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사순 제3주간 금요일(4/01)


    말씀의 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아시리아도, 인간의 능력으로 만든 어떤 것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하며 백성들을 꾸짖는다.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로지 연민과 사랑을 가지신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전한다(제1독서). 이스라엘 모든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사랑의 실천이 하느님께 바치는 진정한 예배이다(복음).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삶 속에서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늘 찾고 있는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도 없는 하느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요?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하느님께서는 신선처럼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체험되시는 분입니다.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 영혼과 육신이 지쳐 있는 벗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때 사랑이 생겨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사랑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오로지 관계 속에서만 그 실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늘 이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사랑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관념적 사랑일 따름입니다. 한편으로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에로스적인 사랑에만 머물게 됩니다. 나와 이웃과 하느님에 이르는 삼각형의 구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곳은 바로 내가 만나는 이웃과 맺는 관계 안에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진실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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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3주간 금요일(4/01)


      말씀의 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아시리아도, 인간의 능력으로 만든 어떤 것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하며 백성들을 꾸짖는다.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오로지 연민과 사랑을 가지신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전한다(제1독서). 이스라엘 모든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사랑의 실천이 하느님께 바치는 진정한 예배이다(복음).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삶 속에서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늘 찾고 있는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도 없는 하느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요?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하느님께서는 신선처럼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체험되시는 분입니다.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 영혼과 육신이 지쳐 있는 벗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때 사랑이 생겨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사랑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오로지 관계 속에서만 그 실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늘 이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사랑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관념적 사랑일 따름입니다. 한편으로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에로스적인 사랑에만 머물게 됩니다. 나와 이웃과 하느님에 이르는 삼각형의 구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곳은 바로 내가 만나는 이웃과 맺는 관계 안에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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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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