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는 3세기 중엽 이집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는 복음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광야에서 생활하였다.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르자, 수도원을 세우고,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크나큰 극기와 희생의 삶을 살았다.
전승에 따르면, 안토니오 아빠스 성인은
105세까지 살다가 356년 광야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말씀의 초대
구약의 대사제는 자신과 백성을 위하여 예물과 제물을 바치고,
하느님께서 계시하시는 법과 바른길로 사람들을 이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제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선택받은 영원한 대사제로서,
그분께 순종하는 모든 이의 구원자가 되심을 밝힌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신다.
그 시간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비유되는
기쁨의 시간이기에 단식이 필요 없다.
그러나 당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당신의 제자들도 단식할 것임을 예고하신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5,1-10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8-22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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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1/17)
안토니오는 3세기 중엽 이집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는 복음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광야에서 생활하였다.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르자, 수도원을 세우고,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크나큰 극기와 희생의 삶을 살았다. 전승에 따르면, 안토니오 아빠스 성인은 105세까지 살다가 356년 광야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말씀의 초대
구약의 대사제는 자신과 백성을 위하여 예물과 제물을 바치고, 하느님께서 계시하시는 법과 바른길로 사람들을 이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제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선택받은 영원한 대사제로서, 그분께 순종하는 모든 이의 구원자가 되심을 밝힌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신다. 그 시간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비유되는 기쁨의 시간이기에 단식이 필요 없다. 그러나 당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당신의 제자들도 단식할 것임을 예고하신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5,1-10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8-22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에게 육체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정신적인 수련을 통해서 이겨 나가고, 이와 반대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는 육체적인 수련을 통해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가령 우울증이라든가, 여러 가지 정신적인 복잡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정신적인 방법으로 풀려고 하기보다, 육체적인 활동이나 수련을 통해 오히려 정신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로서 단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안고 사는 온갖 집착과 탐욕, 이기심, 시기, 질투 등 정신적 문제를 정신적인 방법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비워 내는 단식이라는 육체적 수련을 통하여 우리의 내면이 정화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세속적 탐욕으로 허기진 우리 정신을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로 채울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사이의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적어도 그분과 함께 있는 동안은 예수님에게서 얻어 누리는 하늘 나라 잔치의 기쁨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해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누리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단식도 육체적 고행이 목적이 아닙니다. 신앙인으로서 이런 기쁨과 평화를 살고자 행하는 작은 육체적 수련이 단식인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은 이 말씀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아 잠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희망의 신묘년이 밝아 왔는데도 아직 작년에 하던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삶이란 어제의 연속이고 그냥 살아오던 습성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해에는 예전에 갖고 있던 나쁜 습관들은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좋은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도 “아무도 헌 가죽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는다. 그러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하셨는데
저는 아무래도 헌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고 있는가 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나쁜 습관 중 꼭 버리고 싶은게 몇 가지 있습니다.
게으름과 과거지향주의, 그리고 정리정돈의 부족함, 그리고 무계획적인 소비생활 등등..
하나 둘 엉크러진 솜타레처럼 줄줄이 앞다투어 나오는 나쁜 습관들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대책이 안섭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손 놓고 있을수 만은 없다 싶어 그 대책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그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법도 알 수 있다 하였듯이, 이제부터는 하나 둘 버릇을
고쳐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우선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시작한 신약성경 필사를 올 한 해동안 꼭 마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시작하려고 할때는 감히 엄두가 나질 않았었지만, 이제는 제법 좋은 습관으로
자리매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기도 하지만, 짜투리 시간이 생기면 제일먼저 성경쓰기 노트를 찾아
단 몇 줄씩이라도 필사하고 나면 여간 기쁜게 아니더라구요,
그전 같았으면 엉뚱한 상상을 한다거나 바보상자를 쳐다보고 있었을 시간에 금쪽같은
성경을 필사 했다는 자부심이 어깨가 절로 으쓱해 진답니다.
이렇게 공포를 해 놓아야지 자칫 게을러지고 쓰기 싫어지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을것 같아서 저의 작은 다짐과 같은 계획을 주절주절 적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저 루실라가 새로 시작한 신약성경필사를 기쁘고 즐겁게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또한 인내와 끈기를 주소서. 아멘.
♬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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