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이름은 요한이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24)


    말씀의 초대
    약속의 땅에 도착한 아브람과 롯은 주님의 이끄심으로 갈라진다. 롯은 요르단 강 동쪽으로 가고, 아브람은 서쪽 지역에 머물렀다. 주님께서는 그 모든 땅을 주겠다고 하신다. 후손들이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을 약속하신다. 아브람은 그곳에 주님의 제단을 쌓았다(제1독서).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하라고 하신다.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여기에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쉬운 말씀이 아니다. 실행에 옮기는 사람만이 깨닫게 되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좁은 문이라고 하셨다(복음).
    복음
    <아기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80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 성인을 세례자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요한은 자신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한사코 거절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에게나 세례가 필요함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넓은 마음입니다. 이후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세례로 바뀌게 됩니다. 물로만 씻는 예절에서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기적의 세례’가 됩니다. 이렇듯 요한은 메시아의 출현을 준비하고자 온 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기를 못 낳는 여인이라 했지만 그를 낳았습니다. 요한은 기적의 아이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모님의 잉태를 미리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탄생 순간부터 예수님을 알리고 준비했던 분입니다. 아버지 즈카르야는 사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천사를 통해 아내 엘리사벳의 잉태를 알게 되었을 때 잠시 긴가민가합니다. 그래서 벙어리가 되는 보속을 받습니다. 마리아의 잉태를 알았을 때 고뇌하던 요셉 성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훗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한을 메시아로 착각했을 때 그는 외쳤습니다. ‘나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근본적으로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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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이름은 요한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24)


      말씀의 초대
      약속의 땅에 도착한 아브람과 롯은 주님의 이끄심으로 갈라진다. 롯은 요르단 강 동쪽으로 가고, 아브람은 서쪽 지역에 머물렀다. 주님께서는 그 모든 땅을 주겠다고 하신다. 후손들이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을 약속하신다. 아브람은 그곳에 주님의 제단을 쌓았다(제1독서).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하라고 하신다.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여기에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쉬운 말씀이 아니다. 실행에 옮기는 사람만이 깨닫게 되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좁은 문이라고 하셨다(복음).
      복음
      <아기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80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 성인을 세례자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요한은 자신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한사코 거절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에게나 세례가 필요함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넓은 마음입니다. 이후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의 세례로 바뀌게 됩니다. 물로만 씻는 예절에서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기적의 세례’가 됩니다. 이렇듯 요한은 메시아의 출현을 준비하고자 온 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기를 못 낳는 여인이라 했지만 그를 낳았습니다. 요한은 기적의 아이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모님의 잉태를 미리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탄생 순간부터 예수님을 알리고 준비했던 분입니다. 아버지 즈카르야는 사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천사를 통해 아내 엘리사벳의 잉태를 알게 되었을 때 잠시 긴가민가합니다. 그래서 벙어리가 되는 보속을 받습니다. 마리아의 잉태를 알았을 때 고뇌하던 요셉 성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훗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한을 메시아로 착각했을 때 그는 외쳤습니다. ‘나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근본적으로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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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24)


      말씀의 초대
      약속의 땅에 도착한 아브람과 롯은 주님의 이끄심으로 갈라진다. 롯은 요르단 강 동쪽으로 가고, 아브람은 서쪽 지역에 머물렀다. 주님께서는 그 모든 땅을 주겠다고 하신다. 후손들이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을 약속하신다. 아브람은 그곳에 주님의 제단을 쌓았다(제1독서).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하라고 하신다.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여기에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쉬운 말씀이 아니다. 실행에 옮기는 사람만이 깨닫게 되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좁은 문이라고 하셨다(복음).
      제1독서
      <서로 싸우지 말자.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3,2.5-18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였다. 아브람과 함께 다니는 롯도 양과 소와 천막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땅은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들의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과 프리즈족이 살고 있었다.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보니,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롯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 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갔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요르단 들판의 여러 성읍에서 살았다. 롯은 소돔까지 가서 천막을 쳤는데,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죄인들이었다. 롯이 아브람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을, 또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아라.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내가 너의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이니,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자라야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자, 일어나서 이 땅을 세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고 가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여라. 내가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으로 가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는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22 조상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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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세례자 요한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신앙생활을 한다면 정말 멋진 신앙인이 될텐데~’

    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 봅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증언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겠지요.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

    빛을 증언하여 자신을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빛이 아니라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아로 착각하자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약 저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까요?

