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1567년 이탈리아 사보이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파리에서 철학과 신학을 배우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가 되었고, 선교사로도 활동하였다.
1602년 35세의 나이에 그는 제네바 교구장 주교가 되어 사도적 열성으로
종교 개혁의 혼란기를 잘 극복하였고, 온화한 성품으로 신자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1665년에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죽음은 새 계약과 관계된다.
구약의 계약과 관계되는 예식의 모든 요소는 하늘에 있는 실체의 모상들이다.
대사제들은 백성의 죄를 속죄하려고 지성소로 들어갔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으로 참된 성소인 하늘에 들어가셨다(제1독서).
성령의 힘은 죄인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사람이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성령을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면 더 이상 용서받을 수 없게 된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9,15.24-28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곧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탄은 끝장나게 될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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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1/24)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1567년 이탈리아 사보이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파리에서 철학과 신학을 배우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가 되었고, 선교사로도 활동하였다. 1602년 35세의 나이에 그는 제네바 교구장 주교가 되어 사도적 열성으로 종교 개혁의 혼란기를 잘 극복하였고, 온화한 성품으로 신자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1665년에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죽음은 새 계약과 관계된다. 구약의 계약과 관계되는 예식의 모든 요소는 하늘에 있는 실체의 모상들이다. 대사제들은 백성의 죄를 속죄하려고 지성소로 들어갔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으로 참된 성소인 하늘에 들어가셨다(제1독서). 성령의 힘은 죄인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사람이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성령을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면 더 이상 용서받을 수 없게 된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9,15.24-28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곧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탄은 끝장나게 될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루살렘에서 율법 학자들이 내려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갑니다. 사람들의 궁금증은 도대체 예수님이란 분이 어떤 분이신지 율법 학자들에게서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엄청난 기적들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하여 율법 학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고”(마태 9,33),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 7,46). 당시 정통성과 권위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예루살렘 출신 율법 학자들에게는 이 말이 수치스럽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다가옵니다. 예수님 자체가 가난한 나자렛 출신인 데다가, 그의 제자들도 고기나 잡아 연명하던 무식한 어부들이요, 세리들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갈릴래아란, 예로부터 ‘이방인들의 지역’이요, 변방의 ‘멸시받던 곳’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게 된 곳’(요한 7,52 참조)입니다.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은 권위가 있고, 그분의 기적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하늘에서 왔다고 할 수도 없고, 그분의 신분이 예언자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체면과 권위가 손상되지 않으려면 사람들에게 뭔가 답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찾아낸 답이, 예수님은 ‘베엘제불이라는 마귀에 들린 사람’이고, 이 ‘마귀 두목의 힘’으로 기적을 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분이 주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얼마나 무서운 말을 하는지요? 우리도 체면과 위신 때문에 이런 거짓 증언을 한 적은 없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