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연중 제8주간 목요일(3/03)


    말씀의 초대
    집회서 저자는 온갖 만물을 통하여 주님의 업적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미하고 경탄한다.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있으며, 주님을 벗어날 수도, 넘어설 수도 없음을 고백한다(제1독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수님을 간절히 부르며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치유받고자 하는 의지를 보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42,15-25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찬란한 태양은 만물을 내려다보고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에게조차 당신의 온갖 놀라운 업적을 묘사할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 놀라운 업적을 세우시어 만물을 당신 영광 안에 굳게 자리 잡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깊은 바다와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그 술책을 꿰뚫어 보신다. 사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온갖 통찰력을 갖추시고 시대의 표징을 살피신다. 그분께서는 지나간 일과 다가올 일을 알려 주시고 숨겨진 일들의 자취를 드러내 보이신다.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마디도 숨길 수 없다. 당신 지혜의 위대한 업적을 질서 있게 정하신 주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같은 한 분이시다. 그분에게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으며 어떤 조언자도 필요 없다. 그분의 업적은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 이 모든 것이 살아 있고 영원히 지속되며 그분께서 필요하실 때는 만물이 그분께 순종한다. 만물은 서로 마주하여 짝을 이루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어느 것도 불완전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좋은 점을 돋보이게 하니 누가 그분의 영광을 보면서 싫증을 느끼겠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46ㄴ-5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바르티매오가 예수님께 바란 것은 ‘한 푼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거지 근성 가운데 ‘자기 연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특히 자신의 장애에 대하여 스스로 연민에 빠져 있거나, 그 장애를 남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생존을 도모하는 무기의 하나로 사용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거지는 단순히 물질적인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장애를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극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장애 뒤에 숨어서 그 장애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르티매오는 달랐습니다.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 던진 것을 뜻합니다. 심한 일교차의 기후를 가진 이스라엘에서 당시 겉옷은 생활의 필수품이었고, 신분을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바르티매오의 이런 행동은 전적인 믿음의 표현이면서, 자기 연민에 갇힌 거지 신분을 벗어 던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눈을 뜨고 현실을 똑바로 보며 사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성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르티매오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자신의 약함과 죄스러운 상처만 붙들고 자기 연민에만 빠져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기 있게 툭툭 털고 일어나 주님께 자비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건강한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눈을 뜨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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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8주간 목요일(3/03)


      말씀의 초대
      집회서 저자는 온갖 만물을 통하여 주님의 업적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미하고 경탄한다.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있으며, 주님을 벗어날 수도, 넘어설 수도 없음을 고백한다(제1독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수님을 간절히 부르며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과 치유받고자 하는 의지를 보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42,15-25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찬란한 태양은 만물을 내려다보고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에게조차 당신의 온갖 놀라운 업적을 묘사할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 놀라운 업적을 세우시어 만물을 당신 영광 안에 굳게 자리 잡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깊은 바다와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그 술책을 꿰뚫어 보신다. 사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온갖 통찰력을 갖추시고 시대의 표징을 살피신다. 그분께서는 지나간 일과 다가올 일을 알려 주시고 숨겨진 일들의 자취를 드러내 보이신다.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마디도 숨길 수 없다. 당신 지혜의 위대한 업적을 질서 있게 정하신 주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같은 한 분이시다. 그분에게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으며 어떤 조언자도 필요 없다. 그분의 업적은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 이 모든 것이 살아 있고 영원히 지속되며 그분께서 필요하실 때는 만물이 그분께 순종한다. 만물은 서로 마주하여 짝을 이루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어느 것도 불완전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좋은 점을 돋보이게 하니 누가 그분의 영광을 보면서 싫증을 느끼겠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46ㄴ-5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바르티매오가 예수님께 바란 것은 ‘한 푼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거지 근성 가운데 ‘자기 연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특히 자신의 장애에 대하여 스스로 연민에 빠져 있거나, 그 장애를 남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생존을 도모하는 무기의 하나로 사용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거지는 단순히 물질적인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장애를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극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장애 뒤에 숨어서 그 장애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르티매오는 달랐습니다.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 던진 것을 뜻합니다. 심한 일교차의 기후를 가진 이스라엘에서 당시 겉옷은 생활의 필수품이었고, 신분을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바르티매오의 이런 행동은 전적인 믿음의 표현이면서, 자기 연민에 갇힌 거지 신분을 벗어 던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눈을 뜨고 현실을 똑바로 보며 사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성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르티매오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자신의 약함과 죄스러운 상처만 붙들고 자기 연민에만 빠져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기 있게 툭툭 털고 일어나 주님께 자비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건강한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눈을 뜨게하소서
    
    
    

  2. guest 님의 말: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예리고의 소경의 믿음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저의 부족한 믿음이 반성이 되었지요
    “눈뜬 장님”
    눈은 뜨고 있지만 예리고의 소경만도 못한 저의 눈
    생각도 믿음도 사랑도 모두 다…
    내세울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보여지는 것에 연연하며 섣부른 판단으로 언제나
    자신의 판단이 가장 옳은 것처럼 생각하고…
    겸손과 순명과 희생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훈장처럼 생각하는 교만과 이기심 게으름 등
    수 없이 많은 단점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버릴 줄도 모르고
    보물처럼 껴 않고 있으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지요
    그러면서도 남의 허물은 얼마나 잘 들추어 내는지,,,
    감싸주지도 못하는 사랑이 없는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성찰하며
    밝고 맑은 눈을 갖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의 죄를 보지 마시고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사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리라
    굳게 믿으며 예리고의 소경처럼 저에게도 제대로
    볼수 있는 은총주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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