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사순 제2주간 금요일(3/13)


    말씀의 초대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들을 믿고 도와준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의 선한 마음을 외면한다. 오히려 은혜를 배신으로 갚으려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위를 꾸짖는 비유다. 바리사이들은 비유의 내용을 알아듣고 예수님을 없앨 궁리를 한다(복음).
    복음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에서의 포도밭 임자는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칩니다. 포도 ‘확’을 만들고는 탑까지 세웁니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먼 길을 떠납니다. 고맙고 여유 넘치는 주인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포도밭을 그렇게 맡기셨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은 주님께서 맡기신 ‘포도밭’인 셈입니다. 많은 이들은 포도밭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소출을 받으러 온 사람들을 외면합니다. 더러는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늘의 힘을 차단하는 행동입니다. 복음의 비유는 유다인만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기대를 걸지 않았던 이들이 소출을 바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 사람들인지요? 언제라도 ‘삶의 원인’은 주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고통은 그분께서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소출을 바치는 삶입니다. 인생의 포도밭은 우리가 가꾸지만 마무리는 주님께서 하십니다. 원래 그분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무 ‘꽉 쥐고’ 살면 안 됩니다. 때가 되면 돌려줄 것이란 생각을 가끔은 기억해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고백 - 김석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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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2주간 금요일(3/13)


      말씀의 초대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들을 믿고 도와준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의 선한 마음을 외면한다. 오히려 은혜를 배신으로 갚으려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위를 꾸짖는 비유다. 바리사이들은 비유의 내용을 알아듣고 예수님을 없앨 궁리를 한다(복음).
      복음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에서의 포도밭 임자는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칩니다. 포도 ‘확’을 만들고는 탑까지 세웁니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먼 길을 떠납니다. 고맙고 여유 넘치는 주인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포도밭을 그렇게 맡기셨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은 주님께서 맡기신 ‘포도밭’인 셈입니다. 많은 이들은 포도밭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소출을 받으러 온 사람들을 외면합니다. 더러는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늘의 힘을 차단하는 행동입니다. 복음의 비유는 유다인만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기대를 걸지 않았던 이들이 소출을 바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 사람들인지요? 언제라도 ‘삶의 원인’은 주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고통은 그분께서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소출을 바치는 삶입니다. 인생의 포도밭은 우리가 가꾸지만 마무리는 주님께서 하십니다. 원래 그분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무 ‘꽉 쥐고’ 살면 안 됩니다. 때가 되면 돌려줄 것이란 생각을 가끔은 기억해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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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사순 제2주간 금요일(3/13)


      말씀의 초대
      야곱은 늘그막에 얻은 요셉을 끔찍이 사랑했다. 아버지의 편애는 다른 형제들의 시기심을 자극했다. 마침내 형제들은 요셉을 없애기로 마음을 모은다. 그러나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넘긴다.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였다(제1독서).
      제1독서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7,3-4.12-13ㄷ.17ㄹ-28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고백 - 김석균곡 
    
    
     
    

  3. guest 님의 말: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말씀에 가슴이 뭉쿨합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했지만....
    진심으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 당신을 사랑했는지...
    진심으로 당신을 존중했는지...
    당신이 정말 저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었는지...
    아니었습니다 주님!

    제가 믿는 것은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가장 잘 믿고 저의 판단을 제일 잘 믿었습니다
    당신을 믿었던 것은 저의 필요에 의해서였습니다
    제가 아쉬울 때 였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진심으로 당신을 존중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당신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믿었다면 저의 신앙생활이
    지금보다는 훨씬 모범적으로 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은 폼으로 하는 것이 아닌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례로 신앙생활을 한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말씀을 깊이 새기며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해봅니다
    최소한 기본만이라도 충실하게 지키는...
    빈 수레가 요란한 보여주기 위한 신앙가가 아닌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복음묵상을 할 때의 일시적인 기분이 아닌
    언제나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을 보내 주셨으니,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아멘


    ♬ 구원의 십자가-가톨릭성가122번(Guitar)

  4. user#0 님의 말: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말씀에 가슴이 뭉쿨합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했지만....
    진심으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 당신을 사랑했는지...
    진심으로 당신을 존중했는지...
    당신이 정말 저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었는지...
    아니었습니다 주님!

