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대림 제3주간 수요일(12/17)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다. 모르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브라함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시켜 준다. 복음의 교훈은 간단하다. 예수님을 통해 ‘예언의 성취’가 되었다는 것이다(복음).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7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긴 족보를 읽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생소한 이름도 많습니다. 히브리 발음이라 혀가 잘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오직 그 이유 하나뿐입니다. 예비 신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려고 마태오 복음을 펼칩니다. 그러다 족보를 접하게 되면 금방 흥미를 잃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또 낳고’ 하는 말이 마흔 번 가까이나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연관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족보 이야기의 핵심은 ‘예언의 성취’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족보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며, 나머지는 조연들입니다.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렸던 역사의 조연들이지요. 유다인의 족보에는 가문을 대표하는 남자 이름과 대를 잇는 장자의 이름만 기록합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세 분은 이방인 여인들입니다. 이렇듯 구세주의 출현에는 세상 모든 이가 동참했음을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My Jesus, I love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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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수요일(12/17)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다. 모르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브라함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시켜 준다. 복음의 교훈은 간단하다. 예수님을 통해 ‘예언의 성취’가 되었다는 것이다(복음).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7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긴 족보를 읽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생소한 이름도 많습니다. 히브리 발음이라 혀가 잘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오직 그 이유 하나뿐입니다. 예비 신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려고 마태오 복음을 펼칩니다. 그러다 족보를 접하게 되면 금방 흥미를 잃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또 낳고’ 하는 말이 마흔 번 가까이나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연관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족보 이야기의 핵심은 ‘예언의 성취’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족보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며, 나머지는 조연들입니다.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렸던 역사의 조연들이지요. 유다인의 족보에는 가문을 대표하는 남자 이름과 대를 잇는 장자의 이름만 기록합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세 분은 이방인 여인들입니다. 이렇듯 구세주의 출현에는 세상 모든 이가 동참했음을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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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수요일(12/17)


      말씀의 초대
      야곱은 열두 아들을 모아 놓고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 준다. 이들은 훗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뿌리가 된다. 넷째 아들 유다는 특별한 축복을 받는다.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는 말씀이다. 임금의 가문이란 예언을 받은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왕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1-2.8-10 그 무렵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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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오늘은 아버지의 족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생소한 이름들에 약간은 낯설어 하면서도

    아버지께서 오시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면서

    머리에 담아 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역사를~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이사악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아버지의 족보를 보면서

    살짝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아직 멀었죠? ㅎㅎ

    제가 참 이기적인가봐요.

    저희 집안 족보를 잠깐 덜쳐 보았는데

    다 건너뛰고 저희에 대해 적혀있는 곳을 찾느라

    정신없이 뒤적거렸답니다.

    가끔 보면서 저의 위치만을 확인하고

    표시해 두었지만 자주 보는게 아니라

    그것도 한번에 찾지를 못한거죠.

    조상들이 없었다면 저희가 어찌 있었으며,

    나아가서는 아버지께서 세상 창조를 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 저희가 어찌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저희 친정 부모님마저도

    더 깊은 사랑으로 안으실 분이 울아버지시기에

    전 더 가까이 아버지 곁에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잘 놀고 있지요.

    허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버지 품에 있지요.

    그쵸?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부족한 저가

    못난 이기심으로 윗대를 다 자르고 바로 코앞에 있는

    것만을 보려 했던 것이 좀은 창피하고 머쓱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제가 참 좋아합니다.

    족보를 통해 아버지께서 오심으로

     예언이 이루어 짐을 묵상하려니

    절로 감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꼭 누가 계획했던 일들처럼 이어졌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마음 한편에선

    아버지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아버지께서 오심의 과정을 부정한 적은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기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한켠에는 아버지를 알고 변화된

    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알고 제겐 모든 것이 ‘덤’ 이 되었지요.

    그래서 더 기쁘고, 더 행복하고, 더 감사하고

    더 사랑하고, 더 많이 움직입니다.

    가끔은 저만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할 때도 있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신 그 말씀이 저에겐 큰 기둥이자

    함께 살아 숨쉬는 체온이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알 수 있는

    아버지의 족보를 더 사랑하고

    더 빛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봅니다.

