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12/30)


    말씀의 초대
    한나는 여자 예언자로 평생을 성전에서 살았다.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았다. 그러기에 아기 예수님을 뵙는 은총을 받는다. 그녀는 구약의 여인들을 상징한다. 구세주를 기다리며 묵묵히 살아왔던 여인들을 대신하는 이다(복음).
    복음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6-40 그때에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부인이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매일 하늘 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소원대로 해 주겠다. 그런데 몇 가지 부탁을 하겠다. 우선 그대가 죽으면 장례가 있을 것이니 사람들을 위해 집 안을 깨끗이 정리하기 바란다. 그대가 떠나면 자식들이 마음에 걸릴 것이다. 자녀들에게 마음껏 애정을 쏟아 주기 바란다. 남편에게도 최선을 다해라. 좋은 아내였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무슨 말을 해도 대꾸하지 말고 정성으로 모셔라. 사흘 뒤 그대에게 가겠다.’ 부인은 눈 딱 감고 삼 일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오셔서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깨끗이 정돈된 집 안을 보자 그녀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남편과 자녀들의 ‘전에 없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좋아지니 떠나기 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도 바뀌어 보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도 변화가 옵니다. 죽음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변화입니다. 복음의 ‘한나 예언자’는 구약의 여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러기에 긴 기다림 끝에 아기 예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기다림의 대가는 어떤 식으로든 주어지는 법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조셉 맥매너스\'의 Candlelight Car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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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12/30)


      말씀의 초대
      한나는 여자 예언자로 평생을 성전에서 살았다.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았다. 그러기에 아기 예수님을 뵙는 은총을 받는다. 그녀는 구약의 여인들을 상징한다. 구세주를 기다리며 묵묵히 살아왔던 여인들을 대신하는 이다(복음).
      복음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6-40 그때에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부인이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매일 하늘 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소원대로 해 주겠다. 그런데 몇 가지 부탁을 하겠다. 우선 그대가 죽으면 장례가 있을 것이니 사람들을 위해 집 안을 깨끗이 정리하기 바란다. 그대가 떠나면 자식들이 마음에 걸릴 것이다. 자녀들에게 마음껏 애정을 쏟아 주기 바란다. 남편에게도 최선을 다해라. 좋은 아내였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무슨 말을 해도 대꾸하지 말고 정성으로 모셔라. 사흘 뒤 그대에게 가겠다.’ 부인은 눈 딱 감고 삼 일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오셔서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깨끗이 정돈된 집 안을 보자 그녀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남편과 자녀들의 ‘전에 없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좋아지니 떠나기 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도 바뀌어 보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도 변화가 옵니다. 죽음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변화입니다. 복음의 ‘한나 예언자’는 구약의 여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러기에 긴 기다림 끝에 아기 예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기다림의 대가는 어떤 식으로든 주어지는 법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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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12/30)


      말씀의 초대
      요한은 세속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한다. 세상 욕망은 잠시지만 하느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육체의 탐욕은 버리고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찾으라고 한다. 하느님을 따라 살면 은총의 이끄심을 만나기 때문이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12-17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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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한나!

    구약의 대표적인 여자 예언자!

    어제 그제 시메온과 한나의 찬미가를 다시금 뇌리에 새겨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같은 여자로서의 한나를 그려봅니다.

    그때 그 시절의 예언자로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아버지를 섬긴

    한나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 홀로 과부로 지내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아버지만을 기다리며 감사드리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한나!

    같은 여자로서 정말 멋있게 다가옵니다.

    의로운 여자!

    지금의 저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저의 응답인지~~

    조금만 힘들어도 모든게 끝난것처럼 좌절하는 저는 아니었는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진정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저의 작은 말과 행동들이 아버지께 누가되진 않았는지를

    더불어 반성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참 의아한 소리를 들었답니다.

    얼마전 일 때문에 만났는데 그분은 신앙인이 아니랍니다.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러더라구요.

    “신앙인이 다 똑같진 않은가봐요.” 라고 해서 물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라고 했더니

    아니라고~ 성당다닌다고 해서 다 점잖은 것은 아닌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한마디에서도 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전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사실 얼마전 일이 있긴 했지만 외인들은 저희들의 모습을

    대충보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진 않지만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작은 것 하나도 해내지를 못하니 이를 보시는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생각이 저를 괴롭힌답니다.

    한나가 그렇게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돌리고 산것에 비하면

    저의 부족이 너무나 훤히 보이지요?

    마음만 바꾸면 삶이 바뀜을 알면서도

    저 자신에게 지는 것은 아닌지요.

