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성인의 의로움

 

요셉 성인의 의로움과 예수님의 탄생

1. 말씀읽기:마태1,18-25



2. 말씀연구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말없이 가정을 이끌어 오셨던 성 요셉,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 앞에서 인간적인 모든 감정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성 요셉. 구원역사 안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행동하셨던 성 요셉. 그분의 삶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한 일은 꼭 자랑하고 싶어 하고,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꼭 이의를 제기하고, 내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으면 불편해 하고, 하기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요셉 성인의 의로움은 내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덕목입니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유다법은 명백히 약혼과 결혼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정식 결혼은 신부를 자기 집에 맞아들이고, 함께 산 때부터 성립되었습니다(신명기 20,7).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 했을 때는 저마다 제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 약혼자는 혼인에 있어서 엄밀한 뜻의 결혼한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➀부정을 저지른 약혼자는 부정을 저지른 아내처럼 돌로 쳐 죽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➁약혼자를 잃은 여자는 과부와 똑같이 여겼다.

➂약혼자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혼장을 써 주어야 했다.

➃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은 적자로 보았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진 것은 간음한 것이고, 간음한 여인들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 유다법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도 적자로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요셉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일단 법대로 회당에 고발하여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도록 했을까요? 만일 내 아내가 될 사람이 그랬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요셉성인이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했는지 이제 드러날 것입니다. 요셉 성인처럼 사랑합시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의로운 사람이란 항상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며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은 지혜롭고 친절하며, 그의 성숙한 인간성이 하느님의 계획과 잘 융화되어 빛을 발합니다. 의인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조사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마리아를 그렇게 용서할 수가 있을까?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의 아이를 가진 상황인데, 내가 그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요셉성인은 성모님을 나자렛의 회당에 고발하든가, 아니면 두 증인을 세우고 이혼장을 써 주고 인연을 끊든가,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에 고발하면 그녀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될 것이고, 또 마리아의 명예가 더럽혀 지는 것은 물론 돌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어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만큼 마리아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성인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요셉이 파혼하겠다는 결심을 하자, 하느님께서 급해지셨나 봅니다. 즉시 개입하십니다. 천사는 그에게 엄숙히 “다윗의 자손 요셉아”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예로운 호칭을 받은 또 하나의 유일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 인간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임을 요셉에게 설명을 하십니다. 요셉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다른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특권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창조적인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그의 본질과 소명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경우 이런 권리는 제한되었습니다. 아이를 낳는 데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름을 지어 줄 권리도 없었습니다. 이름은 이미 주어졌으며,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이름을 부르도록 명령받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뜻은 \”야훼께서 도와주신다.\”, \”야훼께서 구원하신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이름이었으며, 성전의 의식과 제사 재건에 참여한 대사제 예수아의 이름이었습니다. 지혜교사인 엘르아잘의 아들이요 시라의 아들이며 집회서의 저자인 예수도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 구원의 중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포괄적인 구원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할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과 인류가 구원받아야 할 죄의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이사야 예언(이사7,14)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됨을 보여 줍니다. 동정녀라는 말은 처녀성의 관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소녀라는 말이 반드시 처녀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과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 아내의 그 남편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신 분은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남편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요셉은 단순하게 그리고 주저함 없이 그가 들은 대로 행동합니다. 그는 경외심과 존경심에 가득 차서 마리아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이제 모든 사람이 볼 때 결혼한 요셉의 아내가 됩니다.



25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예수 –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 우리는 이 거룩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입에 담고 있으나 그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 곧 구약에서 예언되었듯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내려오신 메시아라는 믿음의 선언이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는 것은 요셉성인이 예수님을 낳고서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바로 요셉의 인간적인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탄생에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사랑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리아는 요셉에게 미안해하면서 살았을 것이고, 요셉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둘 사이에 분명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두 분은 훌륭하게 성가정을 꾸미십니다. 이분들보다 더 어려운 가정이 있었을까요? 하지만 이분들은 훌륭한 성가정을 꾸미셨으니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3.나눔 및 묵상

① 내가 요셉 성인이었다면 나는 성모님을 향하여 어떻게 결심했을까요?



② 성가정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따랐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성가정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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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성인의 의로움에 1개의 응답

  1. 엘리사벳 님의 말:

    아마도 저라면 분개하여 내쫒았을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아무에게나 예수님을 맡기진 않으셨겠지요.
    그만한 그릇이 되는 이를 택하셨을 겁니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었던 저였더라면 결국은 받아들였겠지만
    부족한 지금의 저라면 감히 무엇이 우선인지를 모르기에 내쳤을 겁니다.
    후에 통곡하며 울지라도 그리 했을겁니다.

    가족이 다 영세를 받았다고 우쭐대는 모습이 저희 가정의 모습이 아니길 항시 기도합니다.
    아주 큰 무엇을 하진 못해도 무엇이 아버지를 위한 길인지,
    무엇이 우선인지를 깨달아 삶의 중심에 아버지를 모시고
    매사에 겸손한 자세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겠지요.
    제가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 해도 함께 어우러지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소리가 되듯이,
    가정도 그러하다고 봅니다.
    저를 죽이고 먼저 귀를 열 때 더 넓고, 깊은 곳 까지 볼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저의 존재가 없어지는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은 뒤에 말을 하기 때문에
    더 지혜롭게 끌어나갈 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가운데서 겸손한 자세로 조율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 삶으로 보여줄 때
    가족모두가 한곳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 저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죽인다 해서 뒤에서 말없이 관망하는게 아니라
    아버지의 뜻과 다른 것이면 바른 말은 하는 그런 모습으로 나아가야 겠지요.
    진정한 사랑은 많은 말이 아니라 조용한 침묵이거든요.
    사랑과 미움의 공통점은 침묵이라 생각합니다.
    가슴에서 나오는 사랑은 말을 없게 합니다. 왜냐면 보여지는 것도 아니고
    말로서 전개하는 것도 아닌게 사랑이니까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리고 아주 미운 사람도 더 미운 단계를 지나면 말없이 그냥 바라볼 뿐입니다.
    많은 말을 하면 그가 아니라 저가 상처를 받고 아버지의 맘을 아프게 함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전달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침묵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봅니다.
    누굴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지만 모든 것은 아버지께 맡기고
    그저 말씀속에서 저를 보면서 더 깊고 넓은 저를 만들면서
    하루하루 기쁘고 감사하는 맘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정작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고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드리 나무처럼 그렇게~~~
    주어진 이치에 따라 그늘을 만들기도~~
    때론 큰 아름드리 나무지만 그늘이 들지 않을때도 있듯이~~~ ㅎㅎ^*^

  2. ^*^ 님의 말:

    모든 것을 맡겨 드리고 침묵한다는 것. 예 한다는 것…참 어렵죠.
    큰 나무가 되면 가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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