    그분은 내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정말 겸손된 고백을 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길을 닦아주라면 과연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하면서 자신을 내어 놓을수 있을런지요.

    종의 종으로 살아가는 겸손된 그 모습에서 사랑의 믿음이 가슴깊이까지 전해져 옵니다.

    아버지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 제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삶속에서 저를 드러내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저 앉아 대접이나 받으려 하진 않았는지요.

    종의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남으려 하진 않았는지 돌이켜 봅니다.

    겸손된 모습보다는 우쭐거리며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남의 땀흘린 수고의 인사를 대신 받으면서

    교만한 자세로 생활하진 않았는지도 반성해 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자세로 저를 죽이고 조용히 고개숙이며

    아버지 뵈올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그런 저가 되어야 함인데 그리하지 못함도 반성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뒤로한 채,

    오로지 아버지만을 생각한다면 늘 함께 하면서

    옳은 일을 위해 저를 내어 놓아야 함이지요.

    그럴 때 비로소 아버지께로 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순명하며 겸손되이 자신을 낮추고 열정을 다하여 아버지를 위해 저를 내어 놓을 때

    비로소 세례자 요한처럼 살아가는 것임을 가슴 깊이 새겨 봅니다.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기보다 그저 저를 먼저 내어놓는 삶을 시작함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버지의 어린양으로 겸손되이 두 손을 내밀 때

    이쁜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않으렵니다.

    누가 뭐라든 그저 아버지의 사랑을 안고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가슴에 담아

    열정을 더한 삶을 살아가려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세례자 요한 대축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삼 봉사자의 삶에 대해서 돌이켜 봅니다.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시는 아버지께선 엘리사벳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세례자 요한을 안겨 주셨지요.

    아버지시기에 가능함임을 생각하면서 하염없는 사랑을 되새겨 봅니다.

    미리 다 계획하시고 또 계획하신대로 다 이루시는 모습을 그리면서

    너무나 부족한 모습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저를 돌이켜 봅니다.

    남보다 높은 자리를 원하고 다른 이의 땀의 수고의 갈취하면서

    부채질을 하는 그런 모습으로 봉사를 하진 않았는지요.

    누구의 길을 닦아주기보다 누군가 저의 길을 닦아주길 바라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한평생을 아버지 오실 길을 준비하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종의 종으로 살아온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제 모습이 되게 하소서.

    겸손되이 고개숙이며 진정 종의 모습으로 살게 하소서.

    순명하는 모습으로 늘 아버지곁에서 머물며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의로운 신앙인이 되게 하시어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닮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그의 이름은 요한”

    주님!
    오늘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고백하신 겸손하신 세례자요한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세례자요한처럼 겸손하고 변함없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세례자요한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함이 없고
    세례자요한처럼 당신을 위해 자신을 희생 할줄 알고
    당신 신발 끈 조차 풀어드릴 자격 없다시는 겸손하신 세례자요한

    하지만 저의 모습은...
    겸손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신앙신이 깊은 것도 아니고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루에도 수 십번씩 변하지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제가 유리한 쪽으로 합리화를 시키며
    신앙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세속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교묘하게 신앙을 들먹거리는 신앙가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것도 없으니
    오히려 세례를 받았을 때 몇 년동안이 더 순수하고 믿음있었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의 말씀을 무조건 믿고 존경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요즈음...
    형제자매들의 신앙심도 제멋대로 평가하고 질책하며
    심지어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사목방침까지 판단하면서
    자신이 열심한 신앙인인 척 사실은 무늬만 신자인데...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저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지요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처럼 ...
    사목위원들이나 봉사하는 사람들까지 단죄 할때도 있습니다
    가식적이라고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느니 하면서...

