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연중 제2주간 수요일(1/19)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예표로서 멜키체덱의 사제 직분을 거론한다.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처럼 사제직을 이어 주는 육적인 혈통도, 율법의 규정도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에 의해서 선택되셨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은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였다. 율법 본디의 정신을 묻는 질문이다(복음).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7,1-3.15-17 형제 여러분,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인도에서 원숭이 잡는 법’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냥꾼이 목이 가는 두꺼운 유리병에 땅콩을 넣고 원숭이들이 노는 숲속에 설치해 둡니다. 그러면 원숭이들이 와서 병에 손을 넣어 그 속에 있는 땅콩을 움켜잡고는 손을 빼지 못합니다. 나중에 사냥꾼들이 다가와도 손을 펴서 도망치면 될 텐데, 땅콩을 움켜잡은 손을 펴지 않으려다 결국 잡히고 맙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는 마치 우둔한 원숭이의 이야기를 연상케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치유는 그저 오그라든 손 정도를 펴는, 예수님의 기적들 가운데 가장 작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치 큰 기적이라도 행하시는 것처럼,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중 한가운데로 불러 내시고, 그것도 안식일에 그의 손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치유의 목적은 다른 데 있어 보입니다. 유다인들의 율법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스스로를 구속하는 족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특별히 안식일과 관련해서는 39개나 되는 금지 조항이 붙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종교적 생각과 태도는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었습니다. 율법이 주는 본디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문자에만 얽매여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오그라든 손을 펴시며 여기에 도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우둔한 원숭이처럼 묶여 있는 ‘너희의 옹졸한 마음과 오그라든 손을 펴라.’는 것입니다. 손을 펴야 하느님의 은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옹졸한 마음을 버려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작은 기적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큰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비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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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주간 수요일(1/19)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예표로서 멜키체덱의 사제 직분을 거론한다.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처럼 사제직을 이어 주는 육적인 혈통도, 율법의 규정도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에 의해서 선택되셨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은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였다. 율법 본디의 정신을 묻는 질문이다(복음).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7,1-3.15-17 형제 여러분,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인도에서 원숭이 잡는 법’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냥꾼이 목이 가는 두꺼운 유리병에 땅콩을 넣고 원숭이들이 노는 숲속에 설치해 둡니다. 그러면 원숭이들이 와서 병에 손을 넣어 그 속에 있는 땅콩을 움켜잡고는 손을 빼지 못합니다. 나중에 사냥꾼들이 다가와도 손을 펴서 도망치면 될 텐데, 땅콩을 움켜잡은 손을 펴지 않으려다 결국 잡히고 맙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는 마치 우둔한 원숭이의 이야기를 연상케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치유는 그저 오그라든 손 정도를 펴는, 예수님의 기적들 가운데 가장 작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치 큰 기적이라도 행하시는 것처럼,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중 한가운데로 불러 내시고, 그것도 안식일에 그의 손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치유의 목적은 다른 데 있어 보입니다. 유다인들의 율법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스스로를 구속하는 족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특별히 안식일과 관련해서는 39개나 되는 금지 조항이 붙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종교적 생각과 태도는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었습니다. 율법이 주는 본디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문자에만 얽매여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오그라든 손을 펴시며 여기에 도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우둔한 원숭이처럼 묶여 있는 ‘너희의 옹졸한 마음과 오그라든 손을 펴라.’는 것입니다. 손을 펴야 하느님의 은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옹졸한 마음을 버려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작은 기적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큰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비움 노래
    
    
    

  2. guest 님의 말:

    “손을 뻗어라.”

    주님!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산란했던 마음을 복음묵상으로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으로 당신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움추렸던 저의 몸과 마음까지 모두 다….
    “오늘하루도 무사히”
    오늘따라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딛는 심정이지요
    우환만 없으면 좋을텐데….
    예전에는 물질만 풍부하면 모든 걱정이 없을 줄알았습니다
    요즈음….
    눈만뜨면 아니!
    저만 보면 아프다고 하는 남편을 보면서 저의 몸과 마음까지
    아픈 것같아 산란합니다
    복음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면서도 머릿 속에는 걱정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손을 뻗어라.”
    말씀을 성찰하며
    큰 보물인 것처럼 움켜지고 있는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
    재물욕과 나쁜습관 등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아멘

    , “손을 뻗어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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