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연중 제13주간 수요일(7/01)


    말씀의 초대
    사탄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러기에 말씀에 순응한다.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하시자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유다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겼다. 돼지고기 먹는 것을 율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런 설정이 가능한 것이다(복음).
    복음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사나워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발언입니다. 악의 세력은 예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분의 표징까지도 피하려 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기운을 지니면 악의 세력은 쉽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밝은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환한 미래’를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털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 속에서도 어두운 미래를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몸이면서도 질병의 불안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힘을 지니지 못한 탓입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성체를 모셨지만 그분의 힘을 모시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니 성체를 영한 뒤에는 언제나 ‘당신의 힘’을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는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말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어찌 그분께서 당신의 힘을 주시지 않으실는지요? 마귀들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다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겼기에 그런 표현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돼지고기는 쉽게 상했습니다. 먹고 탈이 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유다인들은 아예 율법으로 못 먹게 했던 것입니다. ‘사막 문화권’의 한 모습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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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3주간 수요일(7/01)


      말씀의 초대
      사탄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러기에 말씀에 순응한다.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하시자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유다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겼다. 돼지고기 먹는 것을 율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런 설정이 가능한 것이다(복음).
      복음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사나워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발언입니다. 악의 세력은 예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분의 표징까지도 피하려 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기운을 지니면 악의 세력은 쉽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밝은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환한 미래’를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털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 속에서도 어두운 미래를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몸이면서도 질병의 불안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힘을 지니지 못한 탓입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성체를 모셨지만 그분의 힘을 모시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니 성체를 영한 뒤에는 언제나 ‘당신의 힘’을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는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말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어찌 그분께서 당신의 힘을 주시지 않으실는지요? 마귀들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다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겼기에 그런 표현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돼지고기는 쉽게 상했습니다. 먹고 탈이 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유다인들은 아예 율법으로 못 먹게 했던 것입니다. ‘사막 문화권’의 한 모습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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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13주간 수요일(7/01)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은 백 살의 나이에 이사악을 낳았다. 사라는 자신의 아들이 이스마엘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해 그를 내보낸다. 하지만 그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주님께서는 이스마엘을 통해 또 다른 민족의 출발이 되게 하신다(제1독서).
      제1독서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5.8-20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 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그는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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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마귀들린 사람 둘!

    돼지 떼들!

    그 많은 돼지들을 어떻게 한번에??

    돼지들을 생각하면서 먼저 손익계산을 해 봅니다.

    아깝다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떠나가 달라고 청하는 무리중에 한사람이 바로 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다 깨닫지 못하는 저네요. 그치요?

    좁은 마음으로 돼지만을 생각했지 마귀들린 두 사람을 생각하지 못함이지요.

    아니 손익만을 생각했나 봅니다.

    마치 저의 돼지들을 한번에 보내버린 그런 마음이요.

    그러면서 제가 혹여 마귀들린 사람중에 한 사람이라면 어떨것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시달리고 있는 그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 되어 보질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심인데~~

    그 사랑을 제가 바로 깨닫지 못했나 봅니다.

    물론 유다인들이 돼지고기를 부정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그런 규정을 지키지 않아 순교하는 이들이 있을정도로~~

    그래서 마귀들이 돼지 떼속으로 들어가 죽어도 애석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잠시나마 잊었다는 것에 사실 부끄럽답니다.

    제가 신앙을 고백하면서 얕은 마음으로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은 없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원하시는지 늘 가슴에 새기면서도

    이익에 눈멀어 진정 중요한 보석을 잃어버리고 나중에 후회하며 우는 일이 없어야 함을 다져 봅니다.

    해가 들어간 틈을 타 뒷켠에 풀을 메었습니다.

    비가 올듯한 날씨여서 흐린 날이었지만 흐르는 땀은 주저할 길이 없었답니다.

    고추와 상추와 토마토가 심어져 있는데

    열매를 맺은 토마토의 무게 때문에 가지가 휘어져 가지정리를 했습니다.

    필요없는 가지들을 꺽어버리면서 문득 아버지의 말씀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찬바람이 쌩부는 그런 느낌이었지요.

    바로 제 모습을 떠올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버리라 하시자

    포도 지배인이 올해만 그냥 두시라 청하지요.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게 하겠다고~~

    늘 그러하시듯 예수님안에서 기회를 주시는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만약 제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토마토 가지처럼 누군가에게 꺽여버릴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돼지들을 생각하면서 마귀들린 사람을 바라보지 못한 저가

    말씀에서 부족한 저를 성찰하고 변화되어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먼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저가 되어야 함을~

    그리고 깊이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저가 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다시금 가슴깊이에 새겨 봅니다.

    저희를 구원하기 위해서 내어 놓으신 아버지의 그 사랑을 뒤로하고

    이익에 눈멀어 돼지들을 생각한 저를 돌아보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봅니다.

