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4/4)


    말씀의 초대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다. 카야파 대사제는 ‘한 사람의 죽음이 민족 전체의 멸망보다는 낫다.’는 논리를 편다. 그의 발언은 예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제가 될 것을 알린 것이다. 모든 일은 주님의 섭리였다(복음).
    복음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5-56 그때에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에 나오는 ‘최고 의회’는 유다인들의 ‘산헤드린’을 번역한 말입니다. 모세는 광야 생활을 하면서 협조자들을 뽑았습니다. 열두 지파에서 70명가량을 선별한 뒤 자신을 돕게 했습니다. 이 조직이 훗날의 산헤드린으로 발전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제들과 율법 학자와 지방 유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산헤드린’을 인정했고, 종교 문제에 관해서는 그들의 판단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서서히 로마의 비위를 맞추는 조직으로 바뀐 이유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이곳의 결정으로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와 바오로 사도 역시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로마와의 충돌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키면 로마의 개입이 시작되고, 그러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직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활동을 불순하게 보았고, 민중을 선동하는 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카야파 대사제는 ‘민족의 멸망보다는 한 사람의 죽음이 더 낫다.’는 논리를 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모습이 여전히 ‘민중의 선동자’입니다. 고정 관념을 바꾸지 않았던 것이지요.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선입관을 극복해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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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5주간 토요일(4/4)


      말씀의 초대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다. 카야파 대사제는 ‘한 사람의 죽음이 민족 전체의 멸망보다는 낫다.’는 논리를 편다. 그의 발언은 예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제가 될 것을 알린 것이다. 모든 일은 주님의 섭리였다(복음).
      복음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5-56 그때에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에 나오는 ‘최고 의회’는 유다인들의 ‘산헤드린’을 번역한 말입니다. 모세는 광야 생활을 하면서 협조자들을 뽑았습니다. 열두 지파에서 70명가량을 선별한 뒤 자신을 돕게 했습니다. 이 조직이 훗날의 산헤드린으로 발전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제들과 율법 학자와 지방 유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산헤드린’을 인정했고, 종교 문제에 관해서는 그들의 판단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서서히 로마의 비위를 맞추는 조직으로 바뀐 이유입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이곳의 결정으로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와 바오로 사도 역시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로마와의 충돌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키면 로마의 개입이 시작되고, 그러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직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활동을 불순하게 보았고, 민중을 선동하는 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카야파 대사제는 ‘민족의 멸망보다는 한 사람의 죽음이 더 낫다.’는 논리를 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모습이 여전히 ‘민중의 선동자’입니다. 고정 관념을 바꾸지 않았던 것이지요.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선입관을 극복해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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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사순 제5주간 토요일(4/4)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백성을 다그친다. 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주님께서는 흩어졌던 이스라엘을 모아 주시고 다시는 갈라지지 않게 하실 것이다. 우상 숭배에 빠지지 말 것을 강하게 당부하고 있다(제1독서).
      제1독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리라.>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21ㄷ-2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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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답답함을 느낍니다
    복음묵상을 몇 년동안 했어도 아직도 어렵고 묵상을 할 때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저의 세속적인 욕심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되니 어느 때는 복음묵상을 하는 것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같이 무거울 때도 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고 어려울 때가 많으니
    특히 오늘복음말씀은 다른 어느 때보다 힘이 듭니다
    묵상으로만 끝나면 좋겠지만 행동으로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 같아 무겁습니다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느 때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요
    당신께 지키지 못할 헛 약속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또한 죄스럽기도 합니다
    복잡한 저의 이런 마음이 신앙이 부족해서 라는 사실이....
    세속의 욕심과 교만으로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

    말씀을 성찰하며
    얼마남지 않은 사순시기를 잘보내야겠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저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당신의 고통에 동참하며
    교만과 아집과 세속의 욕심으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저의 이기심을 반성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순시기를 보내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인으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

    묵상하며


    ♬ 쓴잔

  4. user#0 님의 말: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답답함을 느낍니다
    복음묵상을 몇 년동안 했어도 아직도 어렵고 묵상을 할 때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저의 세속적인 욕심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되니 어느 때는 복음묵상을 하는 것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같이 무거울 때도 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고 어려울 때가 많으니
    특히 오늘복음말씀은 다른 어느 때보다 힘이 듭니다
    묵상으로만 끝나면 좋겠지만 행동으로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 같아 무겁습니다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느 때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요
    당신께 지키지 못할 헛 약속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또한 죄스럽기도 합니다
    복잡한 저의 이런 마음이 신앙이 부족해서 라는 사실이....
    세속의 욕심과 교만으로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

    말씀을 성찰하며
    얼마남지 않은 사순시기를 잘보내야겠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저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당신의 고통에 동참하며
    교만과 아집과 세속의 욕심으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저의 이기심을 반성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순시기를 보내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인으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

    묵상하며


    ♬ 쓴잔

  5. guest 님의 말:

     

    라자로를 살리시는 모습을 본 유다인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반면 바리시아들은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라고 하면서 계책을 마련합니다.

    ㅎㅎ 그냥 믿으면 될걸~~~~

    참 바보지요. 표징까지 보여주시는데 믿지를 못하니~~

    도대체 어떤 메시아를 바라는 것인지~~

    그들의 틀에 맞는~ 그들이 원하는 색에 맞는 메시아가 과연 있을수 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경우에든 그들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결국은 아무도 받아들일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기도 합니다.