    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해보니
    참 많은 죄를 짓고 살았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으니 큰일이지요
    저에게는 근본적으로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만과 세속의 이기심이 몸에 밴 탓이지요
    이름 값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도 저에게 그럽니다
    저의 세례명인 “헬레나”가 어울린다고
    “헬레나 성녀가 황후이셨다고...
    참 부끄럽습니다
    헬레나황후처럼 살아야하는데 아니!
    살려는 노력만이라도 해야 하는데
    무늬만 닮으려 노력하니 ㅠㅠ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의 이름은 요한”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교만한 헬레나가 정녕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서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하신 세례저요한처럼  겸손하고 사려깊고 믿음있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의 가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그의 이름은 요한”

    묵상하며

    세례자요한 축일을 맞이하신 모든 분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기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기를 기도드리며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하신
    이곳 사이버성당의 지도신부님이신 홍광철(세례자요한)신부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기원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제의 길을
    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진심으로 축하 축하 드립니다

  5. guest 님의 말:

     


    아기 이름은 요한

    1. 말씀읽기: 루카1,57-66.80

    세례자 요한의 출생

    요한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2.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즈카르야의 풀린 입. 사람들은 놀랐고, 그 사건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내 주변에도 놀라운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나 또한 많은 사랑을 받고, 은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에 새기지 못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하느님께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나이든 부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해야 하는 엘리야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태중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본 아기. 그 아기는 바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인 세례자 요한입니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이 아이를 낳았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클까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아닐까요? 엘리사벳은 이웃과 친척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그런데 아이 못 낳은 여인의 고통을 생각해 봅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녀 보았지만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점쟁이가 이렇게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지만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였고, 급기야는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고통은 본인 스스로부터도 있었겠지만 주변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을 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향한 자기 욕심의 분출, 그것은 바로 상대방에게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고통으로 다가갑니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드레만에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창세17,12,21;4;레위12,3). 이 날의 예절은 사제의 권리가 아니었고,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또 여자라도 집행할 수가 있었습니다(마카베오 상1,60; 마카베오 하6,10). 할례는 즈카르야의 집에서 이루어졌고, 엘리사벳도 그 곳에 있었습니다. 율법을 따르면(레위12,4) 여인은 산후 40일 동안 집 밖으로 나다닐 수 없었습니다.

    할례는 하느님과 맺는 계약의 표시였기 때문에 어린이가 뽑힌 백성의 한 사람이 되는 이 날 새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지어 주는 것도 유다 관습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주려고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즈카르야가 말을 못하니 주변 사람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제 맘대로 하려는 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지으려고 합니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아들의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권리였습니다. 말을 못하는 즈가리야였지만 아내 엘리사벳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할멈! 아이 이름은 요한으로 하라구 했어…”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간섭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막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권위를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그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존중 받고 싶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아이 이름은 요한으로 할꺼유…”엘리사벳의 행동. 이것은 그들이 보기에 아버지의 권리를 침해했고(자기들이 먼저 침해했는데), 또 아들 이름은 친척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는 관습에도 어긋났습니다. 좌우지간 그들은 요한이라는 이름을 못마땅해 합니다. 자신들이 지어준 이름이 선택되지 않아서일까요?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그들은 말 못하는 즈카르야를 붙들고 이야기 합니다. 이 행동은 엘리사벳을 무시하는 행위이고, 즈카르야를 제멋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즈카르야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씁니다. 천사가 일러준 이름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이며,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은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입니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하느님의 뜻을 의심했던 즈카르야.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실현했을 때야 비로소 벌로 받게 된 것이 풀리게 됩니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 까요? 얼마나 아들 요한이 원망스러웠을까요? 하지만 즈카르야는 기뻤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찬양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느님을 찬미하다가 조금이라도 서운하면 등을 돌리는 저 자신이기에 즈카르야의 모습은 존경스럽게만 보입니다.


    내 입은 열려서 하느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남을 험담하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상처 주던 입으로 이제는 하느님을 찬미하여야 합니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 자리에 참례하지는 않았지만 참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게 됩니다. 즈카르야가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글을 쓰면서 입이 풀렸다는 것. 즈카르야는 자신이 성소에서 받은 천사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믿지 않았기에 자신이 벙어리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언제나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그 일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하며 궁금해 합니다. 나도“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큰일을 해 주셨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나와 늘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나 내 주변의 신앙인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힘을 내야 합니다.

    내가 기억하면서 살아갈 때 주님의 손길이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제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할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 주님의 길을 준비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아기 이름을 지을 때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아기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나눠 봅시다. 내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으며, 누가 지어 주었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도…,


    ②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 집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오늘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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