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생명의 날)(5/30)


    ‘삼위일체 대축일’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께서 같은 본성의 한 하느님이시라는 신비를 기리는 날이다. 1334년 요한 22세 교황은 이 삼위일체 대축일을 교회의 공식 축일로 지정하면서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내게 했다. 구약 성경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표현이 없다.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예수님과 성령을 하느님으로 고백하였기에 삼위일체 이론이 정립되었다. 이후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고, 삼위일체를 신앙 교리로 선언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5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제정하였다.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지내 오고 있으며, 1993년부터는 ‘청소년 주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한 1995년부터는 이날을 ‘생명의 날’로 함께 지내고 있다. 인간 생명과 품위를 해치는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우려하는 가운데 인간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심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완벽한 일치를 이루며 계시기에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러한 일치는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삼위일체이신 주님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힘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는 하느님의 작품이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있었다. 모든 시간에 앞서 지혜는 있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셨다.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이들에게도 은총을 베푸신다. 지혜는 사람들의 기쁨이다(제1독서). 인간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주님의 은총을 받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평화도 누린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나라에서 쉬게 될 것이다. 환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다. 언제라도 인내로써 기다려야 한다(제2독서). 때가 되면 성령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스승님의 말씀과 행동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는 가르침을 주신다(복음).
    제1독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지혜는 태어났다.> ☞ 잠언의 말씀입니다.8,22-31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5,1-5 형제 여러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성호경은 신앙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모르는 새 삼위일체를 고백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위일체란, 하느님 안에 세 위격(位格)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위(位)는 자리를 뜻하는 한자이지요. 굳이 이렇게 표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의 기록 때문입니다. 성경 안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 따로 등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설명을 위해 삼위일체 용어를 만든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리에 정통하다고 믿음이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은 이론일 뿐입니다. 실천은 언제나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린이가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르듯 그렇게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의 하느님께서는 너무 멀리 계셨습니다. 아버지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개념을 바꾸려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훗날 사도들은 성령께서 오신 뒤에야 스승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하느님으로 알아뵙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의 신앙인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산다면 성령께서는 도와주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일치 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삼위일체 / 이노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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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생명의 날)(5/30)


      ‘삼위일체 대축일’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께서 같은 본성의 한 하느님이시라는 신비를 기리는 날이다. 1334년 요한 22세 교황은 이 삼위일체 대축일을 교회의 공식 축일로 지정하면서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내게 했다. 구약 성경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표현이 없다.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예수님과 성령을 하느님으로 고백하였기에 삼위일체 이론이 정립되었다. 이후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고, 삼위일체를 신앙 교리로 선언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5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제정하였다.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지내 오고 있으며, 1993년부터는 ‘청소년 주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한 1995년부터는 이날을 ‘생명의 날’로 함께 지내고 있다. 인간 생명과 품위를 해치는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우려하는 가운데 인간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심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완벽한 일치를 이루며 계시기에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러한 일치는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삼위일체이신 주님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힘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는 하느님의 작품이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있었다. 모든 시간에 앞서 지혜는 있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지혜를 사랑하셨다.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이들에게도 은총을 베푸신다. 지혜는 사람들의 기쁨이다(제1독서). 인간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주님의 은총을 받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평화도 누린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나라에서 쉬게 될 것이다. 환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다. 언제라도 인내로써 기다려야 한다(제2독서). 때가 되면 성령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스승님의 말씀과 행동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에게 성령께서는 가르침을 주신다(복음).
      제1독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지혜는 태어났다.> ☞ 잠언의 말씀입니다.8,22-31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5,1-5 형제 여러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성호경은 신앙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모르는 새 삼위일체를 고백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위일체란, 하느님 안에 세 위격(位格)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위(位)는 자리를 뜻하는 한자이지요. 굳이 이렇게 표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의 기록 때문입니다. 성경 안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 따로 등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설명을 위해 삼위일체 용어를 만든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리에 정통하다고 믿음이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은 이론일 뿐입니다. 실천은 언제나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린이가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르듯 그렇게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의 하느님께서는 너무 멀리 계셨습니다. 아버지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개념을 바꾸려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훗날 사도들은 성령께서 오신 뒤에야 스승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하느님으로 알아뵙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의 신앙인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산다면 성령께서는 도와주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일치 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삼위일체 / 이노주사
    
    
    

  2. guest 님의 말: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겸손과 순명을 배웁니다
    당신의 뜻보다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당신의 겸손과 순명
    복음을 묵상하면서
    새삼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언제나 남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며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처럼 자신과 생각이 같지 않으면
    등을 돌리며 타협을 하지 않는 고집불통인 저를 생각하니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생각보다는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당신의 배려
    겸손과 순명을 배웁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저의 생각이 얼마나 교만했었는지를….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신앙인은 겸손과 순명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늦었다고 생각하며 포기했던 저의 교만을 반성하며
    순명하는 신앙인 헬레나
    배려하는 신앙인 헬레나
    겸손한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아멘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묵상하며

    ♬ 삼위일체 / 이노주사

  3. user#0 님의 말: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겸손과 순명을 배웁니다
    당신의 뜻보다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당신의 겸손과 순명
    복음을 묵상하면서
    새삼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언제나 남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며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처럼 자신과 생각이 같지 않으면
    등을 돌리며 타협을 하지 않는 고집불통인 저를 생각하니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생각보다는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당신의 배려
    겸손과 순명을 배웁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저의 생각이 얼마나 교만했었는지를….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신앙인은 겸손과 순명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늦었다고 생각하며 포기했던 저의 교만을 반성하며
    순명하는 신앙인 헬레나
    배려하는 신앙인 헬레나
    겸손한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아멘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묵상하며

    ♬ 삼위일체 / 이노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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