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2/27)


    말씀의 초대
    단식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절제함으로써 속죄하게 한다. 단식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라도 단식을 통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다. 진정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다. 그분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 단식하는 것이다(복음).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5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의 제자 몇몇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다분히 볼멘소리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당신의 마지막’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신 겁니다.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단식’으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단식 자체에 매달리지 말고 예수님과 연관된 ‘신앙 행위’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단식했습니다. 단식에 관한 기록 역시 많습니다. 하지만 공통 요소는 언제나 ‘하늘의 기운’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민족의 회개가 요구될 때는 늘 단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단식은 주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이슬람교의 ‘라마단’은 한 달 동안 이어지는 단식입니다. 그들은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습니다. 여행자나 환자의 경우는 제외되지만 그들도 나중에는 빠진 날수만큼 보충해야 합니다. 지독한 단식입니다. 희생 없이 절제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절제 없이 본능은 조절되지 않습니다. 단식 역시 그 근본은 ‘절제의 훈련’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 사랑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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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2/27)


      말씀의 초대
      단식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절제함으로써 속죄하게 한다. 단식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라도 단식을 통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다. 진정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다. 그분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 단식하는 것이다(복음).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5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의 제자 몇몇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다분히 볼멘소리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당신의 마지막’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신 겁니다.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단식’으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단식 자체에 매달리지 말고 예수님과 연관된 ‘신앙 행위’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단식했습니다. 단식에 관한 기록 역시 많습니다. 하지만 공통 요소는 언제나 ‘하늘의 기운’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민족의 회개가 요구될 때는 늘 단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단식은 주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이슬람교의 ‘라마단’은 한 달 동안 이어지는 단식입니다. 그들은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습니다. 여행자나 환자의 경우는 제외되지만 그들도 나중에는 빠진 날수만큼 보충해야 합니다. 지독한 단식입니다. 희생 없이 절제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절제 없이 본능은 조절되지 않습니다. 단식 역시 그 근본은 ‘절제의 훈련’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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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2/27)


      말씀의 초대
      단식하는 것을 남이 보아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단식하는 동안 다투고 싸워서도 안 된다. 오히려 불의한 사람의 결박을 풀어 주고,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해 주려 애써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런 단식을 원하신다(제1독서).
      제1독서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네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이렇게 말씀해 주시리라. “나 여기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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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재의수요일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을 시작으로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에는 혼자서 재의 예식에 참여하였는데, 처음으로 작은아이 요한이를
    데리고 재의 예식에 참여를 하였는데, 아이가 아주 신기해하며 좋아하였습니다.
    마침 요한이가 첫영성체 교리를 받기 시작하였는데, 신부님께서 가정교리반
    친구들은 반드시 재의수요일에 미사참례를 하기를 부탁하셨으며, 또한 주일미사때
    부모님들께도 각별히 부탁을 하셨던 때문인지, 성당이 평일 저녁임에도 신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것을 보고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심지어 젖먹이 어린아이들까지도 안고 나와 재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 뿌듯함과 숙연함이 자리했습니다.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요한이
    ‘저렇게 어린아이들까지도 와서 재를 받는데, 우리 누나와 아빠만 빠져서
    서운하네요’ 하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우리 요한이가 제법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시기를 놓쳐 가정교리반에 들어가지 못해 같은 학년 아이들과 따로 교리를 받으니
    외톨이가 된 기분이라며 어린이 미사에 가기 싫다고 하여 달래서 보내느라
    한참 애를 먹었던 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저러다 영영 미사에 참례하기를 싫어하면 어쩌나 싶은 노파심이 들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올해 일찌감치 가정교리반에 등록하여 엄마가 먼저 교리 공부를
    배워서 알려주고, 함께 신앙의 이야기를 나누니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어요.
    부모가 먼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루어 자녀에게 전달하는 아주 좋은
    교리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드니, 열심히 배우고 익혀 좋은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좋은 일에 악마의 유혹이 더 따른다 하더니, 저에게도 자꾸 방해요소가
    자주 일어나니 세례식의 그날 까지 무사히 교리를 잘 받아 결실의 기쁨을
    얻어 누릴 수 있을 지 염려됩니다.

