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1/10)


    한 해는 우리 삶의 여정에서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1년 동안 사계절의 변화가 계속되듯, 우리는 1년을 주기로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맺기를 반복해 나간다. 교회는 이러한 주기적 시간의 흐름에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담아 이를 기념하며 경축한다. 이를 ‘전례주년’이라고 한다. 교회는 전례주년을 통해 “강생과 성탄에서부터 승천, 성령 강림 날까지, 또 복된 희망을 품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펼친다”(전례 헌장 102항). 전례주년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대축일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이다. 이 두 대축일을 기점으로 대림 시기, 성탄 시기, 사순 시기, 부활 시기가 배치되어 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이 네 시기 외에, 1년에 33주간 또는 34주간이 남는데, 이 시기가 ‘연중 시기’이다. 교회력으로 볼 때 새로운 전례주년의 시작은 대림 시기부터이다. 그래서 연중 시기는 성탄시기가 끝나는 공현 후 마지막 날인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연중 제1주간’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시기까지 연중 시기가 중단되었다가, 부활 시기가 끝나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날부터 다시 이어져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연중 시기는 끝이 난다. 연중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직접 관련된 다른 시기처럼 특정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면서 하느님과 만남을 준비하는 시기로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의 공생활과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경축한다. 연중 시기에 다양한 축일을 많이 지내는데, 특히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도 이 시기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연중 시기 동안 사제는 생명의 기쁨과 희망을 나타내는 ‘녹색 제의’를 입는다.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는 바오로 사도의 편지 형식과는 달리, 처음부터 장엄한 강론 형식을 띠고 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을 이제는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역할을 제시해 주심으로써, 구원의 역사에 그분께서 자리하고 계심을 드러내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며 본격적으로 당신의 구원 사업을 시작하시려고 제자들을 부르신다. 예수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즉시 그분을 따라나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시작입니다.1,1-6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외국의 한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사람이 대학에 교수직을 찾고 있었습니다. 적당한 대학의 교수로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그는 꼭 일류 대학의 교수직을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명예도 있겠지만, 유능한 제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좋은 연구 성과를 내려면 능력 있는 제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승이라면 누구나 유능한 제자를 두기를 바랄 것입니다. 자신의 사상이든 기술이든, 능력 있는 제자가 물려받아 계승해 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다르셨습니다.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의 능력도, 배경도 묻지 않으십니다. 그저 ‘보시고’ 당신의 제자로 삼으십니다. 그분께는 어부든 세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우리의 능력 때문에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한발 더 나아가, 교회의 봉사자나 사제나 수도자로 부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자신이 가진 재능과 배경들을 오히려 쓰레기로 여겼습니다(필리 3,8 참조). 우리가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내세울 때’는 자기 자신의 일을 하지만, 오히려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의 약함을 자랑할 때’ (2코린 11,30 참조)는 주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봉사자로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저는 부족한 죄인일 뿐이지만,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하는 겸손한 응답이면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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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주간 월요일(1/10)


      한 해는 우리 삶의 여정에서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1년 동안 사계절의 변화가 계속되듯, 우리는 1년을 주기로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맺기를 반복해 나간다. 교회는 이러한 주기적 시간의 흐름에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담아 이를 기념하며 경축한다. 이를 ‘전례주년’이라고 한다. 교회는 전례주년을 통해 “강생과 성탄에서부터 승천, 성령 강림 날까지, 또 복된 희망을 품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펼친다”(전례 헌장 102항). 전례주년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대축일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이다. 이 두 대축일을 기점으로 대림 시기, 성탄 시기, 사순 시기, 부활 시기가 배치되어 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이 네 시기 외에, 1년에 33주간 또는 34주간이 남는데, 이 시기가 ‘연중 시기’이다. 교회력으로 볼 때 새로운 전례주년의 시작은 대림 시기부터이다. 그래서 연중 시기는 성탄시기가 끝나는 공현 후 마지막 날인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연중 제1주간’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시기까지 연중 시기가 중단되었다가, 부활 시기가 끝나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날부터 다시 이어져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연중 시기는 끝이 난다. 연중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직접 관련된 다른 시기처럼 특정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면서 하느님과 만남을 준비하는 시기로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의 공생활과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경축한다. 연중 시기에 다양한 축일을 많이 지내는데, 특히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도 이 시기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연중 시기 동안 사제는 생명의 기쁨과 희망을 나타내는 ‘녹색 제의’를 입는다.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는 바오로 사도의 편지 형식과는 달리, 처음부터 장엄한 강론 형식을 띠고 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을 이제는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역할을 제시해 주심으로써, 구원의 역사에 그분께서 자리하고 계심을 드러내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며 본격적으로 당신의 구원 사업을 시작하시려고 제자들을 부르신다. 예수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즉시 그분을 따라나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시작입니다.1,1-6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외국의 한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사람이 대학에 교수직을 찾고 있었습니다. 적당한 대학의 교수로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그는 꼭 일류 대학의 교수직을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명예도 있겠지만, 유능한 제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좋은 연구 성과를 내려면 능력 있는 제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승이라면 누구나 유능한 제자를 두기를 바랄 것입니다. 자신의 사상이든 기술이든, 능력 있는 제자가 물려받아 계승해 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다르셨습니다.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의 능력도, 배경도 묻지 않으십니다. 그저 ‘보시고’ 당신의 제자로 삼으십니다. 그분께는 어부든 세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우리의 능력 때문에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한발 더 나아가, 교회의 봉사자나 사제나 수도자로 부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자신이 가진 재능과 배경들을 오히려 쓰레기로 여겼습니다(필리 3,8 참조). 우리가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내세울 때’는 자기 자신의 일을 하지만, 오히려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의 약함을 자랑할 때’ (2코린 11,30 참조)는 주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봉사자로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저는 부족한 죄인일 뿐이지만,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하는 겸손한 응답이면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부르심
    
    
    

  2. guest 님의 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을 따르라하신 말씀에 아버지 제배대오와 삯군들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나선 시몬과 그의 생 안드레아의 용기가….
    아니!
    그들의 믿음이 부러웠습니다
    저 였으면?
    당신을 따라 갔을까?
    저의 믿음은 어느정도일까?
    상상을 해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상을 하고 또 해봐도
    저는 저의 용기는 저의 믿음은 형편없음을 고백합니다
    남들의 신앙은 평가도 잘하고 제 멋대로…
    과소평가를 하지요
    자신만이 대단한 신앙인인 척하며…..
    하지만 저는 잘 압니다
    저의 믿음이 저의 신앙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어느 때는 조금만 잘한다고 생각하면 과대평가하면서
    자신이 얼청난 신앙인인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당신사랑운운하면서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같아 부끄럽지만 그럴듯하게 포장을 잘하고 삽니다
    얼굴의 잡티와 주름과 이런저런 흉터를 감쪽같이 감춘 것처럼
    저의 변장술은 마술사를 능가하지요
    빈 수레만 요란한 헬레나의 모습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너무도 부끄럽고 죄스러워
    고개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

    하지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새해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행동으로 마음으로 지키려는 생각입니다
    하나 하나 차근차근 잘못 된 점을 고치고 부족한 점을 다듬고^*^
    생각만으로도 기쁘고 희망이 보이는 것같아 행복합니다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같아 ^*^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말씀을 성찰하며
    좌절하지 않으며 기쁜마음으로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아멘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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