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등불은 선행이며 적선이다. 베풀고 나누는 마음이다.
그러기에 숨기고 감추더라도 반드시 드러난다.
나누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다. 체험해 본 사람은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베푸는 사람이 계속 베푼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복음).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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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간 목요일(1/29)
말씀의 초대
등불은 선행이며 적선이다. 베풀고 나누는 마음이다. 그러기에 숨기고 감추더라도 반드시 드러난다. 나누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다. 체험해 본 사람은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베푸는 사람이 계속 베푼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복음).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등불을 침상 밑에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어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내어 놓는 행동일는지요? ‘밝은 모습’으로 사는 일입니다.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행동입니다. 늘 부딪히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모습입니다. 가족에게 ‘삶의 이유’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어느 것 ‘하나’를 실천하더라도 등불을 밝히는 행위가 됩니다. 베풀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주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울한 중년이나 외로운 노년은 ‘베풀고 나누는 이’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운명은 언제나 자신의 것입니다. 아무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운명에 끌려가기’보다는 ‘운명을 밀고’ 가야 합니다. 삶의 본질은 기쁨이며, 인생의 근본은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천천히 베풀며 가도 인생은 늦지 않습니다. 누구도 등불을 침상 밑에 두지는 않습니다. 높은 곳에 두기 마련입니다.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게 베풀어도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미래를 밝혀 줍니다. 시간이든 건강이든, 명예든 자식이든 ‘꼭 쥐고’ 있으면 오히려 떠나갑니다. 내어 놓고 나누어야 오히려 주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삶의 신비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3주간 목요일(1/29)
말씀의 초대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졌다. 우리의 양심 역시 그리스도를 통해 말끔히 씻기어졌다. 남은 일은 하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굳게 하는 일이다. 사랑과 선행에 힘쓰는 일이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하고,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9-25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오소서, 성령이여!
내가 베푼 만큼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더럭 겁이 납니다.
지금까지 내가 베푼 것이 그닥 많지 않기에
받을 것 역시 별로 없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오늘 얼마전 퇴직한 직원의 부친상 조문을 점심시간에
잠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회사 앞이 바로 그 병원이라서)을 하고 함께
갈 사람들을 조사하니 퇴근하고 가자는 의견이 많아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사실 낮에 다녀오면 저녁에 평일미사에 참례할 수 있기에
(일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보자는 심산이었음 ㅋ) 나름대로
계산을 했던 마음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됫박으로 되는’ 행동이 아니었나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옵니다.
퇴근 후 여러 사람이 함께 가서 조문을 하며, 이런저런 위로의 담소도
나누고 온 것은 역시 잘했다 싶기도 하지만, 미사를 참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한 것을 보면 … 저 라는 사람은 역시 욕심쟁이가 아닌가 싶네요
예수님께서는 베푼 만큼 되돌려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묵상을 하고 있는 이 시간까지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너희는 새겨 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여기고, 지금 부터라도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아 두 손에 꼭 쥐고 있음으로, 가진 것을
빼앗기는 자 되지 않고, 더 보태어 받을 수 있도록 …. 제가 가진 웃음을 나누고,
열정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하소서. 아멘.
♬ 서로의 빛이 되어 / 권 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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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오랜만에 마음의 평정을 찾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깊은 빛을 발산하는 작은 별들도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아름다운 밤의 정막을 메우며
작은 움직임에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그 별을 보고 있자니 저의 작은 모습이 더 초라해 보였답니다.
오늘은 등불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지요.
맞아요.
등불을 이불속에 묻거나 아래쪽에 넣어두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겠지요.
하지만 그 어리석은 사람이 저인거 같아서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함에 넘치는 기쁨을 드러내야 함인데
부족한 저는 그 기쁨을 드러내지 못하고 움츠리며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이라면
끝까지 고집하면서 손에서 멀리두지 않지요.
