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세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느 나라에서나 세금은 당연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로마 화폐로 내야 했다.
민족 감정을 이용해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슬기롭게 답하신다(복음).
복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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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화요일(6/2)
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세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느 나라에서나 세금은 당연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로마 화폐로 내야 했다. 민족 감정을 이용해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슬기롭게 답하신다(복음).
복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로마 시대의 화폐는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새로운 황제는 화폐에다 얼굴을 새기고 좋은 말을 삽입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숭배하게 한 것이지요. 어떤 황제는 자신을 ‘신’이라고 선전하는 문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폐의 초상과 글자가 누구 것인지 물으십니다. “황제의 것입니다.” 질문자들은 서슴없이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즉시 답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복음의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황제의 것도 주님께서 주셨기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마음의 주인은 언제라도 ‘주님’이신 까닭입니다. 황제의 것은 세상의 것을 상징합니다. 쉽게 눈에 띄고 화려하게 보입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이 달려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과는 포장이 다릅니다. 세상일에 기쁨과 적극성으로 다가간다면 ‘교회 일’에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에 충실하면 ‘세상일’에도 충실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기운도 넘볼 수 없는 ‘하늘의 에너지’를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6/2)
말씀의 초대
의로운 사람 토빗에게 시련이 닥쳤다. 실수로 눈이 먼 것이다. 사람들은 애석해하면서도 의아하게 생각한다. 오랫동안 자선을 베풀었음에도 불행이 닥쳤기 때문이다. 아내는 드러내 놓고 불평한다. 그녀는 주님의 섭리를 모르고 있다(제1독서).
제1독서
<나는 시력을 잃은 채 지냈다.> ☞ 토빗기의 말씀입니다. 2,9-14 오순절 밤 나 토빗은 죽은 이들을 묻어 준 다음, 몸을 씻고 내 집 마당에 들어가 담 옆에서 잠을 잤는데, 무더워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내 머리 위 담에 참새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하였다. 그때에 뜨거운 참새 똥이 내 두 눈에 떨어지더니 하얀 막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려고 여러 의사에게 가 보았지만, 그들이 약을 바르면 바를수록 그 하얀 막 때문에 눈이 더 멀어졌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아주 멀어 버렸다. 나는 네 해 동안 시력을 잃은 채 지냈다. 내 친척들이 모두 나 때문에 슬퍼하고, 아키카르는 엘리마이스로 갈 때까지 나를 두 해 동안 돌보아 주었다. 그때에 내 아내 안나는 여자들이 하는 일에 품을 팔았다. 아내가 물건을 만들어 주인들에게 보내면 주인들이 품삯을 주곤 하였다. 디스트로스 달 초이렛날에 아내는 자기가 짜던 옷감을 잘라서 주인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품삯을 다 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쓰라고 어린 염소 한 마리도 주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아내가 들어올 때에 그 어린 염소가 울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가 아내를 불러 말하였다. “그 어린 염소는 어디서 난 거요? 혹시 훔친 것 아니오? 주인들한테 돌려주시오. 우리에게는 훔친 것을 먹을 권리가 없소.” 아내가 나에게 “이것은 품삯 외에 선물로 받은 것이에요.” 하고 말하였지만, 나는 아내를 믿지 못하여 그 어린 염소를 주인들에게 돌려주라고 다시 말하면서, 그 일로 아내에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아버지!
주어진 삶에 순명하는 자세가 가장 아름다움을 알지만 쉽진 않나 봅니다.
흐르는 물에 몸을 적시는 것이 바르다 하지만
흙탕물이면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것도 순명하지 않는 모습일까요?
의무의 순명!
사랑의 순명!
어떤 것이 바람직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율법을 지킨다는 그들이~ 똑똑하다는 그들이~
아버지께 순명하면서 일을 처리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럼 멋진 카이사르의 입지를 더 살렸을텐데~~
오늘 말씀에서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올가미를 쒸우려고 찾아옵니다.
그들의 양면성에 저의 모습을 비추어 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진 않았는지요.
단 맞지 않는다고~~ 같은 색의 옷을 입지 않느다 하여서~
그리고선 저와 맞는 사람에게로만 향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그 모든 행위는 그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겠지요.
예수님이 그렇게도 두려웠나 봅니다.
얼마나 자신이 없고 두려웠으면 그렇게 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저보다 더 나으면 올가미를 쒸우려 온갖 궁리를 하면서
정작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식어가지 않았는지요.
누가 우선인지를 모르고 헤매는 모습으로 허덕대진 않았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정말 지혜롭게 통쾌한 답을 하십니다.
올가미에 걸리지 않으면서 지혜로운 답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전 기쁨과 의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세금을 내지만 어떻게 하면 덜낼까를 고민한답니다.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적게 내려 고민하고 머리를 짭니다.
과연 기쁨이 있었다면 제가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드리는 사랑은 그런 계산이 서질 않습니다.
도리어 적게 드림에 몸이 작아질 뿐이지요.
오로지 아버지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이 있었기에 그러함을 압니다.
세상의 모습에서 나름대로 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아버지의 권능을 알지 못한 이들의 무리중에 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기도 합니다.
카이사르가 신이라 자칭해도 내면의 흐름까진 강요할 수는 없음이지요.
오로지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는 저에게 보여지는 것들이라 하여도
아버지를 거스를순 없음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제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확고한 사랑이 심어져 있지 않다면
세상의 올가미에 휩싸여 그것을 탈출하려고 결국 아버지를 저버릴 수 있음을 압니다.
제가 내는 세금이 국민으로서의 기본을 행하는 것이기에
거스를 수 없는 형식과 의무가 들어가있는 어두움이라 한다면
아버지께 드리는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모든 것은 너무나 기쁘고~
더 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기쁨만이 있습니다.
의무가 아닌 사랑이기에 그러함을 압니다.
의무와 사랑을 거스르지 않되 본질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야 함을 압니다.
돈은 황제의 것이지만 백성은 아버지의 사랑물인 것처럼~~
보여지는 포장지는 멋지더라도 내용물이 머금은 것이 보잘것없은 것이라면
얼마나 더 서글픈 일일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 또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감에 보여지는 모습보다
내면을 충실히 채우기 위해
하루하루 말씀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며,
그리하여 예수님의 단호함으로 세상과 맞서며 아버지를 사랑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바리사이와 헤로데가 예수님께 올가미를 쒸우려 찾아옵니다.
무엇에 충실한 모습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 저의 모습도 돌이켜 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고 단호하게 통쾌하게 한방 먹이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정말 멋진 사람을 앉히려 올가미를 쒸우려 하진 않았는지요.
삶을 살아가면서 아버지께 받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제게 하시는 말씀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임을 알면서도 세상의 색을 입고
본질의 색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늘 사랑한다 고백은 하였지만 현재의 의무엔 충실하면서
아버지껜 어떠한 핑계를 들어 소홀함을 합리화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아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은 단호함으로 서게 하소서.
현실에 발을 두고 마음은 아버지를 향한 발걸음에
기쁨과 환희가 있음을 가슴깊이 깨닫게 하시어
늘 아버지께 드려할 사랑이 의무가 아니 기쁨이 되게 하소서.
받았음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 당연히 드려야 함을 알게 하시어
사랑의 수를 놓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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