    제가 믿는 것은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가장 잘 믿고 저의 판단을 제일 잘 믿었습니다
    당신을 믿었던 것은 저의 필요에 의해서였습니다
    제가 아쉬울 때 였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진심으로 당신을 존중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당신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믿었다면 저의 신앙생활이
    지금보다는 훨씬 모범적으로 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은 폼으로 하는 것이 아닌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례로 신앙생활을 한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말씀을 깊이 새기며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해봅니다
    최소한 기본만이라도 충실하게 지키는...
    빈 수레가 요란한 보여주기 위한 신앙가가 아닌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복음묵상을 할 때의 일시적인 기분이 아닌
    언제나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을 보내 주셨으니,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아멘


    ♬ 구원의 십자가-가톨릭성가122번(Guitar)

  5. guest 님의 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자


    1. 말씀읽기: 마태21,33-43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마르 12,1-12 ; 루카 20,9-19)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악의를 품고 있는 유다인들을 향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예언자들이며, 아들은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포도밭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하느님을 경배하지 않고), 도조를 내기 싫어하는(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을 싫어하는) 유다인들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죽음에 넘기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아들의 순명과 수난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의 불충을 바라보면서 내 모습을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소작인인지를…,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어떤 밭 임자는 바로 하느님이시고, 포도밭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인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의지”라는 크나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제 알아서 하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책임은 내가져야 합니다.

    “확”은 현재 팔레스티나의 밭에서는 볼 수 없으나, 옛날의 것으로써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는 포도송이를 짓이기는 평평한 돌에 구멍을 낸 것이며 그 곳에서 포도즙이 나오고, 그 밑에 그릇을 놓아 흘러나오는 포도즙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망대”는 언덕위에 석조로 만든 집으로 지붕은 밀짚으로 덮었고 거기에 밭지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지주는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고 소작인에게 밭을 맡겼습니다. 소작의 계약은 각 지방의 관습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릅니다. 소작인은 수확의 3분의 1, 혹은 반, 혹은 4분의 1을 지주에게 바쳤습니다. 지불은 거둔 농작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포도 철은 바로 결실을 맺는 시기이고, 주인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시기입니다. 주인은 당연히 받을 권한이 있고, 소작인들은 당연히 소작료를 바칠 의무가 있습니다. 종들은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에 차례차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진 예언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도조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억만금”을 바치라는 말씀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적어도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감사하고, 그것을 혼자만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쳐야 할 도조는 바로 그것입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 말씀은 이렇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도조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사람들이 그 도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보내어 도조(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오히려 종(예언자들)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아들)까지 보내신 것입니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소작인들이 종에 대한 태도는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 세상에 지주의 종을 이처럼 잔인하게 다룰 소작인은 없습니다(예전에 공산당들이 그랬던가요?). 그런데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이라면 당연히 못된 종들을 응징할 수 있는 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들이 이스라엘 예언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주인이 복수를 안 하셨는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기회를 주셨습니다. 돌아오기만을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소작인들(나)이 예언자들을 박해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들(예언자들)도 참 불쌍했던 것 같습니다. 박해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니 가서 전하는 그들의 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떻습니까? 신자들한테 가기 귀찮아서 주저앉아 있고, 누가 성당에 나오지 않아도 관심도 없고…, 그래도 돌로 쳐 죽이지는 않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 종(예언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힘내서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돌 맞을 짓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본당 신자들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금방 드러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지, 신자들을 위해서 하는지, 열심히 하는지, 대충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이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아들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종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주인은 아들까지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도 밭의 도조가 더 중요했을까요? 아들보다도 밭에다 더 애정을 쏟았던 것일까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바라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주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라고 저희끼리 모의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붙잡아 죽여 버렸습니다.