    정말 빛나는 족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후손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듯이

    저역시 부족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이 더욱 빛나게 하기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는 제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족보를 보면서

     쬠은 낯설고 어려워 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철없고 마냥 어설픈 모습이지만

    아버지 앞에선 그것도 당당하게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어봅니다.

    아버지니까요.

    “어려워요. 지루해요. 이름이 뭐가 이러냐”하지만

    족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오시기까지의 발자취를

    가슴깊이에 새기며

    뿌리깊은 자식이 되려고 마음속에 두손을 쥐어 봅니다.

    부족하고 모난 저를 지극한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어둔 밤 길을 갈 때에도 사랑의 빛을 밝혀 주시어

    구렁으로 빠지지 않게 하소서.

    어떠한 위험이나 어려움에서도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며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하시어

    처음 맘으로

     어버지 무릎에서 자고 깨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오심을 알 수 있는 족보가 어렵다고

    투정부리지만 그 족보를 빛내는데

    무엇을 할까? 를 고민하는 저가 되어

    열정을 쏟게 하소서.

    새 도화지에 풍경을 넣듯이

    아버지 족보에 더 빛나는 사랑을 더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오늘은 아버지의 족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생소한 이름들에 약간은 낯설어 하면서도

    아버지께서 오시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면서

    머리에 담아 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역사를~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이사악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아버지의 족보를 보면서

    살짝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아직 멀었죠? ㅎㅎ

    제가 참 이기적인가봐요.

    저희 집안 족보를 잠깐 덜쳐 보았는데

    다 건너뛰고 저희에 대해 적혀있는 곳을 찾느라

    정신없이 뒤적거렸답니다.

    가끔 보면서 저의 위치만을 확인하고

    표시해 두었지만 자주 보는게 아니라

    그것도 한번에 찾지를 못한거죠.

    조상들이 없었다면 저희가 어찌 있었으며,

    나아가서는 아버지께서 세상 창조를 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 저희가 어찌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저희 친정 부모님마저도

    더 깊은 사랑으로 안으실 분이 울아버지시기에

    전 더 가까이 아버지 곁에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잘 놀고 있지요.

    허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버지 품에 있지요.

    그쵸?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부족한 저가

    못난 이기심으로 윗대를 다 자르고 바로 코앞에 있는

    것만을 보려 했던 것이 좀은 창피하고 머쓱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제가 참 좋아합니다.

    족보를 통해 아버지께서 오심으로

     예언이 이루어 짐을 묵상하려니

    절로 감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꼭 누가 계획했던 일들처럼 이어졌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마음 한편에선

    아버지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아버지께서 오심의 과정을 부정한 적은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기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한켠에는 아버지를 알고 변화된

    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알고 제겐 모든 것이 ‘덤’ 이 되었지요.

    그래서 더 기쁘고, 더 행복하고, 더 감사하고

    더 사랑하고, 더 많이 움직입니다.

    가끔은 저만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할 때도 있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신 그 말씀이 저에겐 큰 기둥이자

    함께 살아 숨쉬는 체온이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알 수 있는

    아버지의 족보를 더 사랑하고

    더 빛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봅니다.

    정말 빛나는 족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후손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듯이

    저역시 부족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이 더욱 빛나게 하기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는 제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족보를 보면서

     쬠은 낯설고 어려워 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철없고 마냥 어설픈 모습이지만

    아버지 앞에선 그것도 당당하게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어봅니다.

    아버지니까요.

    “어려워요. 지루해요. 이름이 뭐가 이러냐”하지만

    족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오시기까지의 발자취를

    가슴깊이에 새기며

    뿌리깊은 자식이 되려고 마음속에 두손을 쥐어 봅니다.

    부족하고 모난 저를 지극한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어둔 밤 길을 갈 때에도 사랑의 빛을 밝혀 주시어

    구렁으로 빠지지 않게 하소서.

