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사순 제1주간 월요일(3/14)


    말씀의 초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모세가 말한 거룩한 삶이란,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모세가 가르친 수많은 계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헐벗은 이를 당신과 동일시하신다. 특별히 병들고 가난한 이들,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에게 사랑을 촉구하고 계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19,1-2.11-18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귀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바로 ‘당신’이시라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지나쳤던 가난한 이들이 예수님 당신 모습이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을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분이 되셨습니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는, 헐벗고 굶주린 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 속의 수많은 성인들이 바로 이 말씀 때문에,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일생을 바쳤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온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모시고 사는 ‘주님’이 우리 삶 안에 계셔야 합니다. 방에 십자고상만 있다고 주님을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주님을 부르며 기도한다고 해서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보다 못한 작은 이들과 친구가 되어 줄 때 비로소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가난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으로도 부족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섬겨야만 그들이 내가 모시고 사는 ‘주님’이 됩니다. 우리는 삶에서 주로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요? 그리고 왜 그들을 만나는지요? 그 만남에서 우리 자신이 섬기는 가난한 이웃은 얼마나 되는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 사랑안에 하느님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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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1주간 월요일(3/14)


      말씀의 초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모세가 말한 거룩한 삶이란,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모세가 가르친 수많은 계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헐벗은 이를 당신과 동일시하신다. 특별히 병들고 가난한 이들,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에게 사랑을 촉구하고 계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19,1-2.11-18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귀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바로 ‘당신’이시라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지나쳤던 가난한 이들이 예수님 당신 모습이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을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분이 되셨습니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는, 헐벗고 굶주린 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 속의 수많은 성인들이 바로 이 말씀 때문에,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일생을 바쳤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온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모시고 사는 ‘주님’이 우리 삶 안에 계셔야 합니다. 방에 십자고상만 있다고 주님을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주님을 부르며 기도한다고 해서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보다 못한 작은 이들과 친구가 되어 줄 때 비로소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가난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으로도 부족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섬겨야만 그들이 내가 모시고 사는 ‘주님’이 됩니다. 우리는 삶에서 주로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요? 그리고 왜 그들을 만나는지요? 그 만남에서 우리 자신이 섬기는 가난한 이웃은 얼마나 되는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 사랑안에 하느님 사랑이
    
    
    

  2. guest 님의 말: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
    장례미사 때마다 듣게 되는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믿음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데……..
    그 믿음이란 사랑과 정의의 실천을 얼마만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해왔는지에 따라 심판을 하실 것이라고…..

    하지만
    당신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저이기에 두렵습니다
    사실 이론으로야 이해도 되고 노력하면 잘 될 것 같기도 하지요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이 저의 특기이자 삶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제가 그렇게 못된 사람인가?하는 교만한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요?주님!

    정말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십자가입니다
    입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자신이 있는데...
    저에게는 십자가가 한 두 개도 아니고 엄청 많다는 생각에
     두렵고 무섭기까지 한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녹녹치 않으니
    영생을 얻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인들만 가는 영생의 길을 제가 감히 어떻게 기대를 할수 있는지...
    두렵습니다 
    입으로만 당신을 찬미하고 입으로만 봉사하고 입으로만
    하라면 무엇이든지 자신있는데... 
    저의 마음보가 이러하니... 

    “너희는 잔치를 베풀 때에 가난한 사람,불구자,절름발이,소경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이다(루가 14,13-14)
    말씀도 머리로만 이해가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몇 십년 했어도 당신의 말씀을 깨닫기에는
    세속의 삶이 뼛속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지요
    복음묵상을 몇 년동안 했어도 아직은 당신의 말씀을 깨닫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에 우울합니다
    언제쯤이면 당신의 말씀을 가슴으로 알아 들을 수 있는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올 사순시기동안 당신의 말씀을 가슴으로 깨닫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복음묵상도 열심히 하며 신앙생활도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당신의 자녀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이 되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 지금이 바로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로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아멘

    ♬ 우리 사랑안에 하느님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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