    빛을 싫어하는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자꾸만 어둠 속으로만 들어가려 하고, 빛을 꺼 버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유다인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기회를 주십니다. 이제 내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예”하고 응답하고 축복의 길을 걷던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막가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이 말씀은 “그러니 하느님께서 오시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지 않고,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하느님의 아드님인 나 까지도 죽이려하고, 마침내 죽이는 너희를 어떻게 하겠느냐?” 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백성의 지도자들이 알아 차려야 하는데, 그들은 눈과 귀를 모두 막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껴야 하는데, 그리고 지금 눈앞에 계신 분이 바로 아드님이심을 알아 차려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백성의 지도자들은 포도밭 주인이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실”힘을 가지신 하느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신 이 악한 소작인들이 이스라엘의 포도밭을 짓밟은 로마인이라고 오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것은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결국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를 심판한 것입니다. 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을까요? “바로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데…”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버려진 돌이란 하느님 나라의 머릿돌이 되실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이 돌은  하느님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건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습니다. 더구나 모든 것을 심판하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돌이기도 합니다. 집짓는 자들(백성의 지도자들과 불신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버린 돌),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버린 돌)이 하느님 나라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볼 눈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버렸는데 알고 보니 보석중의 보석이여서 정말 귀하게 쓰인다면 얼마나 배가 아프겠습니까? 필요 없는 땅이라고 버렸는데 갑자가 노른자 땅이 되었다면 얼마나 속이 아프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는 그런 일이 닥칠 것입니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살인자 소작인들은 벌을 받게 되고, 포도원은 다른 충실한 소작인의 손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살인자 소작인들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그 지도자인 바리사이파 사람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있는 수확이란 선택하신 백성에게 기대하고 있던 영광입니다. 보낸 종들은 예언자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내신 아들은 바로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외아들을 죽음의 땅으로 보내신 그 주인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 이십니다. 슬픈 사명을 받은 이는 다름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슬픈 사명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시고 말씀을 전하셨지만 결국 소작인들은(백성의 지도자들)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아버지는 배은망덕한 소작인들을 벌하시고 포도원을 빼앗으셨습니다. 기원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에 함락되고 맙니다.


     이제 하느님 나라는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리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 돌(예수님) 밑에 깔리는 사람(죄인으로 단정 받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입니다(지옥에 떨어져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3.나눔 및 묵상

    ① 내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소작료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 소작료를 잘 내고 있습니까?


    ② 소작료(찬미와 감사와 영광)를 충실히 내고 있는 형제 자매를 칭찬해 보며, 그의 신앙적인 삶을 칭찬해 봅시다.

  6. guest 님의 말: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어떤 소작인일까? 를 생각해 봅니다.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었는지~~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서도 당당히 서 있는것은 아닌지요.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 말씀하지 않으셔도

    믿음에 대한 사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게 당연한 것인데~~

    그리고 적음에 죄송해하면서 고개숙이며 아버지께 나아가야 함인데

    과연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주인의 마음에 대해서도~~

    아버지께로 받은 저를 어떻게 관리하고 가꾸는 주인이었는지요.

    주신 삶을 살아감에 소중함을 모르고 저 혼자 난 것처럼

    교만과 이기로 살아가는 다른 한명의 유다인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형식적인 관례에 젖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은 사랑하는 아드님을 보내심에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이는 이들이

    바로 저의 모습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제 마음이 완고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그런 저는 아니었는지요.

    열심히 움직여 아버지께 되려 “저 이만큼 열매를 맺었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담에 더 많은 열매를 맺을겁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부족한 저는 그리하지 못함에 고개를 숙여 봅니다.

    결국은 저도 가장 보잘것 없는 지도자들처럼 허영과 형식에 치우쳐

    맘조차 완고해져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음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계산하지 않으시지요.

    그토록 은혜를 저버리는 소작인이었지만 사랑으로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

    늘 한결같은 사랑 그자체이시지요.

    베풀기만 하시는 그런 아버지~

    좋으면 달려가고 싫으면 언제든지 돌아서려는 그런 이중적인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진 않았는지요.

    아버지께서 바라심이 무엇인데

    아들까지 내어 주셨는지를 잊지 않고 늘 가슴에 묻고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멋진 소작인으로 새옷을 입고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드리는 풍작을 이루는 소작인이 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오늘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도조를 받아오라고 보낸 종들을 죽이자 아들까지 보내지만

    그 또한 죽여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리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늘 사랑으로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만을 생각하면서

    혹여 제가 그런 소작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를 일깨워 주시는 것 같아서

    가슴에 와 닿습니다.