    어떠한 위험이나 어려움에서도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며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하시어

    처음 맘으로

     어버지 무릎에서 자고 깨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오심을 알 수 있는 족보가 어렵다고

    투정부리지만 그 족보를 빛내는데

    무엇을 할까? 를 고민하는 저가 되어

    열정을 쏟게 하소서.

    새 도화지에 풍경을 넣듯이

    아버지 족보에 더 빛나는 사랑을 더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할때마다


    사실은 언제나 복음말씀이 지루하게 느껴져 성경을
    대충(?)읽어보곤 하였습니다
    더구나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고 어느 때는 꼭 읽어야하나?
    정말 지루한데 속독법을 배웠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하고...
    어떻게 하면 한 눈에 모두 읽을 수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속된 말로 방정맞은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참 버릇이 없지요? 주님!
    감히 성경말씀을 무슨 삼류 소설책을 읽듯이 생각하니...
    언제 철이 들런지  제가 생각해도 철이 없는 것같습니다
    그러면서 아들녀석한테  제가 지정곡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네 나이가 몇 살인데그러냐  철 좀 들어라”
    아들녀석이 그럽니다 
    “엄마 철 들면 무거워요  천하장사도 아닌데  아휴!”
    주님! 저 언제쯤이면 철이 들지요?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하니 그것도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말씀이 가슴이 벅차옴을 느낍니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사실이...
    제가 그리스도를 예수님이라고 부 를수 있는 영광이...
    예수님께서 저를 당신의 자녀라고 선택을 하셨다는 사실이...
    비록 5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까지 철이 들지 않은 형편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예수님”이라는 분을 믿고 의지한다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직까지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 족보를 외우지 못하지만...
    당신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쁩니다
    축복받은 저 헬레나는  행복합니다
    아직까지도...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외우지 못하고 있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혜여, 모든 일을 강건하고
    아름답게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슬기를 가르치러 오소서”
    아멘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묵상하며

     
    ♬ L'esperance Gaudemus[희망의 찬미가]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6. user#0 님의 말: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할때마다


    사실은 언제나 복음말씀이 지루하게 느껴져 성경을
    대충(?)읽어보곤 하였습니다
    더구나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고 어느 때는 꼭 읽어야하나?
    정말 지루한데 속독법을 배웠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하고...
    어떻게 하면 한 눈에 모두 읽을 수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속된 말로 방정맞은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참 버릇이 없지요? 주님!
    감히 성경말씀을 무슨 삼류 소설책을 읽듯이 생각하니...
    언제 철이 들런지  제가 생각해도 철이 없는 것같습니다
    그러면서 아들녀석한테  제가 지정곡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네 나이가 몇 살인데그러냐  철 좀 들어라”
    아들녀석이 그럽니다 
    “엄마 철 들면 무거워요  천하장사도 아닌데  아휴!”
    주님! 저 언제쯤이면 철이 들지요?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하니 그것도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말씀이 가슴이 벅차옴을 느낍니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사실이...
    제가 그리스도를 예수님이라고 부 를수 있는 영광이...
    예수님께서 저를 당신의 자녀라고 선택을 하셨다는 사실이...
    비록 5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까지 철이 들지 않은 형편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예수님”이라는 분을 믿고 의지한다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직까지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 족보를 외우지 못하지만...
    당신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쁩니다
    축복받은 저 헬레나는  행복합니다
    아직까지도...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외우지 못하고 있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혜여, 모든 일을 강건하고
    아름답게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슬기를 가르치러 오소서”
    아멘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묵상하며

     
    ♬ L'esperance Gaudemus[희망의 찬미가]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7. guest 님의 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1. 말씀읽기:마태1,1-17 예수그리스도의 족보 (루카 3,23-38)

     

    2. 말씀연구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가 복음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 합니다. 이 첫 증거는 바로 족보입니다. 하지만 신약성서를 대하면서 처음 접하게 되는 족보는 성서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립니다. 읽기 쉽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문장의 나열은 성서를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무미건조한 듯 보이는 이 족보야말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깊은 뜻이 담긴 것입니다. 이 족보는 2000년 전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복음사가 마태오가 복음 첫머리에 이렇게 쓴 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이 족보를 읽으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을까요?