아버지를 사랑함에 덤으로 받은 모든 것에서 오는 그 기쁨을
제손과 마음과 가슴에서 멀리두지 말아야 함인데,
잠시동안 제 몸에서 멀리두고 다른 생각들로 머리만을 움직일뿐 몸이 잠자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잠잘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자매님이 제게 준 전화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바로 등불을 이불속에 넣어둔채로
어둠속에서 무언가를 찾기위해 헛손질을 하고 있었더군요.
제가 잠자고 있는 동안 아버지의 수레가 수렁으로 가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제가 방향을 잡고 끌어야 하는데~~~~~
한 자매님이 고민하면서 그랬습니다.
말씀나누기 이젠 안할거라고~~
이게 무슨 소리!
옷을 벗고 맨몸으로 살아갈 수 없듯이,
어찌 아버지의 가르침인 말씀을 멀리할 수 있는지요.
너무나 황당했답니다.
아버지!
저의 작은 가슴이지만 그 가슴만큼 사랑을 안고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누가 뭐라든~ 그치요?
그리고 전 오늘 의롭지 못한 생각을 했습니다.
독서에서 전 살짝 반발을 했거든요.
히브리서에서 충실한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는데 곧 당신의 몸을 통해 그리해 주셨다고~~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그 말에 전 내심 울컥하는 마음으로 저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참 잘못했지요?
전에 신부님께서 늘 말씀하셨지요.
틀린게 아니라 다른 것이니까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반대되는 모습에 가슴만 아려옴을 지울순 없었답니다.
땀냄새로 얼룩진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것처럼
더 좋은 환경에서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머금게 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온갖 궃은 일을 마다않고 사랑의 힘으로 지은 멋진 집을
누가 부수고 다시 지으려 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옹졸한 것인가요?
요즈음 서로가 적응하려고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멋있는 틀을 굳이 허물어 버리고,
생뚱맞은 틀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는 삶의 울타리에서
너무나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으며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는 양들을
새 울타리를 만든다는 이유로 몰아낸다면
그게 무슨 양들을 위한 일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생활할 때
비로소 내가 빛되어 다른 이에게 비추고,
어둠이라면 아버지로 인해 빛으로 나아가야 하겠지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며 아버지와 함께 호흡할 때 움직이게 되고,
그럴때 더 큰 기쁨이 함께 하겠지요.
대신 제가 움직이지 않는 잠자는 저라면
가지고 있던 작은 것마저 다 빼앗김을 새삼 가슴에 담아 봅니다.
의로움은 성실함으로 드러난다고 하지요.
높은 곳에 등불을 두는 것처럼~~
사랑의 움직임은 숨긴다고 숨겨지는게 아님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언젠가는 드러남을~~~~
그럴때 아버지께서 주시는 더 큰 사랑속에서 깊은 저가 되겠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정녕 가진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라고 ~~~
처음엔 “무섭다. 아버지가 뭐 저러시냐” 라고 꼬리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아무것도 않고 잠만자고 있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퇴보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딸은 잠만 자기를 바라면서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부족한 저를 통해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질 못했습니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저를 묶었기에~~
그리고 작은 마음으로 대충했기에~~
아버지!
제가 하기 나름인데~
빛을 덮어버리는 어리석음을 행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자식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시는 그 깊은 마음을 깨닫게 하시어
기쁜 마음으로 밝게 살아가게 하소서.
늘 부족한 마음으로 살아가되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으로
사랑의 빛을 발하게 하소서.
충실한 신앙생활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늘 아버지께 다가가는 이쁜 딸이 되어 아버지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아버지!
오랜만에 마음의 평정을 찾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깊은 빛을 발산하는 작은 별들도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아름다운 밤의 정막을 메우며
작은 움직임에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그 별을 보고 있자니 저의 작은 모습이 더 초라해 보였답니다.
오늘은 등불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지요.
맞아요.
등불을 이불속에 묻거나 아래쪽에 넣어두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겠지요.