    형식에 치우치면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며

    늘 헛된 의로움에 젖어 바로보지 못하는

    유다인이나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완고함에 말라버린 저가 아닌지요.

    늘 넘치는 사랑과 은총에 제가 드릴 감사와 찬미는 당연함인데

    교만의 벌레가 좀먹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하루하루 땀흘리며 고개 들어 감사드리는 소작인이 되게 하소서.

    말씀의 약으로 열매들이 쑥쑥 자라게 하는 알진 일꾼이 되어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와 흠숭과 사랑을 드림에

    적어서 고개숙이는 저가 되게 하소서.

    저를 이세상에 내어 주심에 저는 제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임을 잊지 않게 하시어

    하루하루 겸손되이 살아가면서

    늘 아버지의 맘을 생각하면서 땀흘리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다른 이에게 밭을 빼앗기는 어리석음은 당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7. user#0 님의 말: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어떤 소작인일까? 를 생각해 봅니다.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었는지~~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서도 당당히 서 있는것은 아닌지요.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 말씀하지 않으셔도

    믿음에 대한 사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게 당연한 것인데~~

    그리고 적음에 죄송해하면서 고개숙이며 아버지께 나아가야 함인데

    과연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주인의 마음에 대해서도~~

    아버지께로 받은 저를 어떻게 관리하고 가꾸는 주인이었는지요.

    주신 삶을 살아감에 소중함을 모르고 저 혼자 난 것처럼

    교만과 이기로 살아가는 다른 한명의 유다인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형식적인 관례에 젖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은 사랑하는 아드님을 보내심에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이는 이들이

    바로 저의 모습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제 마음이 완고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그런 저는 아니었는지요.

    열심히 움직여 아버지께 되려 “저 이만큼 열매를 맺었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담에 더 많은 열매를 맺을겁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부족한 저는 그리하지 못함에 고개를 숙여 봅니다.

    결국은 저도 가장 보잘것 없는 지도자들처럼 허영과 형식에 치우쳐

    맘조차 완고해져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음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계산하지 않으시지요.

    그토록 은혜를 저버리는 소작인이었지만 사랑으로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

    늘 한결같은 사랑 그자체이시지요.

    베풀기만 하시는 그런 아버지~

    좋으면 달려가고 싫으면 언제든지 돌아서려는 그런 이중적인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진 않았는지요.

    아버지께서 바라심이 무엇인데

    아들까지 내어 주셨는지를 잊지 않고 늘 가슴에 묻고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멋진 소작인으로 새옷을 입고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드리는 풍작을 이루는 소작인이 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오늘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도조를 받아오라고 보낸 종들을 죽이자 아들까지 보내지만

    그 또한 죽여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리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늘 사랑으로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만을 생각하면서

    혹여 제가 그런 소작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를 일깨워 주시는 것 같아서

    가슴에 와 닿습니다.

    형식에 치우치면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며

    늘 헛된 의로움에 젖어 바로보지 못하는

    유다인이나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완고함에 말라버린 저가 아닌지요.

    늘 넘치는 사랑과 은총에 제가 드릴 감사와 찬미는 당연함인데

    교만의 벌레가 좀먹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하루하루 땀흘리며 고개 들어 감사드리는 소작인이 되게 하소서.

    말씀의 약으로 열매들이 쑥쑥 자라게 하는 알진 일꾼이 되어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와 흠숭과 사랑을 드림에

    적어서 고개숙이는 저가 되게 하소서.

    저를 이세상에 내어 주심에 저는 제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임을 잊지 않게 하시어

    하루하루 겸손되이 살아가면서

    늘 아버지의 맘을 생각하면서 땀흘리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다른 이에게 밭을 빼앗기는 어리석음은 당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8. user#0 님의 말:

    요즘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다.
    나를 세상에 내신 그분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게 맡겼는지…
    생명과 물질 온갖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맡겨 주셨음을 깨달아 본다.