    인류를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참 자유를 주시러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란 말로써 구약시대를 통하여 모든 유다인의 조상들과 왕에게, 그리고 예언자의 말을 통하여 비추어 주었던 초자연적 빛이 후손인 “예수님”께 집중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괴로움의 바다인 인생 항로를 걸어 온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것은 그 괴로움의 바다에서 구해 주실 구세주의 오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이 구세주는 아브라함의 후손,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다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그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이 메시아 약속의 상속인(上역대기 17,7-14;시편89,4)으로, 특권 있는 이사이의 꽃, 곧 다윗의 꽃, 메시아를 꽃피울 왕조의 창립자로서 숭배해 왔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로서 가장 즐겨 써 온 같은 뜻을 가진 표현입니다.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대로 이사악을 낳게 되고, 이사악은 에사우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선택된 것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도 열둘의 아들을 낳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유다를 통해서 당신 구원 역사를 펼치십니다.

     

    “낳았다”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는 자연적 출산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낳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간접적인 관계도 있습니다(예를 들면 요시야와 여고니야의 관계인데, 여고니야는 요시야의 손자이다). 또한 왕의 권리와 메시아의 약속의 계승을 의미하는 왕위 계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유다인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법률상의 부자관계입니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타마르는 룻처럼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에 소속되고, 그 아들 페레츠를 통하여 다윗 왕의 조상이 됩니다(룻4,12.18-22 참조). 그런데 타마르는 유다의 맏아들 “에르 ”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에르는 야훼의 눈 밖에 나서 죽었습니다. 아버지 유다는 오난에게 형수에게 장가들어 시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여 형의 후손을 남기라고 하였지만(수혼제, 레비라토 율법) 오난은 형에게 후손을 남겨 주려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야훼 하느님의 눈 밖에 나서 죽어 버립니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어른이 될 때까지 친정에 돌아가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하고 친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다말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타마르는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의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됩니다(창세38,1-30).

    타마르는 졸지에 과부가 되었고, 또 시동생마저 잡아먹은 여자가 되었습니다. 다말! 그녀의 이름의 뜻은 대추야자나무입니다. 대추야자나무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사막에서는 이 열매가 중요한 식량이고 부(富)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아주 옛날부터 재배해왔으며 귀하게 여겨왔습니다. 유럽의 지중해 연안에서는 이 나무를 관상수로 심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주님수난 성지주일에(종려주일), 유대인이 장막절(帳幕節)을 기릴 때 이 나무의 잎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타마르는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 있고, 두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그리고 시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지만 그것 또한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왔다. 타마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죽은 남편의 후사를 마련해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한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완성해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대추야자나무를 뜻했는데, 우연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 나뭇가지를 들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하였습니다. 다말!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개척하였고, 그렇게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내 삶 또한 구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써 주실 것입니다.

    우리 족보라면 시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며느리를 족보에 올릴 수 없겠지만 이 족보는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것들을 통하여 당신 구원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수혼제”: 어느 남자가 아들 없이 죽으면 그의 형제 또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 과부를 얻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들을 죽은 남자의 법적인 아들로 간주했던 관습이 있었습니다(신명기25,5-10). 이 족보에도 수혼제의 경우가 있습니다. 3세기의 역사가인 율리우스 아프리까누스가 처음으로 이것을 제시하는데, 현대의 성서학자들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나단의 아들 야곱은 엘리의 형제였습니다. 엘리가 아들 없이 죽자 야곱은 그 아내를 얻어 요셉을 낳았습니다. 여기서 사실상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었으나 법률상 엘리의 아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마태오복음에서는 야곱의 아들이며, 루카복음에서는 엘리의 아들이 되고 있습니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라합은 예리고의 창녀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예리고를 점령하기 위해 정탐군을 보냈을 때 라합은 목숨을 걸고 그들을 살려주었습니다. 그 대가로 예리고가 점령되었을 때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예수님의 족보에도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여호수아2,1-6,27).

