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연중 제6주간 수요일(2/18)


    말씀의 초대
    성경에는 눈먼 이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만큼 눈먼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오늘날에도 눈먼 이들이 적지 않다. 자식에 눈멀고 돈과 재물에 눈이 멀어 앞날을 못 보는 사람들이다.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복음).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스승이 제자에게 돌덩어리 두 개를 주며 가격을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는 채소 가게 주인에게 “얼마면 이것을 사겠소?” 하고 묻습니다. 대답은 감자 두 개였습니다. 다시 정육점에 가서 묻습니다. “얼마면 사겠소?” 대답은 역시 고기 두 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금은방을 찾아갑니다. “얼마면 사겠소?” 주인은 돌덩이를 보더니 숨이 넘어갑니다. “가진 것을 모두 주겠소. 제게 파시오!” 돌아온 제자에게 스승은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돌덩이는 엄청난 보석의 원석이었던 겁니다. 같은 보석이지만 가격은 달랐습니다. 알아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보물을 안고 삽니다. ‘ 가족’이라는 보물과 함께 삽니다. 얼마만큼 가치를 깨닫고 있는지요? 모르면 ‘눈먼 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쳐 주십니다. 오늘날에도 눈이 먼 채 살아가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자식에 눈이 멀고, 재물에 눈이 멀고, 명예와 권력 때문에 앞날을 보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눈먼 이를 눈뜨게 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절제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분수를 잊기에 삶의 리듬마저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눈에도 손을 얹어 주시길 청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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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6주간 수요일(2/18)


      말씀의 초대
      성경에는 눈먼 이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만큼 눈먼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오늘날에도 눈먼 이들이 적지 않다. 자식에 눈멀고 돈과 재물에 눈이 멀어 앞날을 못 보는 사람들이다.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복음).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스승이 제자에게 돌덩어리 두 개를 주며 가격을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는 채소 가게 주인에게 “얼마면 이것을 사겠소?” 하고 묻습니다. 대답은 감자 두 개였습니다. 다시 정육점에 가서 묻습니다. “얼마면 사겠소?” 대답은 역시 고기 두 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금은방을 찾아갑니다. “얼마면 사겠소?” 주인은 돌덩이를 보더니 숨이 넘어갑니다. “가진 것을 모두 주겠소. 제게 파시오!” 돌아온 제자에게 스승은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돌덩이는 엄청난 보석의 원석이었던 겁니다. 같은 보석이지만 가격은 달랐습니다. 알아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보물을 안고 삽니다. ‘ 가족’이라는 보물과 함께 삽니다. 얼마만큼 가치를 깨닫고 있는지요? 모르면 ‘눈먼 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쳐 주십니다. 오늘날에도 눈이 먼 채 살아가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자식에 눈이 멀고, 재물에 눈이 멀고, 명예와 권력 때문에 앞날을 보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눈먼 이를 눈뜨게 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절제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분수를 잊기에 삶의 리듬마저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눈에도 손을 얹어 주시길 청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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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6주간 수요일(2/18)


      말씀의 초대
      밤낮으로 비가 내려 세상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사십 일이 지나자 비가 그쳤다.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내 보았다. 그 뒤에는 비둘기를 내보내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땅에 발을 디딘 노아의 가족은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바쳤다(제1독서).
      제1독서
      <노아가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8,6-13.20-22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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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맘속에 담아 봅니다.

    첫 번째 손을 얹으시며 “무엇이 보이느냐?” 하자

    그가 사람들이 보이는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인다고 하자,

    아버지께서는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지요.

    그러자 그가 똑똑히 보게 됩니다.

    제 머리에 그 모습을 몇 번이고 그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왜 한번에 보이게 안하셨지?” 라고~~~ ㅎㅎ

    제가 꾸중들을 생각을 했지요?

    그치만 알아요.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을~~~

    단번에 모든 것을 깨우치는 것을 바라심이 아니라

    점차적인 걸음마로 가르침 속으로 걸어가는 삶을 바라심을~~~

    철없는 자식들에게 그것마저도 모습으로 보여주시잖아요.

    그리고 “그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라고 말씀하시지요.

    눈뜨기 전의 방탕한 삶의 생활로 들어가지 말라는 그 말씀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저역시 아버지의 자녀로 새로 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세받기 전의 저로 돌아간다면 새로 난게 아닌것처럼~~~

    그치요?

