느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②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 보고, 그 죄의 모습이 혹시 내 안에는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주님! 아직 당신을 맞이 할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벌써 촛불이 세 개가 켜졌습니다 마음으로 준비를 한다면 할 수 있는데... 행동으로 실천을 해야하니 참 어렵습니다
요즈음... 본당에서도 판공성사 외 여러행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찰고를 대신 하는 독서포럼을 비롯하여 구역별 성가경연대회... 애경사는 왜 그렇게 많은지 송년회까지 하면 아휴... 눈만 뜨면 바쁘고 정신이 없습니다 사실 아무리 바쁘고 중요하다해도 당연히 고해성사는 물론 독서포럼도 참석해야 하고 성가경연대회도 참여해야하지만 집안살림도 무시할 수 없고 애경사도 가야하니 난감합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요 그래도 차근차근 해야하지요? 주님! 신앙생활을 하는데 권리도 중요하지만 의무 또한 무시할수 없으니 기쁜마음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도 사회생활도 모두 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올 한해를 마무리해야한다는 생각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말씀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의 속마음을 들 킨 것 같아서지요 당신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이 세상에 살면서도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 못하고 있으니 기쁨과 행복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감사하는 마음보다 당신께 섭섭한 마음이 들 때가 많으니 이유난 단 한가지 저의 욕심때문이지요 남보다 제가 더 잘나야 하고 저만 잘 살아야 하고 교만과 욕심으로 가득찬 저의 못된 심성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유 또한 저의 이기심과 교만때문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묵상하며 교만하고 이기심으로 가득찬 욕심많은 저의 심성부터 고쳐야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감사할줄 아는 신앙인 헬레나 베푸는 신앙인 헬레나 사랑이 많은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올 한해만큼 신앙생활을 게을리 한 적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기본만이라도 신앙생활을 했다면 아쉬운 마음이 덜 했을텐데 아쉬울 때만 당신을 찾고 당신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자신이 참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울했습니다 다행히…. 신자들의 기도덕분에 건강이 많이 회복한 것 같다면서 주일미사 후에 감사의 인사로 떡을 봉헌하기로 했다는 남편의 말에 아쉽고 섭섭했던 올 한해 그나마 마무리를 잘 하는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매사에 상의하지 않고 모든 일을 결정하는 남편을 미워한 적이 많았는데 떡을 봉헌하기로 했다는 말에 아내인 저와 상의하지 않은 남편한테 무시당 한 것같아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잊고 기쁜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해야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해에는 저희가정에 기쁜 일이 많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말씀을 성찰하며
보지 않고도 믿고 세례를 받았던 그때처럼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새해에는 당신께서 저희가정에 축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맞아요 주님! 저는 당신이 아무리 저를 사랑한다고 하셔도 믿지 않았지요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 당신모상으로 만드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고 듣는다고 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입으로만 믿고 듣고 실천한다고 늘 떠들었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고 행동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보고도...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을 보고 듣고도... 저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당신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말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복음묵상을 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기를 수십번..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실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 뿐이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한다고 ...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을 사랑한다고.. 성경공부도 복음묵상도 보여지는 것에는 열심한 척... 남들이 교우들이 외인들까지 그럽니다 바쁜데도 열심히 한다고 대단하다고... 하늘에다 보물을 열심히 쌓고 있다고 ... 하지만 모두가 빈수레입니다 요란하고 실속없고 울리는 징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실망을 하지 않겟습니다 가지 않겟다고 하고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둘째아들이 아닌 가지 않겠다고 대담하고 포도원에 일하러간 큰 아들처럼 이제부터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겸손하고 믿음있는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눈멀고 귀 먹은 저 헬레나가 당신의 사랑으로 믿음있고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도록 미천하고 교만한 헬레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대림 제3주간 화요일(12/16)
말씀의 초대
두 아들의 비유는 형식적인 믿음을 꾸짖으시는 말씀이다. 몸만 따라가고 마음은 멀리 있는 믿음을 질책하시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세리와 창녀들을 칭찬하신다. 그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자 ‘몸과 마음’을 즉시 바꾸었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두 아들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할 것을 당부합니다. 큰아들은 거절하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바꿉니다. 작은아들은 가겠다고 해 놓고서는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더 순종하는 아들인지 질문하십니다. 대답하는 그대들은 어느 아들에 속하는지 묻고 계신 것입니다. 가겠다는 말만 하고 ‘가지 않은 아들’은 누구의 모습일는지요? 문맥으로 보면 바리사이들입니다.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든 “예!” 하고 답하지만 적당히 대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오늘에도 많습니다. 행동은 적고 요구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절했다가 ‘일하러 간 아들’을 ‘세리와 창녀’에 비유하십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입니다. 율법에서는 죄인으로 간주되던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큰아들의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비유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세리와 창녀들도 삶을 바꾸는데 ‘왜 바꾸지 못하는가?’ 