    룻 또한 이방 여인(모압)이었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살다가 기근이 들어서 모압으로 내려가서 살았습니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며느리를 얻었지만 둘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오르파와 룻이라는 두 며느리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오미는 고향에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두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가지 않겠다는 며느리들을 타일렀지만 룻은 시어머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척 보아즈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는 가까운 친척이 가족의 유산이 없어지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 “속량”해 주는 습관이 있었습니다(룻기4,4; 레우25,23-25 참조). 그리고 죽은 형의 동생이 형수를 맞아들여 그 형의 후손과 그 이름을 없어지지 않게 해 주어야 하는 레비라토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이방인 여인 룻도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 그녀는 남편이 있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부정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부정을 은폐하기 위해 바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잘못된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찬미할 뿐입니다.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이 존경했던 여인들, 즉 사라, 레베카, 라헬 등이 빠져있는데 그 이유는 미천한 사람들(타마르, 라합, 바쎄바, 룻)을 택함으로써(그 당시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을 사람취급 하지 않았다)을 선택함으로써 사람들이 보기에 위대한 것을 선택하지 않는 하느님의 특이한 의로움의 일면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방여인을 택함으로써 이방인까지도 구원하는 하느님의 행동을 하사하려는 것. 즉 족보의 의미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면서 인류구원을 실현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족보의 의미: 유다인의 족보에 여자의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습니다(민수기 36,1-12). 그런데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은 사라나 레베카 등 위대한 여인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말과 바쎄바, 라합과 룻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 여자 가운데 타마르와 라합과 바쎄바는 우리가 보기에도 품행이 방정 했던 여인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룻은 이방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족보에 이런 여인들이 들어와 있을까요?

     

    예수님의 족보에 거룩한 여자가 아니라 죄지은 여자와 이방 여인을 기록한 것은 구세주께서 오신 것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며, 자신도 죄인 사이에서 태어나 만민의 죄를 씻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 모두를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리아는 이 족보에서 전혀 다르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즉 누가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았다는 도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이름을 언급함이 없이 “…에게서 예수님을 낳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혈육보다는 내 대를 잇는 사람으로 선포되면 그 사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법적인 승인이 결정적입니다. 누군가 이 사람이 내 아들이라고 말하면 그는 친자임이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아브라함 – 다윗: 14대, 다윗- 바빌론 유배: 14대, 바빌론유배-예수님: 14대

    ☞ 족보를 인위적으로 기록 ☞ 예수님 안에서 구세사업이 완성됨을 나타냄

    7이라는 숫자: 완전함 충만함, 7×2 = 14(충만)▶때가 꽉 찼다.

     

    이 족보는 14대씩 세 시대로 (성조의 시대, 왕의 시대, 사제의 시대)나눠서 전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14란 숫자가 히브리인이 “거룩하고 완전한 수”라고 보고 있던 7의 배수이고,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14대이므로 그것을 모델로 삼아 다른 시대도 14대로 나누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성조의 시대, 왕의 시대, 사제의 시대로 구분하여 전해주고 있다.

     

    3. 나눔 및 묵상

    ① 가장 읽기 힘든 부분이 바로 이 족보 부분입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끝까지 한번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② 족보를 통해 느끼는 것을 함께 나눠 봅시다. 족보 안에서 구원을 느낄 수 있습니까? 또한 내가 우리 집안의 족보를 쓴다면 불명예스러운 사람들을 족보에 올리겠습니까?

     

  8. guest 님의 말:

    사랑하면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고들 한다.
    상대방이 무슨 짓을 했다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다.
    그래서 당신의 모든 조건을 버리고
    족보속에 인물들의 추함과 수치스러움, 훌륭함까지 다 드러내고 육화 하시려 오신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신이신 그분이 치욕스럽게 인간이 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일까…
    당신이 만든 인간을 죽도록 사랑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악착스럽게 핑계를 대서 도망가려 한다.
    용서와 자비 그것도 모자라 족보속에 존재성을 드러내고
    나를 위해 이제 희생제물이 되시려 오겠다고 하시는데…
    나는 무덤덤하게
    오시나 보다?
    죽나 보다?

