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6/3)


    가를로 르왕가와 그의 동료들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순교 성인들이다. 이곳에는 19세기 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왕궁의 시종으로 일하던 르왕가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왕조가 들어서자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했다. 끝까지 굴하지 않던 그는 1886년 6월 3일 동료 18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이들은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엉뚱한 질문을 한다.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혼인한 뒤에 죽었다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무례함을 받아 주시며 성경을 인용해 답변하신다(복음).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살다가 죽었다면 부활의 날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지 물은 것입니다. 황당하고 무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받아 주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온화함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종말 이후의 삶을 언급하십니다. ‘다시 살아날 때’에는 혼인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가르침입니다. 하늘의 천사들과 같아진다고도 하셨습니다. 사후 세계는 온전히 주님께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세상 지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이론으로는 주님의 가르침을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사두가이파 사람들도 부활에 관해서는 유치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부활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지만 어린이 수준의 질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하느님의 말씀을 지식과 경험의 틀 속으로 가져오려 합니다. 상식의 잣대로만 재려고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평생 한 번은’ 성경 전체를 통독해 봐야 합니다. 전체를 필사해 본다면 더욱 좋은 일입니다. 마음먹으면 못할 일도 아니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 사랑 야훼께 감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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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6/3)


      가를로 르왕가와 그의 동료들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순교 성인들이다. 이곳에는 19세기 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왕궁의 시종으로 일하던 르왕가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왕조가 들어서자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했다. 끝까지 굴하지 않던 그는 1886년 6월 3일 동료 18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이들은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엉뚱한 질문을 한다.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혼인한 뒤에 죽었다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무례함을 받아 주시며 성경을 인용해 답변하신다(복음).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살다가 죽었다면 부활의 날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지 물은 것입니다. 황당하고 무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받아 주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온화함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종말 이후의 삶을 언급하십니다. ‘다시 살아날 때’에는 혼인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가르침입니다. 하늘의 천사들과 같아진다고도 하셨습니다. 사후 세계는 온전히 주님께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세상 지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이론으로는 주님의 가르침을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사두가이파 사람들도 부활에 관해서는 유치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부활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지만 어린이 수준의 질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하느님의 말씀을 지식과 경험의 틀 속으로 가져오려 합니다. 상식의 잣대로만 재려고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평생 한 번은’ 성경 전체를 통독해 봐야 합니다. 전체를 필사해 본다면 더욱 좋은 일입니다. 마음먹으면 못할 일도 아니지요.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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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6/3)


      말씀의 초대
      토빗의 시련은 주님의 섭리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다. 토빗은 모욕을 받아들이며 주님의 이끄심을 청하는 기도를 바친다. 한편 라구엘의 딸 사라 역시 비슷한 일로 기도를 올린다. 주님께서는 두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신다(제1독서).
      제1독서
      <토빗과 사라의 기도가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다다랐다.> ☞ 토빗기의 말씀입니다. 3,1-11ㄱ.16-17ㄱ 그 무렵 나 토빗은 마음이 몹시 괴로워 탄식하며 울었다. 그리고 탄식 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당신께서 하신 일은 모두 의롭고, 당신의 길은 다 자비와 진리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주님,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살펴보아 주소서. 저의 죄로, 저와 제 조상들이 알지 못하고 저지른 잘못으로 저를 벌하지 마소서. 그들은 당신께 죄를 짓고, 당신의 계명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저희를 약탈과 유배와 죽음에 넘기시고, 당신께서 저희를 흩으신 모든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와 조롱거리와 우셋거리로 넘기셨습니다. 저의 죄에 따라 저를 다루실 적에 내리신, 당신의 그 많은 판결들은 다 참되십니다. 저희는 당신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고, 당신 앞에서 참되게 걷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좋으실 대로 저를 다루시고, 명령을 내리시어 제 목숨을 앗아 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이 땅에서 벗어나 흙이 되게 하소서. 저에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당치 않은 모욕의 말을 들어야 하고, 슬픔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 명령을 내리시어 제가 이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제가 이곳에서 벗어나 영원한 곳으로 들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 살아서 많은 곤궁을 겪고 모욕의 말을 듣는 것보다 죽는 것이 저에게는 더 낫습니다.” 바로 그날,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사는 라구엘의 딸 사라도 자기 아버지의 여종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모욕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라는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신부와 관련된 관습에 따라 신랑이 사라와 한 몸이 되기도 전에, 아스모대오스라는 악귀가 그 남편들을 죽여 버렸다. 그래서 그 여종이 사라에게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당신 남편들을 죽이는 자는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이미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들 가운데에서 누구의 이름도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신 남편들이 죽었으면 죽었지 우리는 왜 때려요? 남편들이나 따라가시지. 그래야 우리가 당신의 아들이나 딸을 영영 보지 않게 되죠.” 그날 사라는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여 울면서, 자기 아버지 집의 위층 방으로 올라가 목을 매려고 하였다. 그러나 생??다시 하고서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외동딸밖에 없었는데 그 애가 불행을 못 이겨 목을 매고 말았구려.’ 하면서, 내 아버지를 모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만일 그렇게 되면 늙으신 아버지께서 나 때문에 슬퍼하시며 저승으로 내려가시게 되겠지. 목을 매는 것보다는, 평생 모욕하는 말을 듣지 않도록 죽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 그러면서 사라는 창 쪽으로 양팔을 벌리고 기도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두 사람의 기도가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다다랐다. 그래서 라파엘이 두 사람을 고쳐 주도록 파견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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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말씀이 예전처럼 절절하게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요즈음...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지금도 편하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가정의 복잡한 일로 지치다보니 예전처럼
    당신을 믿는 마음이 아니! 사랑하는 마음이 쬐끔은 변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느 때는 원망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반성을 하지만 앞이 안 보이는 것같이 답답할때가 있습니다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당신은
    헬레나의 하느님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레나의 하느님께서 왜 자꾸만 시련을 주실까?
    헬레나의 하느님께서 왜 자꾸만 고통을 주실까?
    헬레나의 하느님께서 왜 자꾸만 당신을 원망하게 하실까?
    등등...
    참 많은 생각들로 갈등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당신을 떠나서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지요?주님!
    가끔씩 당신을 원망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갈등을 하지만 
    당신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요?주님!

