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사순 제3주간 금요일(3/20)


    말씀의 초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율법 학자는 묻고 있다. 그는 예수님의 답변에 감격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 답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주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일이다(복음).
    복음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만남이든 감동이 있으면 오래 지속됩니다. 작은 감격이라도 주고받으면 만나는 즐거움은 배가됩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동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감동을 주십니다. 평범한 말과 행동으로 감동을 만들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를 칭찬하십니다. 그의 순수함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 역시 큰 감명을 받습니다. 실타래 같은 율법을 그토록 쉽게 해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좋은 만남은 ‘눈을 뜨게’ 해 줍니다. 그러니 늘 자신을 가꾸고 다스려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봄철엔 바람이 많습니다. 바람이 자주 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무는 가지마다 새싹을 틔우려 합니다. 그러려면 그곳까지 물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바람은 가지를 흔들어 이 작업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봄철에는 바람이 많다고 합니다. 신비스러운 자연 현상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선한 감정과 아름다운 느낌에 휩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봄바람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촉촉하게 하라는 그분의 배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율법 학자의 외침 역시 신선한 봄바람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여 이 목숨 다하도록 (시편 63)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3주간 금요일(3/20)


      말씀의 초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율법 학자는 묻고 있다. 그는 예수님의 답변에 감격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 답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주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일이다(복음).
      복음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만남이든 감동이 있으면 오래 지속됩니다. 작은 감격이라도 주고받으면 만나는 즐거움은 배가됩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동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감동을 주십니다. 평범한 말과 행동으로 감동을 만들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를 칭찬하십니다. 그의 순수함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 역시 큰 감명을 받습니다. 실타래 같은 율법을 그토록 쉽게 해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좋은 만남은 ‘눈을 뜨게’ 해 줍니다. 그러니 늘 자신을 가꾸고 다스려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봄철엔 바람이 많습니다. 바람이 자주 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무는 가지마다 새싹을 틔우려 합니다. 그러려면 그곳까지 물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바람은 가지를 흔들어 이 작업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봄철에는 바람이 많다고 합니다. 신비스러운 자연 현상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선한 감정과 아름다운 느낌에 휩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봄바람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촉촉하게 하라는 그분의 배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율법 학자의 외침 역시 신선한 봄바람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여 이 목숨 다하도록 (시편 63)
     
    
    
    

  2. guest 님의 말:


    사순 제3주간 금요일(3/20)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부르짖고 있다. 예언자의 말을 따르는 이는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거절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제1독서).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여 이 목숨 다하도록 (시편 63)
     
    
    
    

  3. guest 님의 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주님!

    요셉축일인 오늘하루
    남편요셉축일이었는데 축하는 제가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즐겁고 기뻤지요 원님덕분에 나팔을 불었지만
    당신을 믿지 않았다면 그 많은 형제자매님들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당신 때문에 당신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축하를 받고 기도를 받게 되니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당신을 믿기만 해도 당신의 자녀라는 이유하나만으로도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따라 당신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다짐도 했지요
    당신의 자녀답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야 한다고
    기본만이라도 지키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더구나...
    아파서 일년동안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던 남편
    요셉과  공부를 하느라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는 딸 바울리나가
    올해는 성당에 미사를 참례하여 기쁩니다
    3년동안 바울리나는 학교근처에  성당이 없어 개신교를
    다녀 마음이 짜~안했었는데 다행히 입학한 학교에 성당이 있어
    주일마다 미사참례를 하여 기쁘다고 합니다
    전례가 조금 다르지만 미사도 라틴어로 하고 유학생을 위한
    미사여서 그런지 경쾌하여 재미가 있다고 합니다
    바울리나도 얼마나 즐거워 하는지 올해에는 모든 근심 사라지고
    당신을 사랑하며 성가정이 될 것 같은 생각에 기쁩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께서 저희가정에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죄만스럽기도 하지요 당신께 해드린 것이 없는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욕심부리지 않으며 오늘복음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생각만으로도 기쁩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욕심부리지 말고 더도 절도 말고 오늘처럼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희생 제물보다 낫도다”

    아멘


    ♬ 주여 이 목숨 다하도록 (시편 63)

  4. guest 님의 말:

    (no content)

  5. guest 님의 말: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확신이 희미해 질 때, 저는
    “나는 어떻게 살아가도록 설계된 존재인가” 에 대해 많이 고심하였습니다.
    그 의미를 알고자 되씹고 또 되뇌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제가 불쌍하셨는지 갸륵하게 보셨는지
    그 분께서는 저에게 “너는 나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날 만드신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셨다는 사실 …
    이런 내가 그 분 보시기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먼저 알아야 가능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참으로 소중한 나” 임을 새삼 실감합니다.

    이런 하느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내가 무었을 도와주랴” 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느낌니다.

    미사가족 여러분!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그 분의 현존을 꼭 기억하면서
    화이팅 입니다.