    아!
    가슴이 저리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철없는 나…

    족보는 내게 희망을 주는 끈임을…

    @ 컴이 고장이 나서 어제 준비한 묵상 오늘 올려봅니다.

  9. user#0 님의 말:

    사랑하면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고들 한다.
    상대방이 무슨 짓을 했다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다.
    그래서 당신의 모든 조건을 버리고
    족보속에 인물들의 추함과 수치스러움, 훌륭함까지 다 드러내고 육화 하시려 오신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신이신 그분이 치욕스럽게 인간이 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일까…
    당신이 만든 인간을 죽도록 사랑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악착스럽게 핑계를 대서 도망가려 한다.
    용서와 자비 그것도 모자라 족보속에 존재성을 드러내고
    나를 위해 이제 희생제물이 되시려 오겠다고 하시는데…
    나는 무덤덤하게
    오시나 보다?
    죽나 보다?

    아!
    가슴이 저리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철없는 나…

    족보는 내게 희망을 주는 끈임을…

    @ 컴이 고장이 나서 어제 준비한 묵상 오늘 올려봅니다.

  10. user#0 님의 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올 한해동안 저의 삶을 생각해보니
    힘들고 바쁘고 한마디로  정신없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올해가 시작 된 후 남편이 아파 우환으로 어떻게 지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남편의 대수술...
     3년동안 어학연수를 했던 딸아이가 외국에서 대학을
    가겠다고 하여 시부모님과 시누이들과의 갈등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유는 집안에  가장이 아픈데 아들도 아닌 딸아이를
    어학연수를 3년했는데  대학교까지 보낸다고 시누이들이
    저에게 딸아이가 외국에서 대학교를 가는 것을 포기하라고...
    요즈음도 시부모님께서는 저를 보실 때마다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학교 다니느냐고 집에 오라고 전화하라고...
    시부모님의 말씀에 솔직히 어느 때는 반항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그리고 따지고 싶기도 합니다
    학비한번 대주시지 않으셨는데 왜 그러시는지  마음이 상하다고...
    시부모님과 시누이들이 미워 시댁행사에도 가기 싫을 때가 많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됩니다
    당신의 아들이 아픈데 손녀 딸아이를 그것도 외국에서까지 보내 
    공부를 시키고 있는 며느리가 예쁘게 보이지 않으실 것이라고...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남편도 중요하지만 자식 또한 중요한데 그리고 공부는 시기가 있다는
    생각에 응어리진 가슴을 꾹 참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시부모님을 뵐 때마다 죄인처럼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댁에 가기 전에 다짐도 하지요
    시부모님께서 섭섭한 말씀을 하셔도 참아야 한다고...
    제가 미워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저희가정을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요즈음도 혼자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집을 짓고 허물고 합니다
    어느 때는 시부모님께 섭섭하고 어느 때는 시누이들이 얄밉고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서 참견을 하는 시부모님과 시누이들이
    예쁘게 보이지 않지만 꾹 참고 웃으며 대하고 있자니 속이 부굴거리지요
     시누이가 그럽니다 딸자식  때문에 남들처럼 여행한번 가지 못하고
    남편과 제가 고생을 사서 한다고 시누이들이 보기에는 제가 한심하게
    보이나 봅니다

    올 한해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아 
    하루빨리 올 해가 가기를 바라고 있지요
    어쩌면 제가 복음묵상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상처받은 마음을 잊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다행이지요?

    상처받았다는 생각에 미워만 하다보면 오히려 저에게 해가 될텐데
    복음묵상을 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며 미워하는 마음을 정화시키니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자녀로 살아온 세월이 힘들고 어려운 때도 많았지만
    좌절하지 않으며 이만큼이라도 버텼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당신을 잊지 않아 행복하고 당신을 사랑해서 행복하고
    당신을 사랑해야 하는 제가 행복합니다
    당신은 사랑이십니다
    저 헬레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가 고통을 참고 견딘 이유가 당신을 믿고 사랑해서라는 
    생각에 행복합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지금까지 참고 견딘 저의 고통과 슬픔이 당신을
    사랑해서라는 믿음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아멘



  11. user#0 님의 말: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님의 족보를 되뇌이며

    지난번과 같은 저의 모습에

    겸연쩍은 미소를 흘리며 아버지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대림시기동안 반복되는 복음 말씀이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참 묘한 것이 그때 그때 다름을 알았습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장소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입맛이 다르듯이

    말씀역시 장,절은 같아도 묵상이 다 다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만도 큰 변화지요?