    주님!
    제가 사순시기 동안 좀더 절제할 줄 알게 하시고 보다 인내하여
    아들 요한이와 남편과 함께 가정교리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은총 구합니다.
    그리하여 저희 가족모두가 지금보다 훨씬 돈독한 성가정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이 작은 소망들을 잘 가꾸고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소서. 아멘.

    ♬ 그 사랑 얼마나

  4. guest 님의 말: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헬레나씨!

    내일아침 9시까지 삼부프라자 앞으로 와요
    갈매못에서 미사할꺼예요 점심 때 가재미회 사줄께요
    아니! 가자미회 먹고 눈 돌아가면 어떻게 그래도
    오랜만에 바람 쐬러 가니 맛있는 것 먹어야지요  
    그나저나 글라라 형님은 하필이면 사순시기 첫 금요일에 
     초대를 하니 안 갈수도 없고 마음에 걸리고
    왜 갑자기 이사를 가서 우리들 마음 찡하게 만드네
    아무리 생각해도 맛있는 것은 나중에 먹어야하지 않을까?
    가자미회 먹다 눈 돌아갈 것 같아서 
    예수님께 죄송하고 양심도 찔리고...
    아휴!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네 ㅠㅠ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녹녹치 않음을 느낍니다
    특히 사순시기를 지낸다는 것이 세속에서의 삶 또한 
    무시할 수도 없으니 고민이 될 때도 있습니다
    단식 또한 평소에는 아침을 별로 먹지를 않아 불편하지
    않은데도 사순시기만 되면 특히 매주 금요일만 되면
    이상하게 아침만 되면 뱃속에서 피아노소리가 나서
     어느 때는 점심때 조금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침 밥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의 밥맛이란 ...
    그리고 후회를 하지요 식충이가 따로 없다고 자책하면서
    그런데도 해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면 다짐을 해보지만
    언제나 작심삼일도 못가 아니 하루도 못갈 때도 있습니다
    참 엉터리 신자지요? 주님!
    기본적인 신앙인의 도리도 하지 못하면서 무슨 봉사를 한다고
    떠들어대니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저를 두고 한 말인 것같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해마다 거창하게 다짐만으로 끝났던 사순시기의 신앙생활이
    올해는 행동으로 실천하며 당신께서 부활하신다는 믿음으로
    기쁜마음으로 사순시기를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며 되풀이 되지 않도록 ...
     절제하며 신앙생활을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

    “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묵상하며
     

    ♬ Fratello Sole e Sorella Luna (Brother sun, sister moon)-Claudio Baglioni


    
    

  5. guest 님의 말:

     

    재의 수요일 다음 금요일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말씀읽기: 마태 9,14-15

    단식 논쟁-새것과 헌것 (마르 2,18-22 ; 루카 5,33-39)