하지만 그 어리석은 사람이 저인거 같아서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함에 넘치는 기쁨을 드러내야 함인데
부족한 저는 그 기쁨을 드러내지 못하고 움츠리며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이라면
끝까지 고집하면서 손에서 멀리두지 않지요.
아버지를 사랑함에 덤으로 받은 모든 것에서 오는 그 기쁨을
제손과 마음과 가슴에서 멀리두지 말아야 함인데,
잠시동안 제 몸에서 멀리두고 다른 생각들로 머리만을 움직일뿐 몸이 잠자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잠잘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자매님이 제게 준 전화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바로 등불을 이불속에 넣어둔채로
어둠속에서 무언가를 찾기위해 헛손질을 하고 있었더군요.
제가 잠자고 있는 동안 아버지의 수레가 수렁으로 가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제가 방향을 잡고 끌어야 하는데~~~~~
한 자매님이 고민하면서 그랬습니다.
말씀나누기 이젠 안할거라고~~
이게 무슨 소리!
옷을 벗고 맨몸으로 살아갈 수 없듯이,
어찌 아버지의 가르침인 말씀을 멀리할 수 있는지요.
너무나 황당했답니다.
아버지!
저의 작은 가슴이지만 그 가슴만큼 사랑을 안고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누가 뭐라든~ 그치요?
그리고 전 오늘 의롭지 못한 생각을 했습니다.
독서에서 전 살짝 반발을 했거든요.
히브리서에서 충실한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는데 곧 당신의 몸을 통해 그리해 주셨다고~~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그 말에 전 내심 울컥하는 마음으로 저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참 잘못했지요?
전에 신부님께서 늘 말씀하셨지요.
틀린게 아니라 다른 것이니까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반대되는 모습에 가슴만 아려옴을 지울순 없었답니다.
땀냄새로 얼룩진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것처럼
더 좋은 환경에서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머금게 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온갖 궃은 일을 마다않고 사랑의 힘으로 지은 멋진 집을
누가 부수고 다시 지으려 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옹졸한 것인가요?
요즈음 서로가 적응하려고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멋있는 틀을 굳이 허물어 버리고,
생뚱맞은 틀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는 삶의 울타리에서
너무나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으며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는 양들을
새 울타리를 만든다는 이유로 몰아낸다면
그게 무슨 양들을 위한 일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생활할 때
비로소 내가 빛되어 다른 이에게 비추고,
어둠이라면 아버지로 인해 빛으로 나아가야 하겠지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며 아버지와 함께 호흡할 때 움직이게 되고,
그럴때 더 큰 기쁨이 함께 하겠지요.
대신 제가 움직이지 않는 잠자는 저라면
가지고 있던 작은 것마저 다 빼앗김을 새삼 가슴에 담아 봅니다.
의로움은 성실함으로 드러난다고 하지요.
높은 곳에 등불을 두는 것처럼~~
사랑의 움직임은 숨긴다고 숨겨지는게 아님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언젠가는 드러남을~~~~
그럴때 아버지께서 주시는 더 큰 사랑속에서 깊은 저가 되겠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정녕 가진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라고 ~~~
처음엔 “무섭다. 아버지가 뭐 저러시냐” 라고 꼬리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아무것도 않고 잠만자고 있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퇴보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딸은 잠만 자기를 바라면서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부족한 저를 통해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질 못했습니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저를 묶었기에~~
그리고 작은 마음으로 대충했기에~~
아버지!
제가 하기 나름인데~
빛을 덮어버리는 어리석음을 행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자식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시는 그 깊은 마음을 깨닫게 하시어
기쁜 마음으로 밝게 살아가게 하소서.
늘 부족한 마음으로 살아가되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으로
사랑의 빛을 발하게 하소서.
충실한 신앙생활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늘 아버지께 다가가는 이쁜 딸이 되어 아버지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no content)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해보곤 했습니다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언제나 비유로써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시는데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좋을텐데...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는 심정이 얼마나 조급하고
불안한지 당신께서도 잘 아실 겝니다
그런데도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으니 큰일이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 십번씩 변하는 저의 변덕과....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게으름과...