    ㅎㅎㅎ^^

    사실 어떻게 태어나셨고 위로는 어떤 분들이 계신지에 대해서

    좀은 궁금해 하면서 귀기울여야 하는데

    또 그냥 넘어갑니다.

    지난번과 똑 같은 고백이지요? ㅎㅎ

    제가 보고싶은 곳으로 시선을~~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가 궁금한 것인데

    제가 덜 사랑하나봐요. ㅎㅎ~

    그치만 공통되는 한가지 생각은 변함이 없답니다.

    잉태되시어 나시기까지

    한사람, 한사람 모두는 선택된 사람이라는~~

    제 마음은 오늘도 여기서 머뭅니다.

    의로운 요셉!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로움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신앙인이면서 ‘요셉의 의로움’에 대해서보다는

    세속의 의로움을 더 쉽고 얕게 생각합니다.

    오늘 구유를 만들고 트리도 꾸몄습니다.

    함께 일을 해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입니다. 정말이요.

    아버지를 얼만큼 사랑하는지도 보인답니다.

    저녁 미사가 있기에 마무리 했으면 했는데

    6시에 약속이 있다고 가야한다고~~

    기분이 언잖았지만 내색을 못했습니다.

    그나마 그사람이 저 때문에 등을 돌리면 어쩌나 싶어서지요.

    의로움!

    아버지께 마음을 두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생활하며

    기쁘고 진실되게 가르침에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의로운 사람이라 하지요?

    근데 세속의 약속에 서두는 모습이

    저의 마음을 서운하게 했답니다.

    제 욕심일까요?

    사실 저가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요.ㅎㅎㅎ

    못할건 없는데 참았습니다.

    그도 아버지에겐 소중한 자식일테니까요.

    전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든 모임을 정리했습니다.

    아시죠? 갑자기 제 어깨가 으쓱해 지네요. 당연한것을 가지고~~

    우물안 개구리! ㅎㅎ

    놀때라곤 아버지 집밖에 없답니다.

    그치만 전 참 행복하답니다.

    전엔 다른 그 무엇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지만

    제게 남는 것은 이기심밖에 없었답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다른 출구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불이 나간 비상구 표지판이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저역시 옷만 입고 앉아 있다면 바른 안내자가 될 수 없음이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의로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랑하는 아드님!

    예수님의 발자취를 겉눈으로 보는 저의 부족함을 채우려 합니다.

    사랑함에 모든 시선과 관심과 마음을

    사랑의 수레에 싫어 드릴 수 있게 하소서.

    아버지의 울타리안에서 움직임과 숨쉼이 있는데

    그곳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저를 꾸짖으시어 바로 서게 하소서.

    진정한 의로움의 참뜻을 알아 그대로 행할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기쁜 성탄에 환성지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아버지께 사랑을 드리며

    아버지 품안이 제 삶의 쉼터가 되게 하시고

    늘 함께 하시는 아버지를 제 가슴에 안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12.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탄절날 왜 족보에 대해 말씀하시는지 생각해 봤다.

    그분은 모든 인간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이고
    인간을 무진장 사랑하신다는 것.

    인종과 종교 인간이 만들어낸 규율과 규범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그 분은 우리들의 아버지로 오신다는 것.

    회개하고 당신을 아버지라 고백하면
    그분은 죄인들까지 품어주신다는 것.

    왜?
    자식들이니깐…

    나만의 그분.
    내 종교만의 그분.
    내 법과 틀의 그분이 아니라
    우리들의 그분이기 때문이라서…

    오늘 나는 깨달았다.
    죄의 아담에서 구원의 아담으로
    그분이 왜 우리게 오시는가를…

    사이버성당 여러분!
    성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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