    삶이 바뀌면 살아가는 맛도 다르지요. 그 맛에서 나오는 향도 다르지요.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버지를 알기전엔 의로움이란 단어를 자주 접한 것은 아니랍니다.

    아버지를 알고서 의로움이란 단어를 새기고

    의로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지요.

    전엔 의로움이 아니라 그저 제가 그려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기본이 되는 삶의 방위표였지요.

    참 어리석었죠?

    제가 그랬습니다.

    이젠 너무나 편하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저 혼자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계시니까 기대고, 수다떨고,

    품에 안겨 투정을 부려도 다 안아주시고 보듬어 주시니까

    살이 찐답니다.

    영혼의 살이~~

    그 영혼의 살이 찜을 저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제게 그런답니다. 꼭 묻는 말이 뭔지 아세요?

    “신앙있으시죠?/혹시 성당 다니세요?” 라고~

    어떻게 아시냐고 물으면 웬지 그런것 같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꼭 아버지를 그려보지요.

    그러면서 다시금 옷매무새를 다듬죠.

    저의 작은 행동이 아버지의 이름에 상처를 나게도 함을 깨달아서지요.

    의로운 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진 않다지만

    못할 것도 없음을 마음속에서 세뇌시켜 봅니다.

    한나처럼 시메온처럼 의로운이로 아버지께 찬미드리며

    모든 것을 아버지께로 돌린 채로 살아가는 것처럼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리면서 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오로지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자세로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렵니다. 사랑의 찬미 노래를~~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한나의 의로움을 다시 접해 봅니다.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낸

    의로운 여인 한나!

    같은 여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로움은 아니더라고

    과연 아버지께 무엇을 드렸는지~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늘 아버지를 부르며 수다를 떨었지만

    가슴속 사랑의 고백이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게

    저의 할 일이건만 잠자는 공주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께 사랑을 고백함에 있어서

    가슴속 저 깊은 행복의 골에서 나오는 기쁨의 소리로 고백하게 하소서.

    제 삶의 중심에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그리고 아버지께 늘 감사드리며 오로지 아버지만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삶의 나침반을 돌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작은 가슴의 저이지만 의로운 모습으로

    아버지께 기쁨과 찬미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저의 날개짖에 힘을 주시어

    의로운 새되어 외로움에 아파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전하는데 앞장서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한나!

    구약의 대표적인 여자 예언자!

    어제 그제 시메온과 한나의 찬미가를 다시금 뇌리에 새겨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같은 여자로서의 한나를 그려봅니다.

    그때 그 시절의 예언자로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아버지를 섬긴

    한나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 홀로 과부로 지내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아버지만을 기다리며 감사드리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한나!

    같은 여자로서 정말 멋있게 다가옵니다.

    의로운 여자!

    지금의 저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저의 응답인지~~

    조금만 힘들어도 모든게 끝난것처럼 좌절하는 저는 아니었는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진정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저의 작은 말과 행동들이 아버지께 누가되진 않았는지를

    더불어 반성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참 의아한 소리를 들었답니다.

    얼마전 일 때문에 만났는데 그분은 신앙인이 아니랍니다.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러더라구요.

    “신앙인이 다 똑같진 않은가봐요.” 라고 해서 물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라고 했더니

    아니라고~ 성당다닌다고 해서 다 점잖은 것은 아닌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한마디에서도 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전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사실 얼마전 일이 있긴 했지만 외인들은 저희들의 모습을

    대충보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진 않지만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작은 것 하나도 해내지를 못하니 이를 보시는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생각이 저를 괴롭힌답니다.

    한나가 그렇게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돌리고 산것에 비하면

    저의 부족이 너무나 훤히 보이지요?

    마음만 바꾸면 삶이 바뀜을 알면서도

    저 자신에게 지는 것은 아닌지요.

    삶이 바뀌면 살아가는 맛도 다르지요. 그 맛에서 나오는 향도 다르지요.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버지를 알기전엔 의로움이란 단어를 자주 접한 것은 아니랍니다.

    아버지를 알고서 의로움이란 단어를 새기고

    의로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지요.

    전엔 의로움이 아니라 그저 제가 그려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기본이 되는 삶의 방위표였지요.

    참 어리석었죠?

    제가 그랬습니다.

    이젠 너무나 편하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저 혼자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계시니까 기대고, 수다떨고,

    품에 안겨 투정을 부려도 다 안아주시고 보듬어 주시니까

    살이 찐답니다.

    영혼의 살이~~

    그 영혼의 살이 찜을 저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제게 그런답니다. 꼭 묻는 말이 뭔지 아세요?

