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1. 말씀읽기: 루카 5,12-16
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마태 8,1-4 ; 마르 1,40-45)
2. 말씀연구
나병환자!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치유를 청합니다. 나병 환자의 모습을 통해 고통 속에서 주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나병환자였다면 이 말씀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마 이렇게 말씀을 드렸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혹시 저 고쳐 주실 수 있으세요? 혹시 가능하시면….” 전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과 불신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은 다릅니다.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가끔은 성무일도를 바치면서 이런 분심이 듭니다. “하느님 절 구하소서!”라는 시작기도를 바치면서 “과연 구해주실 수 있을까? 구해 주시려면 주시고 안 구해 주시려면 말구요. 마음대로 하세요.^*^”물론 이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늘 나병환자의 믿음은 저의 모범이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어떤 사람의 청도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병자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자비로우셔서, 너무도 사랑이 많으셔서 불쌍한 이들, 고통당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저는 믿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믿음을 고백합시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내시면서 엄히 경고하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능을 숨기신 채 오직 하느님께 순종하는 종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과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는 고통 받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메시아이셨기에 자신의 영광을 의도적으로 숨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님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기적들은 백성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정치적 메시아이심으로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에게 가서 치유된 몸을 보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분은 율법을 파괴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율법에 병자들은 사제에게 몸을 보이고 그가 치유되었다는 것을 사제가 공식적으로 선포해야 만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그런데 치유 받은 사람은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립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병이라는 것이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살게 만들었는데, 이제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으니 어떻게 치유되었는지 사람들도 궁금해 할 것이고, 그 자신도 말 안하고서는 그 기쁨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예수님을 바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방에서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을 품고서 말입니다. 혹시 내 모습 아닙니까?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기적 자체에만 매달려 예수님께로 몰려 왔습니다.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기적을 보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십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않는 방법이며,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에만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외딴 곳은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 또한 늘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치유를 청하는 나병환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만일 나병환자였다면 예수님께 치유를 청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 이런 믿음을 드릴 수 있는지 나를 돌아봅시다.
② 외딴곳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 방법에 대해서 돌아봅시다. 나는 아버지 하느님과 얼마나 가까이에 있습니까?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요란하게 바지 자락을 잡고 늘어졌을 겁니다. 완전한 믿음이 없었기에~~~
정말 고쳐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믿음보다 더 컸기에~~
하지만 이젠 쬠 변했습니다.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미소만을 보내며 마냥 기다립니다.
딸을 내칠 부모는 없기에 아버지께서 제 이쁜 모습을 보시고
해 주실때까지 제 자리를 지킵니다.
처음엔 다른이의 유혹이 아니라 한 형제라 고백하는 바로 제 옆의 사람들에게서 오는 유혹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흔들기엔 아주 센 유혹이 되어 제 뺨과 온 몸을 때렸지요.
그럴때 마다 휘청거렸습니다. 사실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숟가락질을 할 줄도 모르는 자식을 그냥 버려 두시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버지 무릎에서만 놀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야! 무릎아프다 쫌 내려가라.” 라고 하실때까지 앉아 있으려 하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