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성주간 수요일(4/7)


    말씀의 초대
    유다 이스카리옷은 사제들에게 스승님을 넘겨주겠다고 한다.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약속한다.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제자의 배반을 예언하신다. 놀란 제자들은 “저는 아니겠지요?”를 되풀이한다. 유다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는 스승을 넘기는 대가로 ‘은전 서른 닢’을 받습니다. 그러고는 기회를 엿봅니다. 예수님의 암시에도 그는 시치미를 뗍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유다의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본마음을 감추고 겉모습만을 포장한 그의 ‘두 얼굴’입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가슴 아픈 지적을 하십니다. 이중적인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인생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일면성을 지니도록 애써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밝은 모습이면 자신에게도 떳떳한 모습입니다. 유다는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힘과 기적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저항 없이 죽음의 길을 가려 하십니다. 유다는 주사위를 던진 겁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인지 자신에게 도박을 걸었던 것입니다. 유다의 선택은 결국 비극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개인 집단’을 위해 주님의 능력을 모시려 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근시안적인 민족주의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을 위해 오신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다와 다를 바 없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Misa Criolla - Ky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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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주간 수요일(4/7)


      말씀의 초대
      유다 이스카리옷은 사제들에게 스승님을 넘겨주겠다고 한다.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약속한다.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제자의 배반을 예언하신다. 놀란 제자들은 “저는 아니겠지요?”를 되풀이한다. 유다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는 스승을 넘기는 대가로 ‘은전 서른 닢’을 받습니다. 그러고는 기회를 엿봅니다. 예수님의 암시에도 그는 시치미를 뗍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유다의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본마음을 감추고 겉모습만을 포장한 그의 ‘두 얼굴’입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가슴 아픈 지적을 하십니다. 이중적인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인생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일면성을 지니도록 애써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밝은 모습이면 자신에게도 떳떳한 모습입니다. 유다는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힘과 기적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저항 없이 죽음의 길을 가려 하십니다. 유다는 주사위를 던진 겁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인지 자신에게 도박을 걸었던 것입니다. 유다의 선택은 결국 비극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개인 집단’을 위해 주님의 능력을 모시려 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근시안적인 민족주의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을 위해 오신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다와 다를 바 없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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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주간 수요일(4/7)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시고 귀를 열어 주신다. 그러니 어찌 그분을 거역하며 물러설 수 있으랴. 매질하는 자에게 등을 맡기고 모욕하는 자에게 얼굴을 내밀어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편이 되어 주실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9ㄴ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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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주님!
    성주간인 요즈음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느라 정신이 없다면 좋을텐데
    세속의 이런 저런 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며칠만 기다리면 당신께서 부활 하실 것이라는 희망도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분주하게 지내고 있지요
    그래도 성주간만큼은 잘 보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마음과 뜻대로 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며칠 전...
    정말  아주 정말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친구가 자다가 갑자기 당신의 곁으로...
    놀라서 가슴이 뛰고 안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도 믿어지지가 않네요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친구처럼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아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래도 만약에 갑자기 떠나게 된다면?
    가장 먼저 딸아이가 생각이 나네요
    남편과 아들녀석은 제 곁에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공부하는 딸아이는 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들녀석도 아직은 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럼 남편은? 제가 없으면 잘 살을까?
    그러고보니 아들과 딸보다 제가 필요함을 느낍니다
    평생 철 안드는 막내 아들같은 남편
    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어 다행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말씀이 저의  모습임을 느낍니다
    언제나 제 멋대로 제 의지대로 살면서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꼿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며
    온갖 핑계를 대며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 영악한 저의 모습이
    보이는 것같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회개하기 보다는 핑계를 대느라 급급한 
    정직하지 못한 저의 모습이 오늘따라 밉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예! 저는 아닙니다 
     어떻게  감히 당신을 배반할수 있겠습니까?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예! 주님!
    저는 아닙니다

    아휴! 모르겠습니다 주님!
    살다보니 이렇게 당신을 배반하는 수도 있네요
    저좀 잘 봐 주세요 주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주님!
    지난 것은 모두 용서해주시고 잘 하겠습니다 주님!
    저 좀 잘 봐 주세요 주님!
    아직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지요? 주님!
    그래도 미워도 다시한번  용서해주세요 주님!
    졸려서 자야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묵상

  4. guest 님의 말:

     

    은전 서른닢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유다!

    노예 한사람의 목숨값이라는데~~

    어찌~~~

    그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저의 내면에 혹시 유다의 그런 간교한 배신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유다에게 사랑을 주셨고

    알고 계심에도 예고만 하실뿐 그를 지칭하지도

    그를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만찬을 함께 하면서 제자들에게 예고하시자 한결같이 얘기하지요.

    “주님,저는 아니겠지요?”

    성경 한편에 적혀있는 짧은 글이 참 와닿습니다.

    “그건 니말이다.” ㅎㅎㅎ

    그들의 말이 제 말일수도 있겠지요.

    유다 역시 그렇게 묻습니다.

    간교한 자!

    그런데도 단정지어 말씀하시지 않는 아버지!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로 합류할때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분명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텐데~~본인의 욕심이 들어간 것일까요?

    공동체에서 봉사를 하면서 저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 사리사욕이 들어가 공동체를 좀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욕심이 앞서 볼것을 보지 못하는 저는 아닌지~

    한 울타리안에서 저와 맞지 않는다고 그의 등을 치려하진 않는지~~

    봉사를 하면서 저의 단점이 들키자 그를 제거하려 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늘 아버지를 고백하고 두손 모으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배신의 기운이 있진 않았는지

    다잡아 보는 시간입니다.

    하고 후회할 일이라면 않는게 상책이겠지요.

    눈앞의 유혹에 수갑채워져 뒤늦게 후회한다면 이미 많은 것을 놓친뒤겠지요.

    바른 일이 아님에도 제 욕심을 위한것이라면 바로 유다가 되는 것을 압니다.

    분명 아버지께서는 특정 누군가를 위해서 오심이 아닌데~~

    만약 그리 생각한다면 유다와 똑 같은 저이겠지요?

    겉과 속이 똑같은 저가 되려 새삼 다짐해 봅니다.

    근데요~ 그걸 이용하는 사람도 있어요. ㅎㅎ

    영과 육의 두 나라에서 한결같은 저가 될꺼네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제자들중 누군가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러자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묻습니다.

    유다마저도~~

    그 모습을 보시고서 아버지께서는 어떤 심정이셨을까요?

    삶을 살아가면서 늘 누군가를 험담하고 깍아내리면서 당사자 앞에서는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웃으면서 다가갑니다.

    완전 겉과 속이 다른 그런 모습으로~~

    그 모습을 볼 때면 한 대 패고 싶은데, 아버지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할 뿐인데~~

    무엇을 위한 침묵인지~~누구를 위한 침묵이든 중요한 것은 사랑때문임을 압니다.

    늘 배신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기적 욕심이 있다면 비우게 하시어

    유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울며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지를 품고 사는 이 작은 가슴에

    더러운 얼룩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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