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7/15)


    보나벤투라 성인은 1218년경 이탈리아 바뇨레아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인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가 되었으며, 파리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이후 철학과 신학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성인은 알바노의 추기경이 된 후 1274년에 선종하였다. 성인은 중세의 뛰어난 철학자이며 사상가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148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말씀의 초대
    백성의 상황이 위기에 놓이고, 모든 계획과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심판을 앞당겨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을 믿고, 그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몸 바치는 백성은, 현재의 상황이 제아무리 전망이 없어 보여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주님과 그분의 정의를 찾아 나서는 백성이 장차 있을 부활의 신비를 맛보게 되리라는 것이 예언의 신탁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불행한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고 자유를 주시어 온전히 쉬게 하신다. 삶이 고단하더라도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은 편안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주님께 오롯이 순명하는 것은 새로운 멍에이며,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가벼운 짐이다(복음).
    제1독서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7-9.12.16-19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베푸십니다.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주님, 사람들이 곤경 중에 당신을 찾고, 당신의 징벌이 내렸을 때 그들은 기도를 쏟아 놓았습니다.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듯, 주님, 저희도 당신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 저희가 임신하여 몸부림치며 해산하였지만, 나온 것은 바람뿐. 저희는 이 땅에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누리의 주민들을 출산하지도 못합니다.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모든 생명은 참으로 살려면 제대로 쉬어야 합니다. 숨을 쉰다고 할 때의 ‘쉼’은 숨(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숨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도, 모든 생물도, 땅도, 장기(臟器)도 쉬어야 합니다. 돼지도 건강 상태가 나쁠 때는 스스로 단식한다는 것을 농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병은 영양 부족, 일 기피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과로와 과식이 병의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생명을 쉬지 못하게 하는 짓은 생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쉼은 틈, 여유, 여백, 비움입니다. 쇠붙이도 늘었다 줄었다 하기에, 철길을 만들 때 빈틈을 냅니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친구도 없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빈 구멍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비울 때,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있고, 이웃이 내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욕심에서 해방한다는 것이며, 이웃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쉼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쉬시는 분,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 참으로 쉬는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쉬는 사람이 성인(聖人)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정호경 신부, 『해방하시는 하느님』, “쉼은 무엇인가?” 중에서).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을 의지합니다 - SO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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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7/15)


      보나벤투라 성인은 1218년경 이탈리아 바뇨레아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인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가 되었으며, 파리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이후 철학과 신학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성인은 알바노의 추기경이 된 후 1274년에 선종하였다. 성인은 중세의 뛰어난 철학자이며 사상가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148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말씀의 초대
      백성의 상황이 위기에 놓이고, 모든 계획과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심판을 앞당겨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을 믿고, 그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몸 바치는 백성은, 현재의 상황이 제아무리 전망이 없어 보여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주님과 그분의 정의를 찾아 나서는 백성이 장차 있을 부활의 신비를 맛보게 되리라는 것이 예언의 신탁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불행한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고 자유를 주시어 온전히 쉬게 하신다. 삶이 고단하더라도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은 편안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주님께 오롯이 순명하는 것은 새로운 멍에이며,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가벼운 짐이다(복음).
      제1독서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7-9.12.16-19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베푸십니다.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주님, 사람들이 곤경 중에 당신을 찾고, 당신의 징벌이 내렸을 때 그들은 기도를 쏟아 놓았습니다.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듯, 주님, 저희도 당신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 저희가 임신하여 몸부림치며 해산하였지만, 나온 것은 바람뿐. 저희는 이 땅에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누리의 주민들을 출산하지도 못합니다.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모든 생명은 참으로 살려면 제대로 쉬어야 합니다. 숨을 쉰다고 할 때의 ‘쉼’은 숨(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숨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도, 모든 생물도, 땅도, 장기(臟器)도 쉬어야 합니다. 돼지도 건강 상태가 나쁠 때는 스스로 단식한다는 것을 농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병은 영양 부족, 일 기피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과로와 과식이 병의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생명을 쉬지 못하게 하는 짓은 생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쉼은 틈, 여유, 여백, 비움입니다. 쇠붙이도 늘었다 줄었다 하기에, 철길을 만들 때 빈틈을 냅니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친구도 없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빈 구멍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비울 때,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있고, 이웃이 내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욕심에서 해방한다는 것이며, 이웃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쉼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쉬시는 분,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 참으로 쉬는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쉬는 사람이 성인(聖人)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정호경 신부, 『해방하시는 하느님』, “쉼은 무엇인가?” 중에서).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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