    또 그들의 속을 다 아실 예수님의 마음은 또 어떠셨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답니다.

    그들중 한사람인 카야파 대사제는 말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라고~~

    카야파 대사제가 이렇게 말하지만, 말한 의도와는 달리 실현되지요.

    돌아가시어 부활하심을~~~

    그 한사람!

    예수님께서 돌아가심은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어 부활하심인데~~

    그들은 표징을 보고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두려움에 결국 죽이려 합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

    저역시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인정보다는 다른 무엇을 위해 그를 제거하려 술책을 꾸민적은 없는지~~

    인정을 하고 그를 받아들이는게 제가 작아짐이 아닌데~

    그치요?

    살아가면서 저를 내어놓고 상대를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큰 울타리를 먼저 생각한다면

    누구든 잘함은 인정할 수 있고

    받아들이면서 저 자신도 더 커짐을 압니다.

    그런 삶으로 나아갈 때 하루하루 기쁨이 더 충만하고

    그런 기쁨이 행복으로 그 행복이 사랑의 꽃을 피우게 함을 이젠 압니다.

    그럴때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귀가 아플정도로 수다를 떨 수 있지요.

    어렸을 적 아무 때나 아버지의 등에 엎혀

    끊임없이 수다를 떨다가 곤히 잠에 빠지는 포근함이 제 생활의 일부가 됨을 압니다.

    힘들게 땋아준 갈래머리를 풀어서 라면머리라면서 팬티만 입고

    온 방안을 뛰어다니며 웃음을 주는 철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면

    더 깊이 아버지의 맘을 헤아리는 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는 표징이 아니라 느낌으로~~

    아버지와 함께 호흡하면서 숨소리로~~ ㅎㅎ

    아무리 부족한 딸이지만 아버지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는 알거든요.

    기쁘실 때~ 맘아프실 때~ 다 다르거든요.

    숨소리도 발자국 소리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깊이 다짐합니다.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자식의 기본을 잃지 않으며 사랑을 나눌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모습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합니다.

    많은 표징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어쩌면 좋겠냐고 계책을 마련하는 사람들!

    그냥 믿으면 될 것을 ~~

    결국은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은 아닌지요.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 눈먼이가 되어

    결국 자신의 목을 감은 줄을 당기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돌아가심은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카야파 대사제 처럼 냉혹한 현실주의자가 아닌

    현명하고 순진한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고백하게 하소서.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 앞에선 아무것도 두려울게 없는 철없는 딸로 서게 하소서.

    아멘.

  6. user#0 님의 말:

     

    라자로를 살리시는 모습을 본 유다인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반면 바리시아들은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라고 하면서 계책을 마련합니다.

    ㅎㅎ 그냥 믿으면 될걸~~~~

    참 바보지요. 표징까지 보여주시는데 믿지를 못하니~~

    도대체 어떤 메시아를 바라는 것인지~~

    그들의 틀에 맞는~ 그들이 원하는 색에 맞는 메시아가 과연 있을수 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경우에든 그들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결국은 아무도 받아들일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기도 합니다.

    또 그들의 속을 다 아실 예수님의 마음은 또 어떠셨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답니다.

    그들중 한사람인 카야파 대사제는 말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라고~~

    카야파 대사제가 이렇게 말하지만, 말한 의도와는 달리 실현되지요.

    돌아가시어 부활하심을~~~

    그 한사람!

    예수님께서 돌아가심은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어 부활하심인데~~

    그들은 표징을 보고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두려움에 결국 죽이려 합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

    저역시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인정보다는 다른 무엇을 위해 그를 제거하려 술책을 꾸민적은 없는지~~

    인정을 하고 그를 받아들이는게 제가 작아짐이 아닌데~

    그치요?

    살아가면서 저를 내어놓고 상대를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큰 울타리를 먼저 생각한다면

    누구든 잘함은 인정할 수 있고

    받아들이면서 저 자신도 더 커짐을 압니다.

    그런 삶으로 나아갈 때 하루하루 기쁨이 더 충만하고

    그런 기쁨이 행복으로 그 행복이 사랑의 꽃을 피우게 함을 이젠 압니다.

    그럴때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귀가 아플정도로 수다를 떨 수 있지요.

    어렸을 적 아무 때나 아버지의 등에 엎혀

    끊임없이 수다를 떨다가 곤히 잠에 빠지는 포근함이 제 생활의 일부가 됨을 압니다.

    힘들게 땋아준 갈래머리를 풀어서 라면머리라면서 팬티만 입고

    온 방안을 뛰어다니며 웃음을 주는 철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면

    더 깊이 아버지의 맘을 헤아리는 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는 표징이 아니라 느낌으로~~

    아버지와 함께 호흡하면서 숨소리로~~ ㅎㅎ

    아무리 부족한 딸이지만 아버지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는 알거든요.

    기쁘실 때~ 맘아프실 때~ 다 다르거든요.

    숨소리도 발자국 소리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깊이 다짐합니다.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자식의 기본을 잃지 않으며 사랑을 나눌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모습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합니다.

    많은 표징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어쩌면 좋겠냐고 계책을 마련하는 사람들!

    그냥 믿으면 될 것을 ~~

    결국은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은 아닌지요.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 눈먼이가 되어

    결국 자신의 목을 감은 줄을 당기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돌아가심은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카야파 대사제 처럼 냉혹한 현실주의자가 아닌

    현명하고 순진한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고백하게 하소서.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 앞에선 아무것도 두려울게 없는 철없는 딸로 서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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