하는 질책입니다. 바꾸어야 은총이 함께합니다. 맏아들은 싫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러기에 순종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도움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쁨과 함께 답을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대림 제3주간 화요일(12/16)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말씀을 거절하면 불행해진다. 아무리 예루살렘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반항하면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민족의 침략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하고 생각을 바꾼다면 평화를 누릴 것이다. 용서와 함께 축복이 있을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구세주의 구원이 모든 가난한 사람에게 약속되리라.>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2.9-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리라.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 그날에는 네가 나를 거역하며 저지른 그 모든 행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에는 내가 네 가운데에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 그러면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서 다시는 교만을 부리지 않으리라.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맞아요 주님!
저는 당신이 아무리 저를 사랑한다고 하셔도 믿지 않았지요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
당신모상으로 만드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고 듣는다고 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입으로만 믿고 듣고 실천한다고 늘 떠들었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고 행동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보고도...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을 보고 듣고도...
저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당신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말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복음묵상을 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기를 수십번..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실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 뿐이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한다고 ...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을 사랑한다고..
성경공부도 복음묵상도 보여지는 것에는 열심한 척...
남들이 교우들이 외인들까지 그럽니다
바쁜데도 열심히 한다고 대단하다고...
하늘에다 보물을 열심히 쌓고 있다고 ...
하지만 모두가 빈수레입니다
요란하고 실속없고 울리는 징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실망을 하지 않겟습니다
가지 않겟다고 하고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둘째아들이 아닌 가지 않겠다고 대담하고 포도원에 일하러간
큰 아들처럼 이제부터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겸손하고 믿음있는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눈멀고 귀 먹은 저 헬레나가 당신의 사랑으로
믿음있고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도록
미천하고 교만한 헬레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오소서, 주님.
지체하지 마소서.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아멘
“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묵상하며
♬ Vivaldi / 하늘과 땅의 평화이신 주님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맞아요 주님!
저는 당신이 아무리 저를 사랑한다고 하셔도 믿지 않았지요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
당신모상으로 만드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고 듣는다고 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입으로만 믿고 듣고 실천한다고 늘 떠들었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고 행동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보고도...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을 보고 듣고도...
저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당신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말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복음묵상을 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기를 수십번..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실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 뿐이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한다고 ...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을 사랑한다고..
성경공부도 복음묵상도 보여지는 것에는 열심한 척...
남들이 교우들이 외인들까지 그럽니다
바쁜데도 열심히 한다고 대단하다고...
하늘에다 보물을 열심히 쌓고 있다고 ...
하지만 모두가 빈수레입니다
요란하고 실속없고 울리는 징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실망을 하지 않겟습니다
가지 않겟다고 하고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둘째아들이 아닌 가지 않겠다고 대담하고 포도원에 일하러간
큰 아들처럼 이제부터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겸손하고 믿음있는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눈멀고 귀 먹은 저 헬레나가 당신의 사랑으로
믿음있고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도록
미천하고 교만한 헬레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오소서, 주님.
지체하지 마소서.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아멘
“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묵상하며
♬ Vivaldi / 하늘과 땅의 평화이신 주님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는 바리사이들에게
오늘은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그들을 질책하십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그들을~~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러 왔던
세례자 요한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질문을 던지시며
그들의 의중을 물으십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라고~
그들은 “맏아들입니다.” 라고 답합니다.