    “신앙있으시죠?/혹시 성당 다니세요?” 라고~

    어떻게 아시냐고 물으면 웬지 그런것 같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꼭 아버지를 그려보지요.

    그러면서 다시금 옷매무새를 다듬죠.

    저의 작은 행동이 아버지의 이름에 상처를 나게도 함을 깨달아서지요.

    의로운 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진 않다지만

    못할 것도 없음을 마음속에서 세뇌시켜 봅니다.

    한나처럼 시메온처럼 의로운이로 아버지께 찬미드리며

    모든 것을 아버지께로 돌린 채로 살아가는 것처럼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리면서 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오로지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자세로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렵니다. 사랑의 찬미 노래를~~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한나의 의로움을 다시 접해 봅니다.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낸

    의로운 여인 한나!

    같은 여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로움은 아니더라고

    과연 아버지께 무엇을 드렸는지~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늘 아버지를 부르며 수다를 떨었지만

    가슴속 사랑의 고백이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게

    저의 할 일이건만 잠자는 공주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께 사랑을 고백함에 있어서

    가슴속 저 깊은 행복의 골에서 나오는 기쁨의 소리로 고백하게 하소서.

    제 삶의 중심에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그리고 아버지께 늘 감사드리며 오로지 아버지만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삶의 나침반을 돌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작은 가슴의 저이지만 의로운 모습으로

    아버지께 기쁨과 찬미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저의 날개짖에 힘을 주시어

    의로운 새되어 외로움에 아파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전하는데 앞장서게 하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심함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는 산 속이다.
    2008년 한 해도 다 간다.
    어제 혜림스님께서 전화하시면서 내년 한 해는 더
    아름다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축원해 주셨다.
    묵은 것은 다 털어내고 맑고 밝은 기운으로 새해를 맞으라셨다.

    나도 그리 축원해 보리라.
    모든 이에게,
    모든 생명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리라.

    혼자 사시는 웃집 대전할머니 처럼,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긴 한나처럼
    안나도 모든 이를 위해 그렇게 기도해 보리라.

    하느님의 집에 산다는 것!

    너와 나를 가리지 말고 우리로 살아가도록
    안나도 지혜가 충만하기를 빈다.

    그리하여 모든 이가
    하느님의 총애를 얻어 누리도록 빈다.

  6. guest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한나처럼 그분을 향한 마음이 꾸준했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미사,기도,봉사, 단체활동,복음묵상, 기타등등… 변함없는 마음이었는가를 말입니다.
    한심하게도 그렇지 못했음을 고백해 봅니다.
    시간과 여유가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지요.
    육신의 밥은 시간이 없어도 악착스럽게 찾아 먹으면서…
    영의 메마름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듯
    또한 멀리 떠난 자식을 오메불망 기다리듯이
    그분을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현미의 노래중에 “그리운 얼굴”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보이는 건 그리운 얼굴…
    이 노랫가사가 가슴을 찔렀습니다.
    나는 그분을 이렇게 절실하게 그리워하는가를…

    그분이 그리우면 기도로써 그분을 꾸준히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아가가 맘마를 달라고 어머니를 보채듯이 말이지요.
    그러면 영혼의 배는 언제나 든든해지겠지요.

    기도를 새해 계획표 짜듯이 ‘언제, 몇시에 해야 한다.’라는 게 아니라
    언제나 항구해야 하는 것임을 오늘 한나를 통해 깨달아 봅니다.

    주님!
    언제나 그리운 당신.
    항상 말로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소서.

  7.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한나처럼 그분을 향한 마음이 꾸준했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미사,기도,봉사, 단체활동,복음묵상, 기타등등… 변함없는 마음이었는가를 말입니다.
    한심하게도 그렇지 못했음을 고백해 봅니다.
    시간과 여유가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지요.
    육신의 밥은 시간이 없어도 악착스럽게 찾아 먹으면서…
    영의 메마름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듯
    또한 멀리 떠난 자식을 오메불망 기다리듯이
    그분을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현미의 노래중에 “그리운 얼굴”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보이는 건 그리운 얼굴…
    이 노랫가사가 가슴을 찔렀습니다.
    나는 그분을 이렇게 절실하게 그리워하는가를…

    그분이 그리우면 기도로써 그분을 꾸준히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아가가 맘마를 달라고 어머니를 보채듯이 말이지요.
    그러면 영혼의 배는 언제나 든든해지겠지요.

    기도를 새해 계획표 짜듯이 ‘언제, 몇시에 해야 한다.’라는 게 아니라
    언제나 항구해야 하는 것임을 오늘 한나를 통해 깨달아 봅니다.

    주님!
    언제나 그리운 당신.
    항상 말로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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