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1/31)


    한국 교회는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3년 해외 원조 사업에 대한 올바른 홍보와 신자들의 의식 강화를 도모하고자 ‘해외 원조 주일’을 정하였고, 오늘 특별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의 해외 원조 사업에 쓰인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4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외면합니다. 그분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는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적도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렇듯 편견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를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놀라워한다. 그러나 그분의 출생을 떠올리며 편견에 사로잡힌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질책하신다. 기적을 보여 자신들을 믿게 해보라는 생각을 꾸짖으신 것이다. 그러시면서 이방인들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예로 드신다. 그들이 더 낫다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오셔서 설교하십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출신을 떠올리고는 능력을 의심합니다.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우리 동네에서 목수 일 하던 그 사람의 아들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 때문에 예수님의 본모습에 다가가는 데에 실패합니다. 그들은 기적의 주님을 만나고 접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수의 아들이란 생각 때문에 ‘기적의 힘’을 깨닫지 못합니다. 편견 때문입니다. 한쪽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 편견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에만 매달리다가 그분의 영적 모습을 놓쳐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을 통해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은 믿는 이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벌주거나 징계를 가하기 위한 기적은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편견을 뚫지 못하는 믿음을 애석하게 여기셨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기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생은 기적의 연속입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은총’입니다. 그렇건만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주님께서 주셨기에 있는 것입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편견’을 깰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살아계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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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1/31)


      한국 교회는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3년 해외 원조 사업에 대한 올바른 홍보와 신자들의 의식 강화를 도모하고자 ‘해외 원조 주일’을 정하였고, 오늘 특별 헌금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의 해외 원조 사업에 쓰인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4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외면합니다. 그분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는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적도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렇듯 편견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를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놀라워한다. 그러나 그분의 출생을 떠올리며 편견에 사로잡힌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질책하신다. 기적을 보여 자신들을 믿게 해보라는 생각을 꾸짖으신 것이다. 그러시면서 이방인들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예로 드신다. 그들이 더 낫다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오셔서 설교하십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출신을 떠올리고는 능력을 의심합니다.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우리 동네에서 목수 일 하던 그 사람의 아들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 때문에 예수님의 본모습에 다가가는 데에 실패합니다. 그들은 기적의 주님을 만나고 접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수의 아들이란 생각 때문에 ‘기적의 힘’을 깨닫지 못합니다. 편견 때문입니다. 한쪽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 편견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에만 매달리다가 그분의 영적 모습을 놓쳐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을 통해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은 믿는 이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벌주거나 징계를 가하기 위한 기적은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편견을 뚫지 못하는 믿음을 애석하게 여기셨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기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생은 기적의 연속입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은총’입니다. 그렇건만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주님께서 주셨기에 있는 것입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편견’을 깰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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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1/31)


      말씀의 초대
      예언자는 태어나기 전부터 주님께서 선택하셨다. 그러기에 그분께서 함께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임금과 대신들에게 맞서야 한다. 당당하게 말씀을 전해야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 모든 것의 중심임을 역설한다. 인간의 언어를 모두 구사하고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요란한 징이나 꽹과리 소리와 진배없다는 가르침이다.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신다(제2독서).
      제1독서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4-5.17-19 요시야 시대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3,4-13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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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user#0 님의 말: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 자신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의 의지대로 소신껏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하지만 복음을 묵상하면서 곰곰 성찰을 해보니
    그래도 어느정도의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스스로 위로를 해봅니다
    왜냐구요? 주님!
    그렇지 않으면 저 자신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그리고 저 자신 약간의 자존심(?)도 ...
    그래도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신앙심도 사랑도 믿음도 저의 게으름 때문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말씀을 깊이 새기며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당신께서 도와주신다는 믿음으로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신 당신을 생각하며
    초지일관 
    세례 받을 때의 행복했던 그때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도와주신다는 굳은 믿음으로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묵상하며


    ♬ 이스라엘 들으라

  4. user#0 님의 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깨닫는 요즈음입니다
    십년이 넘도록 복음묵상을 하는 것이 일상생활처럼 생각했었는데…
    요즈음…
    복음묵상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에 아쉽고 안타까웠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저 역시 복음묵상을 게을리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먹으면 점심 먹듯이 그렇게 복음묵상을 해야한다고 …
    동안….
    참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던
    “복음묵상”
    요즈음은 점점 더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인 중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것이 가장 크지요
    그러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 씩….
    이곳(사이버성당) 문을 열고 들어와 복음말씀을 읽곤 합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인터넷을 하느라 …
    양심이 찔리지만 연예기사 보고 그날 그날 뉴스거리 보고
    그리고 맨 나중에 복음말씀을 읽고 ㅠㅠㅠ
    부끄럽습니다 주님!
    죄송스럽고 그리고 핑계를 대지요
    시간이 없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당신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성체)을 먹지 않아서 이지요
    참 입으로는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핑계도 잘 대고 …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야하는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다짐해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핑계를 대지 않는 치사한 신앙인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올 사순시기를 보내야한다고
    다짐합니다
    소신있는 신앙인 믿음깊은 신앙인 정직한 신앙인
    당신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아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아침안개 눈 앞 가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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