    ============= <참고서>

    1.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도록 설계된 존재인가?
    1) 인간의 유일성(믿음에 있다.)
    모든 인간은 절대자에 의해 창조되었고 또 그분에 의해 구원되며
    그 거룩한 절대자와 일치하여 영원히 살아갈 운명이라는 사실
    2) 선택의 여지가 없다.(피조물이다)
    남자나 여자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부르심을 인식했거나 못했거나
    모든 인간은 참여해야할 보편적인 사랑(하느님)에로의 부르심을 받았다.
    3) 자기 삶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삶의 결과에 따라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과
    마귀들과 함께 영원히 벌을 받는 지옥으로 나뉜다.

    ※ 하느님은 = 내 존재를 뒷받침해주고 충만케 하는 영원한 실체
    나를 그분과 연결 짓지 않을 때 내 인생은 무의미하게 된다.

    2. 삶(인생)의 목적은?
    1)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낳느뇨?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령하기 위하여 낳느니라.(요리문답 제1조)
    2)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은 깨끗한 영혼이 되어 그분과 영원히 살기 위해
    – 인간은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간 = 사랑 = 진리)
    –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다.(죽음과 부활을 통해 가능해 졌다.) 그분을 믿는 이유이다.
    3) 하느님 닮은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의 비전
    날 지으신 그분께서 “이 뒷날 나를 보시고 날 참 많이 닮았다.” 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삶

  6. guest 님의 말:

     

    가장 큰 계명

    1.말씀읽기: 마르코12,28-34

    가장 큰 계명 (마태 22,34-40 ; 루카 10,25-28)

    2. 말씀연구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할 때야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의 경우는 분명 그렇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가족을  사랑하느냐? 내가 얼마만큼 배우자를 사랑하느냐? 그것은 분명 실천으로 들어날 것입니다.

     또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아까워하지 않고 봉헌을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교무금을 봉헌할 수 있는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물질적인 것은 무척 아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은 나눔과 봉헌 등으로도 드러나게 됩니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어느 것이 첫째 계명이냐고…,이 학자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궁금한 것을 예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성실한 마음과 착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이렇게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세상에는 궁금한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모르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보다 현명한 사람이나 어른을 만났을 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게 됩니다. 많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지만 오늘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자신보다 훌륭하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 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유다교의 계명에는 613개가 있었는데 그중 248개는 명령이고 365개는 금령입니다. 랍비들 사이에서도 어떤 계명이 첫째가는 계명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나이 산에서의 모세의 율법”을 자기네가 받았다는 것을 큰 긍지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율법은 그들의 전체 삶을 규정해 놓은 법으로서 잘 살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짐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어떻게 하면 그 수많은 규정을 일상생활 속에서 잘 준수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인간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늘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는 이 율법학자도 그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그 해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명쾌하게 대답해 주십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 말씀은 신명기 6장4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른이 된 남자 유다인이 매일 아침 외우던 중대한 기도의 시작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척도는 무엇일까요? 하느님 사랑의 척도는 이웃사랑입니다. 내가 이웃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느냐가 내가 얼마만큼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느냐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이웃 사랑의 척도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하느님을 사랑하느냐가 내가 얼마만큼 이웃을 사랑하느냐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서 우리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기쁨이 따라오고 기쁨이 열매 맺으면 평화는 당연히 열매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열매 맺으면 이웃 사랑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 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내가 좋을 때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사랑의 계명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기 싫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더 나아가 용서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기에 결국 이웃을 얼마만큼 사랑하느냐는 내가 하느님을 얼마만큼 사랑하느냐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계명을 말씀해 주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율법학자는 이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여 둘째 계명을 가르치십니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이웃은 친구들, 동료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계십니다.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단정하여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모두가 이웃입니다. 예수님의 이웃 개념 앞에서 나는, 나의 사랑이 얼마나 보편적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런 구별 없이, 종교, 지위, 남녀노소 등을 떠나 모든 이가 이웃입니다. 그들 모두가 우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필요한 경우 용서를 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율법 규정을 십계명으로 환원하셨고, 십계명은 다시 이렇게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환원하셨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결국 사랑의 이중계명,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 나만 생각하는 말들. 배려하지 못하는 작은 행동들. 이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가까이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에게는 체면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가족 앞에서는 체면이나 예의를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위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율법학자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었습니다. 그는 마음으로부터 감탄하며 예수님께 존경을 드립니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나 또한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말이 옳다면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모습. 무조건 자기만 옳다고 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이 율법학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또한 진리를 향해서 이렇게 목말라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매달려보고, 고민해보고, 안되면 물어보고…,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율법학자는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의식보다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른 율법학자들은 매일 하느님께 두 마리의 양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는 그를 칭찬하십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었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참으로 큰 축복의 말씀입니다. 나 또한 이런 칭찬의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을 꼭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이런 저런 이유로 예수님께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감히 예수님께 묻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묻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교만과 허영심을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을 떠보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질문, 부활에 대한 질문, 그리고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질문. 이것에 대한 답을 들은 군중들은 예수님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신 율법교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고민하고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물었다면 시원한 답을 얻으셨는지요.


    ② 예수님께서는 슬기로운 율법학자에게 축복을 내리십니다.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참으로 듣기 좋은 말씀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과연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습니까? 아니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까? 하느님 나라로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