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연중 제27주간 화요일(10/05)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한때 주님의 공동체를 박해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뵙고 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고,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제1독서). 마르타와 마리아는 자매로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마르타는 시중을 들었고, 마리아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섬기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고 하여 서로에게 핀잔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1,13-24 형제 여러분,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때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한때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하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을 보는 방법이 다릅니다. 특히 자연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어떤 이는 자연을 살려야 우리도 살 수 있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연을 개발해야만 인간도 살고 자연도 깨끗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게는 세상을 보는 것도 환경 보존과 자연 개발이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주신 바로 그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주님을 모시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듣는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분께 온몸을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받아들일 수 있으며, 받아들여야 실천할 수 있지요. 실천할 수 있다면 이는 곧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언하는 일이 되니, 바로 선교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는 자기 집에 주님을 모십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온몸으로 시중을 들고, 마리아는 열심히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문제는 어느 것이 중요하냐가 아니라, 서로 상대방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데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선적으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주님을 섬기는 것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암사슴이 시냇물을(Sicut cerv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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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7주간 화요일(10/05)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한때 주님의 공동체를 박해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뵙고 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고,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제1독서). 마르타와 마리아는 자매로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마르타는 시중을 들었고, 마리아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섬기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고 하여 서로에게 핀잔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1,13-24 형제 여러분,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때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한때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하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을 보는 방법이 다릅니다. 특히 자연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어떤 이는 자연을 살려야 우리도 살 수 있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연을 개발해야만 인간도 살고 자연도 깨끗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게는 세상을 보는 것도 환경 보존과 자연 개발이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주신 바로 그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주님을 모시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듣는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분께 온몸을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받아들일 수 있으며, 받아들여야 실천할 수 있지요. 실천할 수 있다면 이는 곧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언하는 일이 되니, 바로 선교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는 자기 집에 주님을 모십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온몸으로 시중을 들고, 마리아는 열심히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문제는 어느 것이 중요하냐가 아니라, 서로 상대방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데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선적으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주님을 섬기는 것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암사슴이 시냇물을(Sicut cervus)
    
    
    

  2. guest 님의 말: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에 봉사활동을 할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눈만 뜨면 성당에 가서 살다시피 하였지요
    이 단체 저 단체…
    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단체에서 봉사를 하였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상처도 많이 받고 즐거운 일도 많았습니다

    요즈음…
    예전에 봉사활동을 하느라 눈만 뜨면 성당에 갔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진정한 봉사는
    아니었던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맨쉽까지는 아니라도….
    정말로 봉사하고 자신의 영생을 위해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합니다
    반성도 되고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에
    우울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난 날을 회상하니 감회도 새롭고
    온전한 마음으로 정말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만은 ….
    아무런 사심도 없고 가식도 없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우치게 되니 기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요즈음 바빠서 봉사활동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신앙생활조차도
    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며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복음묵상을 합니다
    그리고 다짐해봅니다
    예전처럼 봉사한답시고 거만하고 교만하고 남에게 상처주고
    저 또한 상처를 받아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어리석은
    헬레나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복음묵상이라도 열심히 하여 당신의 말씀으로 행복한 헬레나가
    되어야 겠다고 기대해봅니다
    저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가지 당신 뿐이라는 사실을
    아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묵상하며

  3. guest 님의 말:


    저번주 부터 시작한 새학년은 정말 하나도 정신이 없습니다. 학교 수업은 물론, 각종 학교 행사와 친목 나누기 모임까지ㅋ 정말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시작하기 전에 세웠던 모든 계획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사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학생으로서 엄마, 아빠의 딸로서, 수 많은 것들을 다짐하고 계획하였지만, 실제로 실천 하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다르다고 하는데, 지금 제 상황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오늘의 복음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인의 모습이나, 의미없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 어떤 한 마음으로 어떠한 생각으로 내가 하느님과 만나고,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데, 보이는 모습, 결과로만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 계획과 마음가짐은 볼 수 가 없는 것 입니다. 아니, 하느님만이 알 수 가 있고, 느낄 수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제가 조금 만 더 노력하고, 하루에 5분이라도 조금만 더 하느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따르도록 노력한다면…

    하루하루 바쁘다는 것은 정말 핑계이고, 친구들하고 담소 나누는 시간, 밥 먹을 시간은 있는데, 왜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은 없고, 하느님을 생각하는 시간은 없는건지…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운 바울리나의 모습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바울리나가 흔들리지 않고 더 깊은 신앙 생활을 하고, 하느님을 언제나 믿고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더욱 하느님께 다가가고, 만나도록 해주세요. 하느님, 아버지, 언제나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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