선행또한 쥐꼬리만큼 해놓고 자랑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지요
몸은 어른인데 마음과 행동이 어린이같은 언바란스의 문제가
많은 신앙가 헬레나이지요
언제쯤 철이 들런지....
머리가 어른인 가분수 헬레나입니다
당신께서는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말씀하시지만 언제나 메아리로 들릴 뿐입니다
말씀을 접할 때마다 양심이 찔리지만 사실 실천을 하지 않는데
양심이 찔린다는 말을 할 수도 없지요
아직은 저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주님!
들을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고....
보는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참 그런데 입으로는 말을 잘하지요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평론가수준입니다
얼마나 잘하는지 어느 때는 제가 해놓고도 제가 놀랍니다
입으로 제가 지은 죄를 말하자면 며칠이 가도 모자랄 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참 많은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아는 체
잘난 것도 없는데 잘난 척은 얼마나 많이 했는지
얼굴 들기가 부끄럽습니다
믿음은 어떻구요
입으로만 풍년이엇습니다
신앙생활을 입으로 해야한다면 저 만큼 잘하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이제부터라도 후회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언제나 다짐으로만 끝나지만 이제 새해도 시작되었으니
당신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시리라 믿으며 저도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당신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비추는 빛이오이다.
아멘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해보곤 했습니다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언제나 비유로써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시는데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좋을텐데...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는 심정이 얼마나 조급하고
불안한지 당신께서도 잘 아실 겝니다
그런데도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으니 큰일이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 십번씩 변하는 저의 변덕과....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게으름과...
선행또한 쥐꼬리만큼 해놓고 자랑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지요
몸은 어른인데 마음과 행동이 어린이같은 언바란스의 문제가
많은 신앙가 헬레나이지요
언제쯤 철이 들런지....
머리가 어른인 가분수 헬레나입니다
당신께서는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말씀하시지만 언제나 메아리로 들릴 뿐입니다
말씀을 접할 때마다 양심이 찔리지만 사실 실천을 하지 않는데
양심이 찔린다는 말을 할 수도 없지요
아직은 저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주님!
들을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고....
보는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참 그런데 입으로는 말을 잘하지요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평론가수준입니다
얼마나 잘하는지 어느 때는 제가 해놓고도 제가 놀랍니다
입으로 제가 지은 죄를 말하자면 며칠이 가도 모자랄 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참 많은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아는 체
잘난 것도 없는데 잘난 척은 얼마나 많이 했는지
얼굴 들기가 부끄럽습니다
믿음은 어떻구요
입으로만 풍년이엇습니다
신앙생활을 입으로 해야한다면 저 만큼 잘하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이제부터라도 후회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언제나 다짐으로만 끝나지만 이제 새해도 시작되었으니
당신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시리라 믿으며 저도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당신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비추는 빛이오이다.
아멘
“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에서 새겨 들으라시며
“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하신말씀에 뜨끔해집니다
언제나 당신께서 저에게만 인색하시다는 생각에
가진 것 또한 별로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이
가진 것마저 빼앗길까 두렵고 무서운 생각마저 듭니다
반성도 되었지요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했던 저의 욕심과 이기심
복음을 묵상하면서
후회와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신앙인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감사해야 하는데
머리로만 생각하고 마음 속에 담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이 그러니 기쁨과 행복보다는 원망과 미움
시기와 질투 등 온갖 세속적인 생각들로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고 저 혼자만 뚝 떨어진 것 같은 외로움까지...
혼자서 온갖 상상과 공상으로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었지요
당신께 받은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을텐데...
언제나 독불장군처럼 혼자 결정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울고
세상의 고민은 저 혼자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외인만도 못한 삶을 살았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말씀을 성찰하며
당신께 받은 많은 은총에 감사드리며 가진 것마저
빼앗기지 않도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