    맞아요주님!
    당신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만이 아니라 헬레나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기쁩니다
    저 같이 변덕많고 신앙심도 깊지 못하고 믿음또한 당신께
    실망을 드리지만 그래도 당신을 배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아마 이렇게 수박 겉핣기 나마 복음묵상을 
    몇년동안 꾸준히 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그리고 헬레나의 하느님이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산 이들의 하느님이신 당신을 사랑하며 배반하지 않으며
    당신께서 헬레나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당신을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헬레나의 하느님이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저의 마음이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헬레나의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게 하소서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묵상하며

  4. guest 님의 말:


     

    부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중에도 부활을 믿냐고 물어보면

    “네” 라고 한번에 대답하는 경우는 드문듯도 합니다.

    그처럼 어렵게 다가오는 부분인가 봅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안으면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긴다면

    죽음후의 생애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되뇌여 봅니다.

    오늘 말씀에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수혼제를 들먹이며

    예수님께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사두가이들은 인정하지 않았고

    바리사이들은 인정은 하되 현실이 그대로 지속되는 부활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죽은후의 삶이 현재와 같은 것이 아닌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지금의 제 삶이 보라색이었다면

    나중 아버지의 나라에선 뽀얀 흰색으로 다시 날 것을 생각합니다.

    지금뿐이 아니라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어진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면서

    부족한 저를 다잡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나중 아버지를 뵈올 때 정말 좋은 색으로 물들 수 있을테니까요.

    육신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아버지를 뵙고 새로운 색으로 물먹인 이쁜 옷을 입혀주시면

    그옷을 입고 활짝 미소지을 저를 그려보기도 한답니다.

    언젠가 강론중에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내 영혼이 자석이 되어 끌어당겨야 한다고~~

    그래야만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제가 밀어낸다면 아무것도 제 가슴에 안을 수 없을테니까요.

    가장 많이 고백하면서 의미를 이해하기엔 가장 어려워 했던것은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저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저버리실 아버지가 아니시지요.

    현세에서 지친 육신을 거두시면서 영혼의 옷을 새로 입혀주실 아버지!

    그러하신 아버지께선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지요.

    말씀속에서 참 많은 지혜와 못다 이해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담을 수 있음에 더없이 행복하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라고 하듯이

    늘 곁에서 지켜주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수혼제를 들먹여

    예수님을 옭아 매려 합니다.

    그러자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느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같으면 한 대 팼을텐데~

    그래도 다잡이 주시는 모습을 그리면서 저의 부족함도 그들과 같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하여

    가슴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늘 건방진 판단으로 머리로써 아버지를 괴롭힌 적은 없었는지요.

    산 이들의 아버지심을 저 또한 담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요.

    사랑이신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고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말씀속에서 저를 비추어 보고 변화된 모습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깊이로 들어가지 않고 제가 원하는 부분만을 담으며 사두가이들의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었던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이 뇌리를 덮습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의 바른 사랑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나중 아버지의 나라로 갈 때를 미리 걱정하는 어리석음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면서 저를 가꾸게 하소서.

    그리하여 영혼의 눈꽃을 피우는 그날에 환한 미소로 아버지곁에 머무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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