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도 요한 축일”
1. 말씀읽기: 요한 20,2-9
2. 말씀연구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녀들은 즉시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요한과 베드로는 즉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달려가던 두 사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을까요?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안식일이 끝난 뒤에야 여인들은 향료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은 해가 지면 끝납니다. 하지만 그때 무덤으로 달려가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여인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서두르게 된 것입니다.
공관 복음서에 의하면 그녀는 무덤에 혼자 간 것이 아니라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와 함께 무덤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 마르코(16,2)에 따르면 향료를 사느라고 시간에 늦은 여자들이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에 이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여자들보다 앞서 왔습니다. 이 여인들은 서둘러서 치룬 예수님의 매장의 불완전함을 마무리하려고 향료를 들고 예수님을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 입구에 가보니 막아 놓았던 돌이 옆으로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의 수장인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은 마리아의 마음에 시신을 누군가가 훔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시신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근심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도착해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은 치워져 있었고, 그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즉시 제자들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다고,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몰랐지만 이것이 바로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의 행동이었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베드로와 요한은 즉시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들도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무덤으로 달려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했는데 부활하셨을까? 그런데 자신들의 눈앞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부활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베드로와 요한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무덤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두 사도가 곧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젊었던 요한이 먼저 무덤에 이르렀습니다. 요한 사도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이 사실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예수님을 쌌던 수의와 수건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베드로 사도를 향한 겸손의 표현(장유유서) 때문인 듯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수위권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권위를 요한 사도는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멋진 요한 사도의 모습입니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시몬 베드로는 도착하자마자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수의가 그곳에 놓여 있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가정(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 것)과 모순 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갔다면 수의와 수건도 다 가져 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그제야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부활을 믿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으뜸으로 세우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믿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그 증거를 보고 베드로 사도는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아마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요한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요한 사도. 십자가 아래에서 어머니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실 것임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것이기에 부족한 인간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하는 생각이 결국 그런 실수를 하게 만듭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깨달아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다. 부지런히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는 내가 되었으면 봅시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무덤으로 달려가는 사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빈 무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③ “보고 믿었다.”는 말씀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무엇을 보고 믿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보여줘야만 믿을까요?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한 나는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내가 알고 수긍하는 만큼 받아들일 때를 말 하는가?
아니면 내가 보고 만져보아 확신이 들 때 상태를 말하는가.
믿는다는 것.
믿음에는
이해도 수긍도 논리도 필요치 않으리라.
믿음은 그대로의 믿음이 아닌가.
보고 만져보고 맛보아도 믿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사도는 보고 믿었으니 복되다.
비 내리는 늦은 이 밤,
믿음이 없는 이 사람에게도 그런 은혜 주어져라
빌고 빈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라는 말씀에
외람되게도 안나는 웃음이 났다.
위로도 되었다.
그분들의 행위에 웃었다고 흉보지는 아니하시리라.
어쩌면 겸연쩍게 웃으시며 “우리도 그랬어요” 하시며
겸손으로 우리 손을 잡아 주시리라.
“괜찮아요 용기 잃지 말아요. 지금부터라도 결코 늦지 않았으니
천천치 천천히 시작하셔도돼요.”
우리가 지레 겁을 먹고 주저않지 않도록
한걸음씩 한걸음씩 하느님 아버지께 다가가신 그분들!
그분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음이고
그분들과 모두가 다르지 않음이 아닌가.
생명의 씨앗인 사랑이 있는 한 넘어지고 일어섬은 성숙의 수련이리라.
먼저 가신 분들의 길에 서서 감사드리는 아침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