가지않겠다 하였지만
마음을 바꾸어 일하러 간,
큰 아들이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작은 아들이 바로 바리사이들의 모습인데~
자칭 의롭다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인데~
바보들처럼~ ㅎㅎ
허긴 제 모습일수도 있지요.
결국은 그들 스스로 자기네들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인데요.
그치요? ㅎㅎ 바보들~
그리 똑똑하다는 그들!
요한을 인정하고 믿지 않았던 이들이었는데요.
율법을 지키며 잘 살아간다 자부하는 그들!
적당히 대충 타협하면서 자신들의 부족을 모르는 채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를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호숫가에 아른히 비추이는 환한 달빛처럼
저의 모습이 아름히 떠오릅니다.
전엔 완전히 바리사이였는데요. ㅎㅎ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저의 등대가 되어
저가 가는 길목마다 빛으로 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젠
적절한 말꼬리로 재주부리고,
제 욕심을 채우며
아버지의 뜻을 멀리하지 않게 되었지요.
세례자 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할 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보고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던 그들이 스스로”큰 아들이요.” 라고 합니다.
그러한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정말 제 모습이었는데~
진정 회개하여 아버지께로 가는 길에 드는게 아니라
허울좋은 말솜씨로 요리조리 피해가며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계획하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에서
저를 건져주시어 지금의 저로 만들어 주셨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회개할 줄 모르는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십니다.
싫다 하였지만 마음을 바꾸어
포도밭으로 일하러 가는 큰 아들과
단번에 가겠다 했지만
가지 않은 작은 아들의 비유를 들어서 물으십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라고~
그러자 그들은
“맏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참 밉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드러나는 그들의 양면성!
세례자 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할 때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대답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중에서
저는 과연 어느 쪽일까를 생각하게 하시는 것같아
가슴 언저리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장을 맡아 열심히 봉사한다면서
다른 이들보다 얼마나 더 열심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순종하는 자세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는지~
혹시 작은 아들의 모습으로 살아오진 않았는지요.
긍정의 대답을 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 저는 아니었는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를 돌아보고 성찰하면서
사랑고백에서 회개의 기쁨을 만끽하며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뉘우침을 행동으로 옮기는 저였는지요.
아버지!
부족한 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께로 향하는데 있어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멋진 삶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저의 사랑이
저를 늘 깨어있게 하시어
깊은 골짜기 옹달샘되어
마르지 않는 저가 되게 하소서.
때론 아버지의 가르침에 반항할때면
사랑의 따스한 가슴으로
아버지께 늘 순종하는 저가 되어
아버지 품에 들게 하소서.
아멘.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는 바리사이들에게
오늘은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그들을 질책하십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그들을~~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러 왔던
세례자 요한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질문을 던지시며
그들의 의중을 물으십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라고~
그들은 “맏아들입니다.” 라고 답합니다.
가지않겠다 하였지만
마음을 바꾸어 일하러 간,
큰 아들이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작은 아들이 바로 바리사이들의 모습인데~
자칭 의롭다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인데~
바보들처럼~ ㅎㅎ
허긴 제 모습일수도 있지요.
결국은 그들 스스로 자기네들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인데요.
그치요? ㅎㅎ 바보들~
그리 똑똑하다는 그들!
요한을 인정하고 믿지 않았던 이들이었는데요.
율법을 지키며 잘 살아간다 자부하는 그들!
적당히 대충 타협하면서 자신들의 부족을 모르는 채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를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호숫가에 아른히 비추이는 환한 달빛처럼
저의 모습이 아름히 떠오릅니다.
전엔 완전히 바리사이였는데요. ㅎㅎ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저의 등대가 되어
저가 가는 길목마다 빛으로 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젠
적절한 말꼬리로 재주부리고,
제 욕심을 채우며
아버지의 뜻을 멀리하지 않게 되었지요.
세례자 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할 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보고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던 그들이 스스로”큰 아들이요.” 라고 합니다.
그러한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정말 제 모습이었는데~
진정 회개하여 아버지께로 가는 길에 드는게 아니라
허울좋은 말솜씨로 요리조리 피해가며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계획하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에서
저를 건져주시어 지금의 저로 만들어 주셨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회개할 줄 모르는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십니다.
