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하지만 그들은 못 알아본다. 스승님께서는 돌아가셨다고 체념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을 해석하시며 음식을 나누셨다.
애정을 드러내신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눈이 열려 스승님을 알아본다(복음).
복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안식일 다음 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키위’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토종 새’입니다.
덩치는 꿩과 비슷하며 긴 부리를 갖고 있습니다.
키위라는 이름은 ‘원주민’ 말로 수컷의 울음소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200년 전만 해도 500만 마리가 넘었는데 지금은 8만여 마리로 줄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지폐에도 등장했던 키위 새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멸종 위기의 원인은 단순했습니다.
고통과 역경이 ‘없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먹이가 풍족하다 보니 서로 다툴 일이 없어졌습니다.
천적도 없기에 도망칠 일도 없어졌습니다.
세월이 지나자 서서히 ‘날개와 눈’이 퇴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몸의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풍요와 평화’는 안락사의 시작임이 입증된 예입니다.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두 사람이 시골로 내려가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실망을 느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수난과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스승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데에다 스승님을 죽인 예루살렘이 싫어서 떠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겪고’ ‘죽음을 수용하는’ 그리스도를 설명해 주십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눈을 뜹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부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고통을 피하려 들면 누구나 ‘키위’ 새가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하지만 그들은 못 알아본다. 스승님께서는 돌아가셨다고 체념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을 해석하시며 음식을 나누셨다.
애정을 드러내신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눈이 열려 스승님을 알아본다(복음).
복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안식일 다음 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키위’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토종 새’입니다.
덩치는 꿩과 비슷하며 긴 부리를 갖고 있습니다.
키위라는 이름은 ‘원주민’ 말로 수컷의 울음소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200년 전만 해도 500만 마리가 넘었는데 지금은 8만여 마리로 줄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지폐에도 등장했던 키위 새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멸종 위기의 원인은 단순했습니다.
고통과 역경이 ‘없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먹이가 풍족하다 보니 서로 다툴 일이 없어졌습니다.
천적도 없기에 도망칠 일도 없어졌습니다.
세월이 지나자 서서히 ‘날개와 눈’이 퇴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몸의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풍요와 평화’는 안락사의 시작임이 입증된 예입니다.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두 사람이 시골로 내려가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실망을 느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수난과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스승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데에다 스승님을 죽인 예루살렘이 싫어서 떠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겪고’ ‘죽음을 수용하는’ 그리스도를 설명해 주십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눈을 뜹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부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고통을 피하려 들면 누구나 ‘키위’ 새가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베드로 사도는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한 사람을 낫게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베푼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주셨고, 그들과 함께하셨다.
병이 나은 불구자는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사람들 역시 경탄하고 있다(제1독서).
제1독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10
그 무렵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온 백성은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요 며칠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십 여년동안 친목회를 했던 친구가 잠을 자다 당신 곁으로 간 마음아픈 일도 있었구요 몇몇 교우들의 자녀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놀랬구요 그래도 다행은요? 경미한 사고라 많이 다치지 않아 감사했지요 그리고.... 부활계란을 만드느라 조금은 수선을 피고 ... 성주간동안 바쁘게 지내느라 정신이 없었구요 당신께서 부활하신 날에는 서로서로 수고했다고 신부님께서 격려해주시고 잔치를 하여 기쁘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참 한가지 빠졌네요 주님! 이달 한달동안 저희구역이 인사나누기라 쬐끔 바쁘지요 차 봉사도 해야하구요 주보도 나누어 드리고 독서와 봉헌까지... 날라리신자인 저 같은 사람이 독서를 하게되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사실 제대에 올라가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 양심이 찔립니다 거룩하신 당신의 말씀을 감히 저 같은 사람이 한다는 것이... 그래도 용기를 내어봅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예쁘게 봐 주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말씀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미련한 헬레나지만 당신께서 지혜를 주시어 당신을 알아 뵐수 있도록 은총을 주실 것이라고.. 비록 아직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헤매고있는 미욱한 헬레나지만 언젠가는 저에게 지혜가 생겨 당신을 알아 뵐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떠나신 후에 후회하는 어리석은 헬레나가 아닌 제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당신임을 깨닫게 하소서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4/15)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하지만 그들은 못 알아본다. 스승님께서는 돌아가셨다고 체념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을 해석하시며 음식을 나누셨다. 애정을 드러내신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눈이 열려 스승님을 알아본다(복음).
복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안식일 다음 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키위’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토종 새’입니다. 덩치는 꿩과 비슷하며 긴 부리를 갖고 있습니다. 키위라는 이름은 ‘원주민’ 말로 수컷의 울음소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200년 전만 해도 500만 마리가 넘었는데 지금은 8만여 마리로 줄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지폐에도 등장했던 키위 새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멸종 위기의 원인은 단순했습니다. 고통과 역경이 ‘없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먹이가 풍족하다 보니 서로 다툴 일이 없어졌습니다. 천적도 없기에 도망칠 일도 없어졌습니다. 세월이 지나자 서서히 ‘날개와 눈’이 퇴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몸의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풍요와 평화’는 안락사의 시작임이 입증된 예입니다.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두 사람이 시골로 내려가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실망을 느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수난과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스승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데에다 스승님을 죽인 예루살렘이 싫어서 떠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겪고’ ‘죽음을 수용하는’ 그리스도를 설명해 주십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눈을 뜹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부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고통을 피하려 들면 누구나 ‘키위’ 새가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한 사람을 낫게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베푼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주셨고, 그들과 함께하셨다. 병이 나은 불구자는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사람들 역시 경탄하고 있다(제1독서).
