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부활 제4주간 금요일(4/30)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성경에서 예언했던 메시아는 예수님이심을 알리고 있다. 유다인들이 그분을 죽게 했지만 다시 살아나셨다고 외친다. 이렇듯 사도들의 선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리는 일이었다(제1독서).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스승님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일생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며 헌신하셨지만, 돌아온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배신까지 겪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이용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변명도 없이 억울함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 ‘제1처’의 가르침입니다. 신앙인 역시 이용당합니다. 여차하면 속습니다. 그럴 때마다 비난하고 불평합니다. 억울함을 곱씹고, 보복도 생각합니다. 일종의 ‘저항’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무엇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호전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자신에게만 ‘악영향’을 끼칠 뿐입니다. 억울한 느낌이 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려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자신이 바뀌면 세상도 달리 보이는 법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삶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억울함이 ‘눈덩이’처럼 커져 가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쳐 보십시오. 눈물과 함께 바쳐 보십시오. 억울함이 십자가의 본질임을 깨닫게 됩니다. ‘분하고 분했던’ 일들이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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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4주간 금요일(4/30)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성경에서 예언했던 메시아는 예수님이심을 알리고 있다. 유다인들이 그분을 죽게 했지만 다시 살아나셨다고 외친다. 이렇듯 사도들의 선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리는 일이었다(제1독서).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스승님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일생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며 헌신하셨지만, 돌아온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배신까지 겪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이용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변명도 없이 억울함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 ‘제1처’의 가르침입니다. 신앙인 역시 이용당합니다. 여차하면 속습니다. 그럴 때마다 비난하고 불평합니다. 억울함을 곱씹고, 보복도 생각합니다. 일종의 ‘저항’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무엇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호전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자신에게만 ‘악영향’을 끼칠 뿐입니다. 억울한 느낌이 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려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자신이 바뀌면 세상도 달리 보이는 법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삶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억울함이 ‘눈덩이’처럼 커져 가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쳐 보십시오. 눈물과 함께 바쳐 보십시오. 억울함이 십자가의 본질임을 깨닫게 됩니다. ‘분하고 분했던’ 일들이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2. guest 님의 말:


    부활 제4주간 금요일(4/30)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성경에서 예언했던 메시아는 예수님이심을 알리고 있다. 유다인들이 그분을 죽게 했지만 다시 살아나셨다고 외친다. 이렇듯 사도들의 선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리는 일이었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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