싫다 하였지만 마음을 바꾸어
포도밭으로 일하러 가는 큰 아들과
단번에 가겠다 했지만
가지 않은 작은 아들의 비유를 들어서 물으십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라고~
그러자 그들은
“맏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참 밉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드러나는 그들의 양면성!
세례자 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할 때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대답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중에서
저는 과연 어느 쪽일까를 생각하게 하시는 것같아
가슴 언저리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장을 맡아 열심히 봉사한다면서
다른 이들보다 얼마나 더 열심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순종하는 자세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는지~
혹시 작은 아들의 모습으로 살아오진 않았는지요.
긍정의 대답을 하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 저는 아니었는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를 돌아보고 성찰하면서
사랑고백에서 회개의 기쁨을 만끽하며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뉘우침을 행동으로 옮기는 저였는지요.
아버지!
부족한 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께로 향하는데 있어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멋진 삶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저의 사랑이
저를 늘 깨어있게 하시어
깊은 골짜기 옹달샘되어
마르지 않는 저가 되게 하소서.
때론 아버지의 가르침에 반항할때면
사랑의 따스한 가슴으로
아버지께 늘 순종하는 저가 되어
아버지 품에 들게 하소서.
아멘.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고통과 아픔이 클때는 눈물을 흘리며 결심합니다.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그런데 작심하루 아니라 몇분 몇 시간밖에 못 가는 저를 봅니다.
이렇게 말로만 그분을 찾고 금새 잊어버리고 맙니다.
결연한 의지와 과감한 결단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제게 오늘 주님께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근사한 말과 감언이설, 글로만 떠들게 아니라
과감하게 나를 깨고 행동으로 옮기라 하십니다.
그럼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속박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물질에 대한 애착 욕심이 아닌가 묵상해 봤습니다.
이것을 내려놓을때
그제서야 당신과 함께 할수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
빈손이 되려는 연습을 실천으로 옮길수 있도록
당신은총 간구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고통과 아픔이 클때는 눈물을 흘리며 결심합니다.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그런데 작심하루 아니라 몇분 몇 시간밖에 못 가는 저를 봅니다.
이렇게 말로만 그분을 찾고 금새 잊어버리고 맙니다.
결연한 의지와 과감한 결단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제게 오늘 주님께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근사한 말과 감언이설, 글로만 떠들게 아니라
과감하게 나를 깨고 행동으로 옮기라 하십니다.
그럼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속박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물질에 대한 애착 욕심이 아닌가 묵상해 봤습니다.
이것을 내려놓을때
그제서야 당신과 함께 할수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
빈손이 되려는 연습을 실천으로 옮길수 있도록
당신은총 간구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지난 주말 레지오를 하면서 처음으로 쉬는교우 방문을 다녔습니다.
우리에게 내려주신 활동의 내용인즉슨, 쉬는 교우 집 열 곳을 방문하여
주임신부님께서 특별히 작성하신 편지를 전하고 대림시기임을
설명하고 판공성사가 있음을 안내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출발하기 전에 ‘예수님, 둘 이상이 있는 곳에 함께 하여
주신다고 하셨으니 꼭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라고 기도하고
포부도 당당하게 약간 들뜬 마음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하다 못해 참패였습니다.
단 한사람의 얼굴도 마주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저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맛보았지요. 날씨나 포근했나… 칼바람 부는 황량한 겨울 도시를 하루종일
돌고 나니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지요.
오늘 복음의 작은 아들처럼 간다고 햇지만 가지 말것을…괜히 시작했나
하는 후회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오기가 생기니, 하루종일 추위에 떨면서
발품을 팔았던게 억울해서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지요.