제1독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10 그 무렵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온 백성은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부활의 기쁨을 안고서 나름 기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촛불을 밝히고 인사를 드릴 때면 하루를 주심에 대한 감사를 드리지요.
그리고 저녁이면 오늘 하루를 채워주신 은총에 또 감사를 드립니다.
늘 아버지의 사랑에 젖어 삽니다.
저 혼자 내버려 두실 아버지가 아니시지요.
그러기에 보고서도 믿지를 못하고 실망하여 길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아버지의 부활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했기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의 뒷모습이 저의 모습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물론 돌아가심에 실망이 커서 그럴수도 있지요.
저또한 부활을 믿으면서 아버지를 기다리기보단 먼저 회피하려 했을겁니다.
기쁨에 젖어 산다면서~
부활의 기쁨에 함께 동참하면서
그 기쁨을 전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허긴, 전 진짜 기쁜데
옆에 있는 이들은 본인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다 형식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맞나요? 아버지?
그건 아닌것 같은데~~ 그치요?
가슴으로 넘치는 그 기쁨을 어떻게 보여줘야 그들이 믿을까요?
맘이 있어야 가능하겠지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늘 저와 함께 하여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말씀이 되시어 힘과 지혜를 주시고, 삶의 동반자로 함께 걸어 주십니다.
그리고 성찬례를 통하여 지친 제게 부족한 사랑을 채워 주시는 아버지!
혹여 걷다가 넘어져 옷을 버리면 깨끗하게 빠는 방법까지 알려 주시지요.
외로이 절 혼자 두시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에 전 하루하루를 대충 살아갈 수가 없답니다.
아버지때문에~~
다 알면서도 믿지를 못하고 길을 떠나는 제자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 아니길 ~~
제가 진정 가슴으로 사랑한다면
어떤곳에서든 아버지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저가 되어야 겠지요.
늘 듣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는 저가 아니길 바라면서 늘 깨어 있으렵니다.
길을 가는 도중 함께 합류하신 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지 못한
그런 어리석음은 없어야 겠다고 나름 다짐해 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 어떤 모습으로
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인지~~
아니면 형식적인 다가감인지~~
먼길을 걸어왔지만 길을 잘못들어 후회하며 주저앉는
그런 어리석은 이가 저가 아니길 바라면서
가슴으로 대화하는 아버지와 딸이 되려 노력할겁니다.
늘 풋풋한 사랑이 넘치는 그런 부녀!
그리하여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웃음으로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면서
모든 것이 덤임을 잊지 않은 채 깨어 있으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보고서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길을 떠나는 두 제자에게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지금까지의 일을 쭉 말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아, 어리석은 자들아!” 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요?
“어리석은 엘리사벳아!” 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보고도 믿지 못하고 다른 맘을 먹는 그들이 바로 저가 아닌지요.
늘 아버지를 사랑한다 고백하면서 진정 그런 것이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의 부활을 지내면서 그 기쁨을 가슴으로 전하고 있는지~~
저만 혼자 기뻐하면서 좋아한다면 그또한 바른 모습이 아님을 반성해 봅니다.
누가 뭐라든 아버지를 사랑함에 넘치는 힘과 지혜로 바로 서게 하소서.
누가 제게 돌을 던진다 하더라도
살짝 고개 돌리는 지혜를 주시어 아버지를 사랑함에 다 안을수 있게 하소서.
말씀에 저를 비추고 성찬례에 참례하여
더 깊고 넓은 저가 되어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면서
기쁜 맘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주님!
요 며칠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십 여년동안 친목회를 했던 친구가 잠을 자다 당신 곁으로
간 마음아픈 일도 있었구요
몇몇 교우들의 자녀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놀랬구요
그래도 다행은요? 경미한 사고라 많이 다치지 않아 감사했지요
그리고....
부활계란을 만드느라 조금은 수선을 피고 ...
성주간동안 바쁘게 지내느라 정신이 없었구요
당신께서 부활하신 날에는 서로서로 수고했다고 신부님께서
격려해주시고 잔치를 하여 기쁘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참 한가지 빠졌네요 주님!
이달 한달동안 저희구역이 인사나누기라 쬐끔 바쁘지요
차 봉사도 해야하구요 주보도 나누어 드리고 독서와 봉헌까지...
날라리신자인 저 같은 사람이 독서를 하게되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사실 제대에 올라가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 양심이 찔립니다
거룩하신 당신의 말씀을 감히 저 같은 사람이 한다는 것이...
그래도 용기를 내어봅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예쁘게
봐 주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말씀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미련한 헬레나지만 당신께서 지혜를 주시어 당신을 알아 뵐수
있도록 은총을 주실 것이라고..
비록 아직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헤매고있는 미욱한
헬레나지만 언젠가는 저에게 지혜가 생겨 당신을 알아 뵐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떠나신 후에 후회하는 어리석은 헬레나가 아닌
제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당신임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묵상하며
♬ Christ is risen Allelu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