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롤로 보로메오는 153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비오 4세 교황이 그의 외삼촌이다.
믿음 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일찍부터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사제가 된 뒤에는 교회 개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560년 추기경과 밀라노 대주교가 된 그는 주교직 쇄신에
앞장선 가톨릭 개혁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1584년 11월 세상을 떠난
그는 1610년 11월 바오로 5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자신의 태생과 환경을 진술한다.
그리고 종전까지 자신에게 이롭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양’과 ‘되찾은 은전’의 비유로
당신의 지상 과제를 설명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복음).
제1독서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3,3-8ㄱ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10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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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11/04)
가롤로 보로메오는 153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비오 4세 교황이 그의 외삼촌이다. 믿음 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일찍부터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사제가 된 뒤에는 교회 개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560년 추기경과 밀라노 대주교가 된 그는 주교직 쇄신에 앞장선 가톨릭 개혁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1584년 11월 세상을 떠난 그는 1610년 11월 바오로 5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자신의 태생과 환경을 진술한다. 그리고 종전까지 자신에게 이롭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양’과 ‘되찾은 은전’의 비유로 당신의 지상 과제를 설명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복음).
제1독서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3,3-8ㄱ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10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신부님이 교도소의 교정 사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교정 사목을 ‘수인’(囚人) 사목이라 불렀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은 여러 신부님들 앞에서 요즘 교정 사목의 어려움을 하소연합니다. 수인들 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그들에 대한 관심도 예전 같지 않고, 교정 사목에 기탁하던 후원금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하소연을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죄책감 같은 것이 밀려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감옥에 갇혀 지내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가끔씩 기도는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는 그런 죄책감 말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주님께 트집을 잡고 시비를 겁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그러자 주님께서는 ‘되찾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짐짓 의인인 체, 경건한 체하는 자들에 대한 강한 질책의 말씀입니다. 참목자이신 주님께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기쁘게 집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은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잘못된 길로 빠져서 엉뚱한 길로 가는 양을 찾아 나서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랑과 자비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회개는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신 주님께 온몸을 돌려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고백하고 보여 주는 삶입니다.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
요 며칠동안…
감기몸살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손가락 하나도 제힘으로
만지지 못할정도로 …
몸이 아프니 짜증도 나고 지치고 복음묵상을 해야지
마음을 먹었지만 눈도장만 찍고 묵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치니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어제 본당에서 성지순례를 가는데 함께 가자는 친구의 전화에
바빠서 가지 못한다고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루도 내 마음대로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하엿지요
하지만 새롭게 마음을 다 잡으며 기쁘게 지내야지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수 있다는 희망으로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말씀에 위로를 받으며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을 추수려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힘들고 지친 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당신을 믿고
따르면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살게 하소서
그리고요 주님!
참을성 없고 경솔하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저의 허물을 고쳐주소서
미움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묵상하며
♬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1. 말씀읽기: 루카 15,1-10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 18,12-14)
되찾은 은전의 비유
2. 말씀연구
잃었던 양 한 마리와 잃었던 은전을 찾고 기뻐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드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못 마땅히 여기며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고,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남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내가 바로 죄인이니 하느님께서는 나의 회개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세리들도 있었고, 죄인들도 있었습니다. 이 죄인들은 율법학자들이 보기에 율법을 못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의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세리는 탐욕과 부정의 대명사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여 로마인들에게 바치고 있으니 역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접촉에 의해서도 부정해진다고 생각했기에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누구나 받아들여주시고,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해 주십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예수님께로 모여 드는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나를 반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반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이들은 왜 예수님을 비난할까요?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려서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셔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든 사람들을 이미 죄인으로 단정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율법학자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세리들이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들을 무시했지만, 그래서 죄인 취급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당신께 오는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두 가지의 비유를 이야기 하십니다. 이 두 가지 비유 안에서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양을 백 마리나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광야를, 계곡을 누빕니다. 당시에는 짐승들이 구멍이나 우물에 빠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입니다.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이 양을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의 주인은 끝내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백 마리나 양이 있는 그 부자에게 한 마리 양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인은 길 잃은 양에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리도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함께 기뻐해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길 잃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내가 믿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내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회개한 죄인이 죄에 빠지지 않았던 의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의인 아흔 아홉은 언제나 하느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지만, 길을 벗어난 한명의 죄인은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녀가 회개를 하니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렇다고 큰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이 여자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큰 돈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에게 있어서 열 닢의 동전은 전 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은전 한 닢은 하루의 노동의 대가가 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과 같은 액수인 듯 합니다.
이 부인이 은전 한 닢을 찾고자 하는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의 길을 밝혀 주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까지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이 여인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잃어버렸던 은전을 찾았기에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하시면서 느끼시는 기쁨이 바로 이런 기쁨입니다. 그들이 바로 잃었던 양이고, 그들이 바로 잃었던 은전입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이웃”(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함께 기뻐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하고, 예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도 사랑밖에는 몰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길 잃은 양이 목자를 만났을 때의 기쁨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내가 목자가 아니라 무리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이라면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혹시 무관심하고 있었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내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그리고 그런 상황을 어떻게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형제들이 형제들에게, 공동체가 각 개인에게…,
③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