해당 구역의 반장님 연락처를 알아내서 이사갔는지의 여부와
오래된 전화번호라도 받아서 차근차근 정리를 하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는…
일곱 집은 오래전에 이사를 갔고, 나머지 두 집은 오랜기간 쉬고 있다하여
편지만 전해주었으며, 나머지 한 집은 이사를 갔는데…
아는 자매님이었지 뭡니까? 그 분께는 판공성사를 보도록 노력하겠다는
대답을 받았으니.. 열 명 중 한명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 예수님께서는 저희들의
바램을 결코 저버리시지는 않으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말로만 듣던 쉬는교우 방문의 그 첫걸음이 만만치 않았음을
뼈저리게 느꼈던 …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며 보낸
주말이었답니다. 좀더 따뜻하고 정다운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큰아들은 가지않겠다고 하였다가 나중에
깨달은 바 있어 일터로 나갔고, 처음부터 가겠다고 했다가
끝내 일하러 나가지 않은 작은 아들의 사건을 세리와 창녀들의
회개에 비유하심으로써…
오늘도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실천하는 것은 거의
눈곱만큼인 저 루실라를 향해 호되게 꾸중을 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주님! 제가 좀더 겸손한 마음으로 쉬는 교우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지혜와 슬기를 주소서.
그리하여 다함께 세례성사의 은총을 다시금 되새기며,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데 참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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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주인의 두 아들
1. 말씀읽기:마태21,28-32 두 아들의 비유
2.말씀연구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각각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존중해 줍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어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합니다. 둘째 아들은 대답만 하고서 가지 않았습니다. 맏아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회개한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둘째 아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회개하지 않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을 가진 아버지와 두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들과 죄인이었지만 회개하고 의롭게 돌아서 의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그런데 큰 아들은 그 일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그렇게 잘 해주셨는데, 나는 이게 뭔가?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당연히 해야 될 일 조금 하라는 것을 왜 나는 거부하고 있는가?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래! 오늘부터는 아버지 일손을 도와 드려야겠다.”
그렇게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는 맏아들은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세리와 창녀들이었습니다. 회심하는 세리 자캐오, 향료의 단지를 깨뜨리고 그 향료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던 죄 많은 여인. 그들은 모두 큰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마음을 몰라주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내가 내 일에 집중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다보면 부모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나 더 나아가 작은 심부름조차도 거절하게 됩니다. 부모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시지만 나를 사랑하시기에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언젠가는 부모마음 알아주겠지!”하고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부모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그리고 기다리십니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대답만 하는 사람. 마음에도 없지만 그저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서 좋은 말을 하는 사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지 않았습니다. 이 둘째 아들은 바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유다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사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얼마나 구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행동을 보면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런 오만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결코 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답은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웃으면서 뭐든지 좋다고 합니다.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대답하고 행동으로 즉시 옮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하겠다고 말만하고 결국은 안 해 놓고 이 다음에 이런 저런 핑계만 댑니다. 그것도 웃으면서. 그리고 말합니다. “다음에는 꼭 할께요.”라고.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를 물으셨을 때 그들은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관련된 곤란한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큰 아들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자기들을 향한 질문인지를 모르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 그들 스스로 죄를 인정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로움과 경건의 가면을 썼기에 스스로도 의롭고 경건하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죄인들은 그들의 죄짓는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였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앞서서 하늘나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들을 경멸하고, 그들을 돌보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었던 그들이 세리와 창녀들의 목자였지만 돌보지를 않았습니다. 즉 대답만 “예”하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했지만 자기 하고 싶은 것들을 행했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이들의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죄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습니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은 정의의 길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다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물론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였으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 옆에서 신앙을 권고하는 사람들의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권고하는 사람이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리는 전혀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주변의 형제 자매들이 나를 위해서 해 주는 말에 귀를 기울입시다. 누가 평일미사나 레지오나 성경강좌, 기타 교리에 함께 가자고 할 때, 기꺼이 따라가야 합니다. 직장 일이 바쁘니까 못해요. 뭐가 있어서 못해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도 그것이 핑계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꺼이 응답합시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 세례자 요한의 삶과 메시지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면 그래서 행동이 바뀌었다면, 그래서 믿게 되었다면 그들은 구원의 문으로 성큼성큼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세례자 요한은 너무도 극단적이었고, 고행적이었고, 그들의 권위를 넘어섰기에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결국 세례자 요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기에 예수님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뀝니다. 행동이 바뀌면 내 삶이 바뀌고, 내 삶이 바뀌면 영생이 바뀝니다. 우리 모두 불신에서 믿음으로 생각을 바꿉시다. 그렇게 바뀌면 보이는 것들이 더욱 새롭게 보이고, 모든 것들이 나를 믿음에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내 옆에서 신앙에로 초대하는 사람들의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예”하고 응답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나는 큰아들의 모습입니까? 작은 아들의 모습입니까? 하느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②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 보고, 그 죄의 모습이 혹시 내 안에는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
아직 당신을 맞이 할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벌써
촛불이 세 개가 켜졌습니다
마음으로 준비를 한다면 할 수 있는데...
