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연중 제27주간 수요일(10/06)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이들에게 ‘위선에 빠졌다’고 질책한다. 그는 평생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기 때문에 이방인의 사도라고 불린다. 그는 복음 선포를 위하여 이방인을 찾아갔고, 이방인을 찾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이 온 세상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고, 모두가 아버지의 자녀답게 사는 법을 주님께 청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2,1-2.7-14 형제 여러분,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기도(祈禱)는 본디 제단 앞에 손을 도끼날처럼 모아서 빌며〔祈〕, 제단에 목숨〔禱〕을 맡기는 행위입니다. 하늘에 목숨을 맡길 정도로 온 정성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께 자신이 놓인 현실을 말씀드리고,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조용히 경청하는 행위이지요.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고 말합니다. 인간 사이의 대화를 기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영원한 것을 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사고 청합니다. 사실 주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은 이미 기도 속에 머물러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주님과 날마다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제자들이 보기에는, 세례자 요한과 그 문하생들이 바치는 거창한 행위가 곧 올바른 기도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청을 들으시고는, 우리가 즐겨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의 내용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일상에서 욕심을 내지 않으며 사랑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일상의 생활을 사랑의 삶으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와 욕망만 채우려 들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국 위선적인 바리사이들과 똑같아집니다. 이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올바른 기도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국악미사곡 둘 -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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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7주간 수요일(10/06)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이들에게 ‘위선에 빠졌다’고 질책한다. 그는 평생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기 때문에 이방인의 사도라고 불린다. 그는 복음 선포를 위하여 이방인을 찾아갔고, 이방인을 찾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이 온 세상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고, 모두가 아버지의 자녀답게 사는 법을 주님께 청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2,1-2.7-14 형제 여러분,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기도(祈禱)는 본디 제단 앞에 손을 도끼날처럼 모아서 빌며〔祈〕, 제단에 목숨〔禱〕을 맡기는 행위입니다. 하늘에 목숨을 맡길 정도로 온 정성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께 자신이 놓인 현실을 말씀드리고,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조용히 경청하는 행위이지요.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고 말합니다. 인간 사이의 대화를 기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영원한 것을 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사고 청합니다. 사실 주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은 이미 기도 속에 머물러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주님과 날마다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제자들이 보기에는, 세례자 요한과 그 문하생들이 바치는 거창한 행위가 곧 올바른 기도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청을 들으시고는, 우리가 즐겨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의 내용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일상에서 욕심을 내지 않으며 사랑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일상의 생활을 사랑의 삶으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와 욕망만 채우려 들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국 위선적인 바리사이들과 똑같아집니다. 이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올바른 기도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국악미사곡 둘 -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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