    말씀을 묵상하는데 제 뇌리를 스쳐가는게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괴롭히고 있으며

    무엇이 힘들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멀리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인지~~~

    어떤 모습이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모습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의와 의로움을 몸소 보여주려는 어떤 이가

    순명하지 않는 것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도 아니고 거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따르지 않는다 하여

    어색한 비유를 들어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옛것에 얽매여 있으면 나를 망치는 길이라고~~

    새로운 틀에 나를 맞추고 나를 담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굽히기를 바라기도 한다지요.

    누구를 위한 굽힘인지요.

    누구를 위한 의로움의 행동인지요.

    바로 아버지 앞에서의 무릎 꿇음과 아버지의 사랑에서 나오는 의로움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막으려 한다면?

    참 슬픈 일이지요?

    아버지!

    눈먼이가 보지 못했던 시간을 그리워 할까요?

    부족한 저가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을 때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저를 다시금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가 단 한번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겨우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고 있답니다.

    그리하여 가슴으로 대화하는 수다스런 딸이 되었음에 늘 감사하면서

    아버지를 알기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려 다짐해 보는 시간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라고~~

    처음엔 뜨끔했지만 말씀을 묵상하면서

    절더러 자지 말라는 말씀으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주변의 모습들에 많이도 흔들리고 아파하면서

    때론 아버지를 잊으려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무슨 계기로든 저를 놓지 않으셨지요.

    아버지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힘들다 하여

    아버지를 알기전의 저로 돌아가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 부족이 아니라 주위의 여건을 핑계삼았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가 어리석은 미끼를 먹지 않게 하소서.

    제입의 상처를 남김을 알게 하시고 아버지의 사랑만을 먹게 하시어

    입을 열때마다 기쁨의 소리가 넘치게 하소서.

    그리하여 뒤를 돌아보는 저가 아니라 저 높은 곳의 아버지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늘 깨어 기도하여 영적인 삶에서 다시 보게 된 제 눈이

    다시금 어둠속에 잠기지 않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맘속에 담아 봅니다.

    첫 번째 손을 얹으시며 “무엇이 보이느냐?” 하자

    그가 사람들이 보이는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인다고 하자,

    아버지께서는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지요.

    그러자 그가 똑똑히 보게 됩니다.

    제 머리에 그 모습을 몇 번이고 그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왜 한번에 보이게 안하셨지?” 라고~~~ ㅎㅎ

    제가 꾸중들을 생각을 했지요?

    그치만 알아요.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을~~~

    단번에 모든 것을 깨우치는 것을 바라심이 아니라

    점차적인 걸음마로 가르침 속으로 걸어가는 삶을 바라심을~~~

    철없는 자식들에게 그것마저도 모습으로 보여주시잖아요.

    그리고 “그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라고 말씀하시지요.

    눈뜨기 전의 방탕한 삶의 생활로 들어가지 말라는 그 말씀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저역시 아버지의 자녀로 새로 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세받기 전의 저로 돌아간다면 새로 난게 아닌것처럼~~~

    그치요?

    말씀을 묵상하는데 제 뇌리를 스쳐가는게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괴롭히고 있으며

    무엇이 힘들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멀리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인지~~~

    어떤 모습이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모습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의와 의로움을 몸소 보여주려는 어떤 이가

    순명하지 않는 것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도 아니고 거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따르지 않는다 하여

    어색한 비유를 들어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옛것에 얽매여 있으면 나를 망치는 길이라고~~

    새로운 틀에 나를 맞추고 나를 담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굽히기를 바라기도 한다지요.

    누구를 위한 굽힘인지요.

    누구를 위한 의로움의 행동인지요.

    바로 아버지 앞에서의 무릎 꿇음과 아버지의 사랑에서 나오는 의로움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막으려 한다면?

    참 슬픈 일이지요?

    아버지!

    눈먼이가 보지 못했던 시간을 그리워 할까요?

    부족한 저가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을 때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저를 다시금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가 단 한번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겨우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고 있답니다.

    그리하여 가슴으로 대화하는 수다스런 딸이 되었음에 늘 감사하면서

    아버지를 알기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려 다짐해 보는 시간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라고~~

    처음엔 뜨끔했지만 말씀을 묵상하면서

    절더러 자지 말라는 말씀으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주변의 모습들에 많이도 흔들리고 아파하면서

    때론 아버지를 잊으려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무슨 계기로든 저를 놓지 않으셨지요.