행동으로 실천을 해야하니 참 어렵습니다
요즈음...
본당에서도 판공성사 외 여러행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찰고를 대신 하는 독서포럼을 비롯하여 구역별 성가경연대회...
애경사는 왜 그렇게 많은지 송년회까지 하면 아휴...
눈만 뜨면 바쁘고 정신이 없습니다
사실 아무리 바쁘고 중요하다해도 당연히 고해성사는 물론
독서포럼도 참석해야 하고 성가경연대회도 참여해야하지만
집안살림도 무시할 수 없고 애경사도 가야하니 난감합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요
그래도 차근차근 해야하지요? 주님!
신앙생활을 하는데 권리도 중요하지만 의무 또한 무시할수 없으니
기쁜마음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도 사회생활도 모두 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올 한해를 마무리해야한다는 생각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말씀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의 속마음을 들 킨 것 같아서지요
당신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이 세상에 살면서도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 못하고 있으니
기쁨과 행복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감사하는 마음보다 당신께 섭섭한 마음이
들 때가 많으니 이유난 단 한가지 저의 욕심때문이지요
남보다 제가 더 잘나야 하고 저만 잘 살아야 하고
교만과 욕심으로 가득찬 저의 못된 심성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유 또한 저의 이기심과 교만때문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묵상하며
교만하고 이기심으로 가득찬 욕심많은 저의 심성부터 고쳐야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감사할줄 아는 신앙인 헬레나
베푸는 신앙인 헬레나
사랑이 많은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묵상하며
♬ 부산가톨릭합창단 – 주여 임하소서 – Lowell Mason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올 한해만큼 신앙생활을 게을리 한 적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기본만이라도 신앙생활을 했다면 아쉬운 마음이 덜 했을텐데
아쉬울 때만 당신을 찾고 당신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자신이
참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울했습니다
다행히….
신자들의 기도덕분에 건강이 많이 회복한 것 같다면서
주일미사 후에 감사의 인사로 떡을 봉헌하기로 했다는 남편의 말에
아쉽고 섭섭했던 올 한해 그나마 마무리를 잘 하는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매사에 상의하지 않고 모든 일을 결정하는 남편을 미워한 적이
많았는데 떡을 봉헌하기로 했다는 말에 아내인 저와 상의하지 않은
남편한테 무시당 한 것같아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잊고
기쁜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해야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해에는 저희가정에 기쁜 일이 많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말씀을 성찰하며
보지 않고도 믿고 세례를 받았던 그때처럼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새해에는 당신께서 저희가정에 축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묵상하며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맞아요 주님!
저는 당신이 아무리 저를 사랑한다고 하셔도 믿지 않았지요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
당신모상으로 만드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고 듣는다고 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입으로만 믿고 듣고 실천한다고 늘 떠들었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고 행동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보고도...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을 보고 듣고도...
저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당신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말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복음묵상을 하면서 회개를 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기를 수십번..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실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 뿐이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한다고 ...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을 사랑한다고..
성경공부도 복음묵상도 보여지는 것에는 열심한 척...
남들이 교우들이 외인들까지 그럽니다
바쁜데도 열심히 한다고 대단하다고...
하늘에다 보물을 열심히 쌓고 있다고 ...
하지만 모두가 빈수레입니다
요란하고 실속없고 울리는 징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실망을 하지 않겟습니다
가지 않겟다고 하고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은
둘째아들이 아닌 가지 않겠다고 대담하고 포도원에 일하러간
큰 아들처럼 이제부터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겸손하고 믿음있는 헬레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눈멀고 귀 먹은 저 헬레나가 당신의 사랑으로
믿음있고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도록
미천하고 교만한 헬레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오소서, 주님.
지체하지 마소서.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아멘
“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