    2.말씀연구

    사순절에는 꼭 아침을 단식한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먹고 싶지만 단식을 하면서 그 고통을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과 함께한 그 고통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런다고 다른 사람들이 다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 주려는 노력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나고 상대방은 상대방입니다. 상대방을 내 틀에 맞추려고 노력한다면 상대방은 참으로 힘든 날들을 보낼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니까 너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을 접고서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오늘 예수님께 다가온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시비를 걸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커다란 능력을 축소시켜 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커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상대방을 낮춘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일까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와서 물었습니다.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모범을 따라 엄격한 참회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들 꿀과 메뚜기를 먹고 살았던 세례자 요한을 생각해보면 그 제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규정을 넘어서서 스스로에게 특별한 계율을 부여한 점에 있어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오해했을 것입니다. 군중들에게는 높은 완덕을 가르치시면 서도 그분과 그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말씀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분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유다인들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날, 곧 10월 1일에 의무적으로 단식을 했습니다. 또 기근, 전쟁, 가뭄 같은 특별한 재난을 겪을 때, 슬픔과 고난의 표현으로써 특히 단식일을 정하고 지켰습니다. 또 모범적인 신앙인을 자처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한 주일에 두 번 단식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단식은 단순한 고행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느님께서 반기시는 신심행위의 하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도 그것과 비슷한 관습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마 스승의 엄격한 생활을 본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40주야를 단식하셨습니다. 하지만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반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대중 앞에 드러내 놓고 하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단식의 내적인 의미는 슬픔이지만 지금은 기쁨의 때입니다. 신랑의 친구들이 결혼 잔치에 초대받아 올 때 그들은 장례식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신랑은 이미 와 있으며 자기와 함께 기쁨을 나누도록 주위에 손님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러기에 단식이란 여기서 전혀 무의미한 것입니다. 지금은 기쁨과 환희의 때이기에 단식은 이 독특한 시간과 모순 되는 것입니다.


     보통 이렛 동안 계속되는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그 잔치의 즐거움에 참여하여 한껏 신랑과 즐겨야 합니다. 그 때문에 초청을 받았고, 또 그것이 신랑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곧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빼앗긴다는 말은 폭력에 의한 이별을 뜻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최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유다 문학에서도 <메시아의 날>을 혼인잔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의 때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그 기쁨의 때가 앞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1세기 초대 교회에서는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3,2;14,23;27,9; 1고린7,5;2고린6,5에 그 증언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 단식일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이었을 것입니다. 또 1세기 말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세기 말엽에는 부활축일 전에 단식을 했습니다. 지금은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단식을 하고 있고, 매 금요일 마다 금육을 지키고 있습니다. 단식과 금육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단식과 금육을 통해 절약한 것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눔에 있습니다. 실천함에 있는 것입니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복음의 정신 한 부분을 가져다 그것을 유다교 정신에 맞추려 하는 노력은 당치 않은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의 정신도 그 핵심을 잃고, 유다이즘도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물에 담근 일이 없는 새 천이 한 번 물에 들어가면 줄어들어서 낡은 천을 잡아 등겨 찢어지거나 구멍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임이 증명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바리사이적 유다이즘입니다. 그들이 율법에 덧붙여 놓은 번잡스럽고 다루기 어려운 규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때는 새로운 탄생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의 회개와 완전한 마음의 변화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단지 옛것에 새로운 규정이나 의식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마스커tm를 향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10여년의 시간을 준비하게 됩니다. 회심 이후에 즉시 복음을 전했다면, 그래서 비록 성공을 거두었을지라도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대는 행위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가죽부대는 나귀나 낙타 등을 이용하여 실어 날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찰로 인하여 표피가 엷어지고 약해졌습니다. 더구나 새 포도주는 발효하여 그 부대를 터뜨리고 포도주가 쓸모없게 됩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았던 것입니다.


     율법의 노예가 되고 그릇된 전통을 고집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은 헌 가죽부대입니다. 그 헌 부대에는 새 술인 복음을 넣을 수가 없습니다. 새 술은 편견을 버린 마음, 그것을 이해하고 맛볼 수 있는 순진한 새 마음이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음은 유다이즘에 없는 이 새로운 정신을 인생에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그저 한치 앞만을 내다보면서 남을 판단하는 나. 나를 좀더 성숙시키고, 나를 좀더 말 못하게 하고, 나를 좀더 못 보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내 것 만을 고집하지 말고, 상대방의 것이 옳다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옹졸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어, 제가 말씀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은총 주소서. 아멘.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것을 고집하고, 내 틀에 상대방을 맞추려 하는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장애물이요 걸림돌일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는 또 어떤 바리사이가 되어 내 곁에 계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습니까?


    ②“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 점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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