    아버지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힘들다 하여

    아버지를 알기전의 저로 돌아가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 부족이 아니라 주위의 여건을 핑계삼았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가 어리석은 미끼를 먹지 않게 하소서.

    제입의 상처를 남김을 알게 하시고 아버지의 사랑만을 먹게 하시어

    입을 열때마다 기쁨의 소리가 넘치게 하소서.

    그리하여 뒤를 돌아보는 저가 아니라 저 높은 곳의 아버지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늘 깨어 기도하여 영적인 삶에서 다시 보게 된 제 눈이

    다시금 어둠속에 잠기지 않게 하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주님!
    어제에 이어 오늘하루종일 메스컴에서 김수환추기경님의
    임종과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방송을 보느라 복음묵상을 하지 못했지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천주교신자라는 사실이 기쁘구요
    추기경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추기경님의 모습만 나오면 성호를 그으며 당신께 기도를 하면서...
    교회의 최고의 자리에 계셨지만 초라하리만큼 검소한 추기경님의 
    유품을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새삼 저의 교만과 허영이 신앙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지요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제가 얼마나 허영심이 많은 사람인지를..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은 회개하는 것 같지만...
    추기경님의 소박하고 초라 하기까지한 유품을 보면서
    자신의 허영을 반성하지만 그때 뿐이라는 사실을...
    제 자신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사람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무엇이 보이느냐?”
     
    말씀을 가슴에 와 닿습니다
     맞아요 주님!

    당신의 사랑이 보였구요
    당신이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는지 깨닫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전능하신 분인지 ...
    당신만이 저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이 순간만은 깨닫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만은....
    저의 변덕이 언제 변할지 모르지만...
    노력하겟습니다 주님!
    아직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헬레나지만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언젠가는 저도 변화되리라고
    굳게 믿으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겠습니다
    아니!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간절한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무엇이 보이느냐?”

    묵상하며
     

  6. guest 님의 말:

    (no content)

  7. user#0 님의 말:

    “무엇이 보이느냐?”

    주님!
    요즈음 …..
    사느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친구들이 보고싶어
    동창카페에 들어가 친구들을 찾아보고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삼십여년 전의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듭니다
    마음으로는 당장 달려가서 만나고 싶은데 쉽지가 않지요
    먹고 사느라……
    매일매일 동창카페에서 기웃거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근황을 보면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저의 삶을
    생각해보니 참 힘든 세월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지요
    저만 힘들고 외롭고 지친 삶을 살아 온 것같아……
    하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비록 실물이 아닌 사진으로 친구들이 써 놓은 자신들의 생활들을
    보니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산 것같다는 위로를 하면서…..
    오늘도 친구가 메일로 보고싶다는 말에 기쁘고 당장 친구를 보러가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갈 상상을 하면서 번호를 저장했습니다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사십년이 가까운 세월인데 엊그제 헤여진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이렇게 설레고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무엇이 보이느냐?”
    말씀을 성찰하며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
    기쁠때나 슬플때나 언제나 ^*^
    당신을 믿고 사랑하며 ^*^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무엇이 보이느냐?”

    묵상하며

    ♬ 내눈을 뜨게하소서

  8. user#0 님의 말:

    “무엇이 보이느냐?”

    주님!
    지금까지 올림픽경기를 보다가 선전을 하는사이 복음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세속의 이런 저런 일들이 우선입니다
    심지어는 연속극을 보느라 복음묵상을 포기한 적도 수없이 많았음을 …
    그러면서 틈이 나면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막간을(?)이용해서 복음묵상을 합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당신께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복음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려니….
    몸따로 마음따로….

    사실 요즈음 마음이 산란했거든요
    이런 저런 일들로 모두가 쓸데없는 일들로…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당신께 죄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지요?주님!
    아직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쬐끔은 있다는 사실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무엇이 보이느냐?”
    말씀에 깊이 새기며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반성해봅니다
    쓸데없는 일에 소모하지 않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임을 명심하겠습니다
    흰개꼬리 삼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지만 당신의 사랑으로 저의 변덕스런 마음과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묵상하며

    눈뚠 장님이 되지 않도록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 내눈을 뜨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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