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연중 제32주간 토요일(11/13)


    말씀의 초대
    요한 3서의 저자는 형제들은 물론이고, 낯선 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성실히 하라고 한다. 그러면 그들도 우리가 베푼 사랑에 관하여 증언할 것이고,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 되어 진리의 협력자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로,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청을 들어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더더욱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
    제1독서
    <우리가 형제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 요한 3서의 말씀입니다. 5-8 사랑하는 가이오스, 그대는 형제들을 위하여, 특히 낯선 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든 다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모임에서 그대의 사랑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맞갖도록 그대의 도움을 받아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로, 이교인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억울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범인으로 지목되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죄상이 언론에 게재되어 사회의 여론마저 그의 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대법원에서도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 뒤 몇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국가는 뒤늦게 유족에게 배상을 해 주었습니다. 사형수를 대신해 유가족이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한 덕분이었습니다. 1970-1980년대에 빨갱이로 내몰려 희생되었던 사람과 그 유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서로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상대방 이야기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화가 제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소통이 되도록 끊임없이 믿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끊임없이 주님의 은총이 나를 보호해 주신다고 믿을 때만, 우리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꼭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Father, O My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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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2주간 토요일(11/13)


      말씀의 초대
      요한 3서의 저자는 형제들은 물론이고, 낯선 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성실히 하라고 한다. 그러면 그들도 우리가 베푼 사랑에 관하여 증언할 것이고,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 되어 진리의 협력자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로,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청을 들어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더더욱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
      제1독서
      <우리가 형제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 요한 3서의 말씀입니다. 5-8 사랑하는 가이오스, 그대는 형제들을 위하여, 특히 낯선 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든 다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모임에서 그대의 사랑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맞갖도록 그대의 도움을 받아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로, 이교인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억울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범인으로 지목되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죄상이 언론에 게재되어 사회의 여론마저 그의 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대법원에서도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 뒤 몇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국가는 뒤늦게 유족에게 배상을 해 주었습니다. 사형수를 대신해 유가족이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한 덕분이었습니다. 1970-1980년대에 빨갱이로 내몰려 희생되었던 사람과 그 유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서로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상대방 이야기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화가 제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소통이 되도록 끊임없이 믿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끊임없이 주님의 은총이 나를 보호해 주신다고 믿을 때만, 우리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꼭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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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

    1. 말씀읽기:루카18,1-8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2. 말씀연구

    가끔은 기도를 하다가 포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데 기도는 해서 무엇을 해. 하느님께서는 분명 내 청을 들어주시지 않을 거야!”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준비하고 계시다가 내가 기도를 하면 반드시 들어주셔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입니다. 사실 나는 누가 나에게 청을 해도 잘 들어주지 않습니다. 쉬운 것이라도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좋을 때나 들어줄 가치가 있을 때, 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청을 할 때야 비로소 들어 줍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내 기도를 들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줄 때, 하느님께서는 더 큰 것도 주실 것임을 기억하면서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살아가고, 남이 나에게 청하는 것을 들어주면서 살아갑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살다보면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지만 하느님을 못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 것 같지도 않고, 응답해 주시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되는 것을 보면 때로는“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지향을 두고 기도를 하다가 들어 주시지 않으면 불평을 하게 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신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재림) 곧 오신다고 하셨으면서도 아직 오시지 않는 것을 가지고 “혹시 예수님께서 사기를(?) 치셨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어 주십니다. 재판관이 있었는데 그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의 마음의 변화 과정을 들려주십니다.


    재판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정한 판단과 억울한 사람의 사연을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재판관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지위만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의 존재 이유는 자기 자신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①어떤 신자가 있었는데 성당에는 열심히 다니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고, 형제자매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②어떤 학생이 있었는데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부모님을 아주 우습게 알고, 친구들이 도움을 청해도 외면했다.” 그런 신자가 마음을 돌려서 하느님을 공경하고 형제자매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 학생이 부모님을 존중하고, 공경하며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할 것 같지만 끊임없이 매달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매달리고, 그만큼 정성을 들이라는 소리입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모습을 신앙인의 모습으로 보여 주십니다. 안될 것 같지만 끊임없이 매달리면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굳은 믿음을 가지고 항구하게 매달리는 마음을 원하심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돌보시기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저지르거나 그를 어렵게 만들면 하느님께서는 분명 나에게도 올바른 판결을 내리실 것입니다. 내가 억울하게 만든 사람도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굽어 살펴 달라고 기도할 것이니 하느님께서는 분명 나에게 시비를 가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판결 앞에서 올바로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재판관은 공정한 판결을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부의 청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①과부의 청이 돈이 생기지 않는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고, ②과부의 적대자가 자신과는 친분이 있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재판관은 한동안 과부의 청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부가 끊임없이 졸라대니 결국 과부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부의 말에는 이제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재판관은 결국 항복을 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의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나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렇게 자신밖에 모르고, 귀찮은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하느님 두려운 줄도 모르는 그 재판관이 끊임없이 청하는 과부의 청을 들어 주었는데, 하물며 당신이 창조하시고, 당신이 선택하시고, 당신이 품어 주신 자녀들의 청을 외면하시겠냐는 것입니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의 모습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아버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은 바로 아드님이십니다.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하느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찰거머리기도”라고 하면 어떨까요?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그러므로 늘 같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할 때,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의 청을 기꺼이 들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청을 언제나 기꺼이 들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응답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대로 받으려고 하니까 하느님께서 안 들어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아침기도를 하시면서 “예수님! 저 주방에 사람을 하나 둘까요? 밥 해먹는 것도 귀찮고, 빨래하는 것도 어렵네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좀 있으니 “딩동”하면서 사제관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아침 일찍 누굴까?”하며 나가 봤더니 웬 자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그런데 좀 수상해서 이리저리 얘기를 해보니 그 자매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보내셨을 수도 있지만 그 신부님은 너무도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며칠에 걸쳐서 경찰과 함께 노력한 끝에 그 자매를 돌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이런 사람 말구요~”

    기도를 하면 내 방식대로 응답받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보시기에 좋은 방식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어떤 때는 거절의 방법으로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기도의 응답에는 여러 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옳은 판결은 내 뜻과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좋아한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해가 되는 것은 결코 해 주시지 않는 분이 바로 부모님이십니다. 아이는 부모님을 원망하지만 아이는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릅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아무리 졸라도,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십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아이에게 반드시 좋은 것일 수는 없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여자 아이들 몇 명이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엄마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나도 미치겠어. 아버지는 더해요. 그런데 한 분이 그러면 다른 분은 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 아니니?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너무해…,”

    그런데 그 시간이 학교 갈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는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느님의 마음을 모른다면 나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하느님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더 나아가 하느님은 안 계신다고…,

    나만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도 좀 생각해 드립시다. 그래서 변함없이 예수님께로 향합시다. 끊임없이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합시다. 끊임없이…,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혹시 내가 남을 억울하게 해 준 적은 없습니까? 또한 다른 사람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③ 기도를 하다가 포기한 때는 언제입니까? 하느님께 끊임없이 청하는 기도는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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