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12/26)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복음서에 잘 묘사되어 있으며, 초대 교회 때부터 공경해 왔고, 중세기부터 대중적 신심 대상으로 확산되었다. 1921년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예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로 성가정 축일을 제정하였다. 이후 1969년 전례력 개정 때, ‘성탄 대축일 후 첫 주일’로 옮겼다. 한국 천주교회는 2001년부터 성가정 축일의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아기 예수님과 그분의 부모님께서 함께 사셨던 나자렛의 거룩한 가정을 기억하고 되새겨 보는 날입니다. 그분들께서는 인간적 갈등들을 신앙으로 극복하시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먼저 받드는 거룩한 가정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모든 일의 첫자리에 오게 하여 성가정을 닮은 가정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주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자녀로서 어버이에 대한 효행을 다하라고 권고한다. 특히 부모가 나이 들어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다하는 자녀들의 효행은 지은 죄도 상쇄해 줄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 공동체가 될 것을 호소한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가정생활에서 서로를 존중과 사랑으로 대할 줄 안다. 타인을 사랑과 존중으로 대할 때 그는 화해와 용서를 할 수 있으며, 모든 일에서 주님께 감사를 드릴 줄 알게 된다(제2독서). 피신하셨던 이집트에서 돌아오신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께서는 나자렛에 자리를 잡으신다. 이로써 구약의 예언인 ‘나자렛 사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께서는 철저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사셨기 때문에 성가정을 이루셨다(복음).
    제1독서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2-21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2-6.12-14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5.19-2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동아시아 전통에는 ‘사천’(事天)과 ‘사친’(事親) 사상이 있습니다. ‘사천’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고, ‘사친’은 어버이를 섬기는 행위입니다. 가정은 하늘이 맺어 준 혈연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극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갈수록 그 농도가 엷어지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섬길 줄 아는 자식은 어버이를 섬길 줄 압니다. 어버이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는 것이지요. 서로를 위하며 오순도순 모여 살았던 대가족 시대가 참 아름다운 전설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같은 핵가족에서는 조그마한 틈만 벌어져도 곧 부모가 이혼하고, 자녀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연로하신 조부모 손에 맡겨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족 안에서 사랑이라는 것, 서로를 섬긴다는 단어를 찾아보기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자식들은 부모를 욕되게 하는 패륜이 아주 흔하게 자행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패륜이 무엇입니까? 천륜마저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가정은 고통이나 시련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을 이겨 낸 가정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의 성가정도 인간적 갈등과 고뇌가 있었습니다. 다만 주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셨기에 성가정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성가정을 본받아, 하느님을 섬기고 가족을 사랑하는 성가정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Canto Gregoriano-Gloria X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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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12/26)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복음서에 잘 묘사되어 있으며, 초대 교회 때부터 공경해 왔고, 중세기부터 대중적 신심 대상으로 확산되었다. 1921년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예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로 성가정 축일을 제정하였다. 이후 1969년 전례력 개정 때, ‘성탄 대축일 후 첫 주일’로 옮겼다. 한국 천주교회는 2001년부터 성가정 축일의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아기 예수님과 그분의 부모님께서 함께 사셨던 나자렛의 거룩한 가정을 기억하고 되새겨 보는 날입니다. 그분들께서는 인간적 갈등들을 신앙으로 극복하시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먼저 받드는 거룩한 가정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모든 일의 첫자리에 오게 하여 성가정을 닮은 가정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주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자녀로서 어버이에 대한 효행을 다하라고 권고한다. 특히 부모가 나이 들어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다하는 자녀들의 효행은 지은 죄도 상쇄해 줄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 공동체가 될 것을 호소한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가정생활에서 서로를 존중과 사랑으로 대할 줄 안다. 타인을 사랑과 존중으로 대할 때 그는 화해와 용서를 할 수 있으며, 모든 일에서 주님께 감사를 드릴 줄 알게 된다(제2독서). 피신하셨던 이집트에서 돌아오신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께서는 나자렛에 자리를 잡으신다. 이로써 구약의 예언인 ‘나자렛 사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께서는 철저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사셨기 때문에 성가정을 이루셨다(복음).
      제1독서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2-21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2-6.12-14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5.19-2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동아시아 전통에는 ‘사천’(事天)과 ‘사친’(事親) 사상이 있습니다. ‘사천’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고, ‘사친’은 어버이를 섬기는 행위입니다. 가정은 하늘이 맺어 준 혈연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극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갈수록 그 농도가 엷어지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섬길 줄 아는 자식은 어버이를 섬길 줄 압니다. 어버이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는 것이지요. 서로를 위하며 오순도순 모여 살았던 대가족 시대가 참 아름다운 전설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같은 핵가족에서는 조그마한 틈만 벌어져도 곧 부모가 이혼하고, 자녀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연로하신 조부모 손에 맡겨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족 안에서 사랑이라는 것, 서로를 섬긴다는 단어를 찾아보기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자식들은 부모를 욕되게 하는 패륜이 아주 흔하게 자행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패륜이 무엇입니까? 천륜마저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가정은 고통이나 시련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을 이겨 낸 가정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의 성가정도 인간적 갈등과 고뇌가 있었습니다. 다만 주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셨기에 성가정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성가정을 본받아, 하느님을 섬기고 가족을 사랑하는 성가정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Canto Gregoriano-Gloria X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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