    그러기에 내가 최선을 다하고 노력했다면 다 얻을수 있었지 않나 생각해 봤다.
    그러나 다 주심에도 감사는 커녕 욕심때문에 불만만 늘어놓고 살아가고 있으니…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또 다시 기약없는 용서와 인내의 여정을 시작하시려는 그분을 보았다.
    포기하지 않고 말이다.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이렇게 포기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살았는가…
    그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과의 관계가 반역과 배신,분노의 역사였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버리지 않고 외아들까지 보내시는 그분이시다.
    그분 사전엔 포기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포기와 반역, 배신하고 분노한다.
    허지만 죄만스럽게도 이 반복된 죄악이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은총과 사랑,기적,구원의 역사임을 고백해 본다.
    아! 배은망덕한 인간…
    바로 나였던 것이었다.

    그럼 이렇게 고백하는 나는 어찌 사는가…
    사소한 일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모든 일들을 내 생각과 주관대로 상대방을 판단하며 포기하고 산다.
    분노와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미움과 증오의 칼을 품고 살지는 않았는지…
    또한 알게 모르게 배신과 반역을 일삼고 사는 이중인격자는 아니었나 싶다.

    오늘도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라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변화하지 못한다면 그분이 또 다시 오신다 해도 무슨소용 있으랴…
    아마 계속 죽이고 살 것이다.
    그분을 죽이지 않는 방법은
    그분처럼 기약없는 용서,자비, 인내를 베풀고
    그분이 내 주인이심을 깨닫는 것이며
    내 주제를 파악하고 감사하면서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아닐까…

  9. guest 님의 말:

    (no content)

  10. user#0 님의 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말씀이 저를 두고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듯이
    언제나 남의 것을 탐내고 시기하고 욕심부리고
    저의 이기심으로 당신의 자녀라고 떠들어대지만
    하루에도 수 차례 아니! 어느 때는 수십 번도...
    당신을 죽이고 있습니다
    저의 세치 혀로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어대면서도
    언제나 당신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핑계를 대지요
    오늘은 이래서 안되고 내일은 저래서 못하고
    어제는 누구 때문에 못했고 그제는 어느형제 때문에...
    어느 자매 때문에 ...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는 온갖 시기 질투 욕심으로 당신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회를 하지요
    내일은 잘 하겠다고 입에 발른 소리를 합니다
    잘못했다고 성사를 보고 또 보지만 보속도 하기 전에
    또 다시  똑 같은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온갖 봉사 희생 회개 겸손한 척합니다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말씀을 성찰하며
    사순시기동안 회개와 겸손과 절제 사랑하는 마음 등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남의 허물을 들추는 어리석은 신앙가 헬레나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언제나 복음묵상을 한 때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행동으로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올 사순시기는 어느 때보다 잘 보내게 하시어
    기쁨과 행복한 부활절을 맞게 해주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묵상하며

    ♬ 구원의 십자가-가톨릭성가122번(Guitar)

  11. user#0 님의 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말씀이 저를 두고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듯이
    언제나 남의 것을 탐내고 시기하고 욕심부리고
    저의 이기심으로 당신의 자녀라고 떠들어대지만
    하루에도 수 차례 아니! 어느 때는 수십 번도...
    당신을 죽이고 있습니다
    저의 세치 혀로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어대면서도
    언제나 당신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핑계를 대지요
    오늘은 이래서 안되고 내일은 저래서 못하고
    어제는 누구 때문에 못했고 그제는 어느형제 때문에...
    어느 자매 때문에 ...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는 온갖 시기 질투 욕심으로 당신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회를 하지요
    내일은 잘 하겠다고 입에 발른 소리를 합니다
    잘못했다고 성사를 보고 또 보지만 보속도 하기 전에
    또 다시  똑 같은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온갖 봉사 희생 회개 겸손한 척합니다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말씀을 성찰하며
    사순시기동안 회개와 겸손과 절제 사랑하는 마음 등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남의 허물을 들추는 어리석은 신앙가 헬레나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언제나 복음묵상을 한 때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행동으로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올 사순시기는 어느 때보다 잘 보내게 하시어
    기쁨과 행복한 부활절을 맞게 해주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묵상하며

    ♬ 구원의 십자가-가톨릭성가122번(Gui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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