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구원 계획

 

하느님의 구원 계획

1.말씀읽기:루카4,24-30

2.말씀연구

 신비감이 떨어지면 신뢰감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동네 사람이 나자렛에 와서 가르치셨다면 모두들 그분께 고개를 숙였겠지만 동네 사람이었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왔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별한 표징을 원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들과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된 구세주이시라는 표징을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예수님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그들이 규정하는 바대로 입증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이 정하신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동의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아합 왕 시절 아합 왕은 어떤 임금보다도 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하여 가뭄을 예언하게 하고,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해 놓았다.”(1열왕17,9)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사렙타로 갔더니 사렙타의 과부는 굶어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사렙타의 과부에게 물과 빵 한 조각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을 가지고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사렙타의 과부는 이 말씀을 믿고 그대로 합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것입니다. 믿음은 증거를 요구하면 안 됩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나아만은 시리아 사람으로서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를 사로잡아 왔는데 나아만의 나병을 보고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아람 임금에게 그 말을 했고, 아람 임금은 이스라엘 임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보내었습니다.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시오.”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편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임금은 당황했고, 아람 임금이 시비를 거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아만을 보내 달라고  합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왔을 때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라고 전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상처에 손을 얹거나 약을 발라 주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을 내며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 부하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고,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임의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파견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적이 이웃 주민들에게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구세주의 고향 사람들이었고 같은 혈통을 지닌 친척들이었다는 것이 구원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온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나셨다는 이유로 구원에 대한 권리 주장을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셨고 또 그 다스림을 확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쁨이 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구원은 은총입니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실 그대로이지만 그들에게는 모욕이 됩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정확한 지적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화를 냅니다.



 선택받은 자신들이 복을 받지 않고, 자신들이 개나 돼지처럼 여기던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다인들은 화가 났습니다. 조상들이 하느님께 불충해서 복을 받지 못한 것 처럼, 자신들도 믿음이 없고, 하느님께  불충하다는 말로 유다인들에게는 들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화가 잔뜩 났던 것입니다.



 친한 친구에게 “내가 너랑 친해서 하는 말인데, 넌 이것을 좀 고쳤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싫어합니다. 듣기 싫은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것은 옹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예언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표징과 놀라운 일들로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신명 13,2-3).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경한 자로 단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불경한 자를 처벌하는 첫 조치는 핵심 증인이 그 죄인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죄하고 즉시 형에 처하려고 하였습니다.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나자렛의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고향에서의 선교사명이 좌절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좋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더 나아가 죽이려 까지 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입니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 처해지셨을 때조차 그것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의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신앙인들은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구세주이심을 고백한 것처럼, 신앙인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당하게 내 일을 해야 합니다.



3.나눔 및 묵상

① 나자렛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내가 만일 나자렛 사람들 중의 하나 였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까요?



② 상대방이 내 잘못을 꼬집을 때 나는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기분이 나쁘지만 인정을 합니까? 아니면 화를 내며 듣지 않으려 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려 합니까?



③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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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나눔 및 묵상

    ① 나자렛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내가 만일 나자렛 사람들
    중의 하나 였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까요?

    제가 예수님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그 고향 사람들이 했던대로 예수님의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을테니까요.

    ② 상대방이 내 잘못을 꼬집을 때 나는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기분이 나쁘지만 인정을 합니까?
    아니면 화를 내며 듣지 않으려 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려 합니까?

    소위 친하다는 사람들이 더 상처를 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과 친하니까 잘 듣고 고칠 것이라 여기고 저의 말버릇에 대하여 조금 조심해서
    작은 소리로 얘기하라고 충고를 해 주곤 합니다.
    맘속으로는 기분이 언짢지만 겉으로는 기분나쁜 표현을 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곰곰히 되새기며 자신의 나쁜 버릇에 대해 고쳐야겠다고 몇번이고
    다짐을 해 보지만 그때 잠 시 뿐이 되고 맙니다.
    타고난 성격은 잘 고쳐지지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좀더 나아 보였으면 하는 맘으로
    해준 충고라고 여기며 고치려고 노력을 합니다.

    ③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되는 환경요소 들이 가까운 주위에 많이 산재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참으로 난감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유혹과 걸림돌에 힘없이 넘어지지 않으려면, 자나 깨나 주님께
    기도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자주 느낀답니다.
    자신의 주장을 줄이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줘야 하고, 아울러 상대방이
    신앙에 대해 학문적으로 따지고 들거나 하면, 적절한 성서의 귀절을 대며
    조근조근 대답해 주고, 그것이 의견차이로 흘러가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양보도
    해주며 당근과 채찍을 잘 사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극단적으로 흐르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니 스스로가 자제하게 됩니다.

  2. user#0 님의 말:

    3.나눔 및 묵상

    ① 나자렛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내가 만일 나자렛 사람들
    중의 하나 였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까요?

    제가 예수님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그 고향 사람들이 했던대로 예수님의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을테니까요.

    ② 상대방이 내 잘못을 꼬집을 때 나는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기분이 나쁘지만 인정을 합니까?
    아니면 화를 내며 듣지 않으려 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려 합니까?

    소위 친하다는 사람들이 더 상처를 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과 친하니까 잘 듣고 고칠 것이라 여기고 저의 말버릇에 대하여 조금 조심해서
    작은 소리로 얘기하라고 충고를 해 주곤 합니다.
    맘속으로는 기분이 언짢지만 겉으로는 기분나쁜 표현을 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곰곰히 되새기며 자신의 나쁜 버릇에 대해 고쳐야겠다고 몇번이고
    다짐을 해 보지만 그때 잠 시 뿐이 되고 맙니다.
    타고난 성격은 잘 고쳐지지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좀더 나아 보였으면 하는 맘으로
    해준 충고라고 여기며 고치려고 노력을 합니다.

    ③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되는 환경요소 들이 가까운 주위에 많이 산재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참으로 난감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유혹과 걸림돌에 힘없이 넘어지지 않으려면, 자나 깨나 주님께
    기도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자주 느낀답니다.
    자신의 주장을 줄이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줘야 하고, 아울러 상대방이
    신앙에 대해 학문적으로 따지고 들거나 하면, 적절한 성서의 귀절을 대며
    조근조근 대답해 주고, 그것이 의견차이로 흘러가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양보도
    해주며 당근과 채찍을 잘 사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극단적으로 흐르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니 스스로가 자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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