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성녀 마르타 기념일(7/29)


    요한 복음 11장에는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가 나온다. 마르타 성녀는 그 라자로의 동생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집에 자주 머무르셨고, 마르타와 마리아는 주님의 일행을 정성으로 영접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세 분은 오늘날의 프랑스인 갈리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말씀의 초대
    마르타는 오빠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오시자, 그녀는 살려 주시기를 청한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주님께서는 기적을 약속하신다. 그러자 마르타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한다.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하느님의 메시아로 고백한 것이다(복음).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 <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목욕탕에 갔습니다. 탕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때 어떤 아이가 물었습니다. “안 뜨거우세요?” “뜨겁단다.” “그런데 참는 거예요?” “그래, 참는단다.” “어떻게 참으세요?” “살다 보면 이보다 더한 것도 참아야 한단다. 이런 것 참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앉아서 참아 내는 거야. 너도 한번 해 보렴.” 하지만 아이는 아는 듯 모르는 듯 호기심의 미소만 띠고 머뭇거립니다. 참는 것을 어찌 강요할 수 있을는지요? 살다 보면 ‘참아야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만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기에 인내가 몸에 뱁니다. 사랑 역시 ‘참는 행위’입니다. 사랑하기에 참아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참는 사랑’이 진정한 의미의 ‘참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투정과 협박이 뒤섞인 청원입니다. 하지만 마르타의 기도를 주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그녀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인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엄청난 협박성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들어주십니다. 믿는 이들은 언제나 어린이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른의 사랑으로 받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내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는 행위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이또한  지나가리라 -나무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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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녀 마르타 기념일(7/29)


      요한 복음 11장에는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가 나온다. 마르타 성녀는 그 라자로의 동생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집에 자주 머무르셨고, 마르타와 마리아는 주님의 일행을 정성으로 영접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세 분은 오늘날의 프랑스인 갈리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말씀의 초대
      마르타는 오빠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오시자, 그녀는 살려 주시기를 청한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주님께서는 기적을 약속하신다. 그러자 마르타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한다.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하느님의 메시아로 고백한 것이다(복음).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 <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목욕탕에 갔습니다. 탕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때 어떤 아이가 물었습니다. “안 뜨거우세요?” “뜨겁단다.” “그런데 참는 거예요?” “그래, 참는단다.” “어떻게 참으세요?” “살다 보면 이보다 더한 것도 참아야 한단다. 이런 것 참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앉아서 참아 내는 거야. 너도 한번 해 보렴.” 하지만 아이는 아는 듯 모르는 듯 호기심의 미소만 띠고 머뭇거립니다. 참는 것을 어찌 강요할 수 있을는지요? 살다 보면 ‘참아야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만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기에 인내가 몸에 뱁니다. 사랑 역시 ‘참는 행위’입니다. 사랑하기에 참아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참는 사랑’이 진정한 의미의 ‘참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투정과 협박이 뒤섞인 청원입니다. 하지만 마르타의 기도를 주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그녀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인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엄청난 협박성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들어주십니다. 믿는 이들은 언제나 어린이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른의 사랑으로 받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내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는 행위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이또한  지나가리라 -나무자전거-
    
    
    
    
         
     
    

  2. guest 님의 말:


    성녀 마르타 기념일(7/29)


      말씀의 초대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해야 주님을 알 수 있다. 누구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면 그분 안에서 사는 것이 된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이또한  지나가리라 -나무자전거-
    
    
    
    
         
     
    

  3. guest 님의 말: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마르타의 믿음이 부러웠습니다
    저도 마르타처럼 믿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반성이 되었구요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고 싶습니다
    저에게 마르타의 믿음이 있으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즈음...
    언제나처럼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정도로...
    그런데도 언제나 저의 머릿 속에서 잊지 않고 생각나는 것이
    있지요 바로 “복음묵상” 입니다
    바쁘면 바쁜대로 시간이 나는대로 엉터리라도 “복음묵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제가 복음묵상을 하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예전보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에
    “복음묵상”만이라도 해야 신앙인으로 해야 할 의무를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사실 정말 하기 싫은 날도 많습니다
    “복음묵상”주제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구요
    몇 년동안 “복음묵상”을 했지만 아직도 헤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 잡고 있습니다
    봉사활동도 신앙생활도 평일미사도 예전보다 하지 못하고 있는데
    “복음묵상”만이라도 해야 한다고 
    신앙생활은 폼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힘들고 어렵다해도
    영생을 얻게 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주님!

    지금의 저의 여건이 예전보다 못하다 할지라도 
    봉사활동이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해도
    지금의 저의 처지에 맞게 비관하지 않으며
    묵묵히 당신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마르타의 믿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해도
    마르타의 믿음이 부럽다 해도
    마르타의 믿음을 본받아  노력만이라도 해야 한다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복음묵상”아라도 열심히 꾀부리지 않으며...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하신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 알렐루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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