    하지만 아버지!

    이제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인간 구원이라 하지요.

    죽도록 미운사람일지라도 아버지에겐 너무나 소중한 사랑의 열매임을 꼭 기억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마귀들린 두 사람을 구하시기 위해 그 마귀들을 돼지 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전 돼지들을 생각하면서 아깝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살짝 동조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무엇이 아버지께서 가시고자 하는 길임을 잠시 망각한 채 손익계산을 먼저 하였습니다.

    손해를 본 이들이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는 그 무리에 저의 모습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늘 깨닫는 듯 하면서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저의 마음을 반성해 봅니다.

    무엇이 옳은 가치관이고 무엇이 먼저인지를 생각하지 않은 저를 반성해 봅니다.

    아무리 큰 이익이 있을지라도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인데

    힘들어 하는 마귀들린 사람을 보기보다

    손해를 먼저 계산한 저의 모습이 작음을 느낍니다.

    아버지!

    그 무엇도 아버지의 사랑을 능가할 수 없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독서에 나오는 사라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먼저 내어주는 사랑에 저를 묻게 하시어

    넓고 깊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구원사업에 저의 사랑을 드리게 하시어

    늘 주시는 기회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사랑의 둑을 완성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주님!

    요즈음 아니!
     아마 한달도 넘은 것같습니다
    컴이 말썽을 부려 복음묵상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씩 다운이 되고 ...
    처음 몇 번은 초조한 마음도 들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날 그날 복음묵상이라도 해야 되는데
    사실 요즈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보니
    “복음묵상”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자꾸만 말썽을 부리는 컴퓨터 때문에 ...
    자다가 새벽에 복음묵상을 할 때가 많으니 묵상도 
    수박 겉 핣기식으로 짜증이 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엉터리라도 “복음묵상” 을 하고나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고 컴퓨터의 잦은고장으로 
    짜증도 나지만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하게 되고  
    조급한 저의 성격이 참는 것을 배우게되니 감사하는 마음도 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말씀에 언제나 저의 기준대로 판단하고 단정 짓는 경솔한 
    저의 성격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섣부른 판단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말아야 한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니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원망하는 저의 조급한 성격을 고쳐야한다고 다시금 다짐합니다
    사랑밖에 모르시는 하혜와 같으신 당신의 은혜를 생각하며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생각했던 옹졸한 저의 믿음을 반성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묵상하며 

  5. guest 님의 말:

    내안에 돼지는 몇마리쯤 있을까…
    백마리 천마리?…중요한건 몇 마리라는 숫자가 아닐 것이다.
    단 한 마리라도 있다면
    그분의 뜻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분의 뜻을 따르고 그분처럼 살고자 하면서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한다.
    그러나 선택은 하나뿐이다.
    돼지냐 그분이냐…

    내속엔..
    수천마리 돼지떼가 자리잡고 있기에 그분이 머물자리가 너무 협소하다.
    허지만 협소하나마 그분이 계시기에 양심은 갈등한다.
    그러나 쉽게 유혹(돼지떼가 더 많아서)에 빠지고 만다.
    고달픈 십자가보다 달콤하고 편한 것들이 좋아서…
    그래서 마을사람들 처럼 그분이 오시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진리에 눈감아 버리고 내가 유리한 쪽으로 편승하며 살고 싶다.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합리화 하면서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손익계산이 앞서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의 돼지떼는 미움,질투,욕심,권력,물질 기타등등..일수도 있고
    때론 분명히 진리인데 침묵하는 행위일수도 있다.
    또한 기회주의자처럼 사는 모습일수도 있다.

    요즘 세상이 무척 시끄럽다.
    정치도 경제도…
    모두가 자기소리만 있기 때문이다.
    내 뜻,상황, 입장만이 중요한 것이다.
    타인보다 나…
    그래서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들면 그게 진리라 해도 전투태세로 간다.
    나역시 그렇다.

    동지와 맞설때 내가 맞서는 이유를 알고서 맞서야 하는데…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눈귀를 막고 칼을 들이댄다.
    “나는 모른다. 하라는 대로 했을뿐이다.”
    이렇게 빌라도가 손을 씻듯이…책임회피하고 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크게 보면 나역시 불의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내안에 돼지는
    불의인줄 알면서 함께 하는 것이고
    진리를 포장해 내 이익을 추구하는 교활함이다.
    또한 진리의 무리를 이용해 불의로 몰아갈수 있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결국은 보상이 있는 의도의 십자가는 짊어질수 있다는 거다.

    오늘 주님의 말씀하신다.
    돼지떼를 몰아내고 주님의 뜻대로 살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리더로 살다가신 분이 누구시던가.
    주님이 아니시던가.
    그분처럼 살면 두려울 것도 없다.

    그분은 대를 위해서 소를 죽인 적이 없으시다.
    오늘날…
    주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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