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연중 제20주간 수요일(8/17)


    말씀의 초대
    요탐은 아비멜렉이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에게 우화적 표현으로 연설한다. 우화를 통해 요탐은 왕정 제도가 쓸데없음을 전하며 격렬하게 비판한 다음, 자기 형 아비멜렉을 피하여 브에르로 도망간다(제1독서). 하늘 나라는 부르심을 받은 시각이 아니라 부르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이른 아침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오후 다섯 시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다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주님께서는 어느 때이든 부르심에 응답하는 그 자체를 소중히 보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9,6-15 그 무렵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요탐에게 전하자, 그는 그리짐 산 꼭대기에 가 서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스켐의 지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그대들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포도나무에게 ‘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피정 강의에 초대받아 이해인 수녀님이 계시는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누구나 한번쯤은 수녀님 글을 읽거나 들어 보았을 정도로 교회 안팎으로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그날은 수녀님이 경비실에서 안내를 보는 소임을 맡은 날이었습니다. 오전 내내 경비실을 지키며 몇 편의 시를 쓰셨다며 행복해하셨습니다. 우리는 수도자들도 그가 가진 유명세나 능력만큼 특별한 대접이나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는 데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한 일이 크든 작든, 수도 생활을 오래 했든 짧게 했든, 하는 일이 어렵든 쉽든,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받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침부터 일한 사람에게나 저녁에 온 사람에게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시는 ‘예수님의 셈법’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남과 비교하고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님의 일은 남들보다 얼마나 더 열심히 했고 더 많은 성과를 냈느냐의 문제가 아니며, 오로지 주님과 맺은 관계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긴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 앞에서는 가장 초라할 수 있고, 인간의 눈에는 가장 보잘 것없는 일을 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 앞에서는 어느 무엇보다도 큰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봉사하는 마음은 무엇보다도 한 데나리온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상으로 자신이 한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한 것이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려놓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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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0주간 수요일(8/17)


      말씀의 초대
      요탐은 아비멜렉이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에게 우화적 표현으로 연설한다. 우화를 통해 요탐은 왕정 제도가 쓸데없음을 전하며 격렬하게 비판한 다음, 자기 형 아비멜렉을 피하여 브에르로 도망간다(제1독서). 하늘 나라는 부르심을 받은 시각이 아니라 부르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이른 아침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오후 다섯 시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다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주님께서는 어느 때이든 부르심에 응답하는 그 자체를 소중히 보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9,6-15 그 무렵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요탐에게 전하자, 그는 그리짐 산 꼭대기에 가 서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스켐의 지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그대들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포도나무에게 ‘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피정 강의에 초대받아 이해인 수녀님이 계시는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누구나 한번쯤은 수녀님 글을 읽거나 들어 보았을 정도로 교회 안팎으로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그날은 수녀님이 경비실에서 안내를 보는 소임을 맡은 날이었습니다. 오전 내내 경비실을 지키며 몇 편의 시를 쓰셨다며 행복해하셨습니다. 우리는 수도자들도 그가 가진 유명세나 능력만큼 특별한 대접이나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는 데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한 일이 크든 작든, 수도 생활을 오래 했든 짧게 했든, 하는 일이 어렵든 쉽든,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받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침부터 일한 사람에게나 저녁에 온 사람에게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시는 ‘예수님의 셈법’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남과 비교하고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님의 일은 남들보다 얼마나 더 열심히 했고 더 많은 성과를 냈느냐의 문제가 아니며, 오로지 주님과 맺은 관계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긴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 앞에서는 가장 초라할 수 있고, 인간의 눈에는 가장 보잘 것없는 일을 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 앞에서는 어느 무엇보다도 큰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봉사하는 마음은 무엇보다도 한 데나리온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상으로 자신이 한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한 것이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려놓게 하소서
    
     
    

  2. user#0 님의 말: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할때마다 느끼는 것은 ……
    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수 있는지…

    어떻게…

    하루종일 일한 사람과 하시간동안만 일한 사람의 품삯이 같은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계산법과 저의 계산법이 판이하게 틀린지….

    그러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감히
    엉검생신 당신의 마음까지 제 마음대로 하려는 못된 심성이…..
    저 라는 사람은 구제불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만의 극치인 저의 욕심과 건망진마음이 당신의 말씀까지 “토” 를 달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으면서 ……
    저에게만 인색한 사랑을 주신다고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남의 것만 크게 보이니….
    눈뜬 장님이 되어있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드니…..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쥐꼬리만큼은 있나봅니다
    당신께서 저만 바라봐 주시기를 기대하는 어린이만도 못한 쩨쩨한 저의 신앙심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게 보입니다
    아직은 저의 신앙이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꼴찌가 되지 않도록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자신의 능력과 신앙심을 과대포장하지 않으며 겸손하게 신앙인답게….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묵상하며


    ♬ 내 생애의 주님


  3. user#0 님의 말: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당신의 마음을 정말 알수 없을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왜냐구요?

    오늘복음말씀만해두요 주님!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왜 품삯이 같은지...
    왜 저만 손해를 보는지...
    왜 저 같이 미련한 사람은 당신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지...
    참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왜? 저만
    남들은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한 시간만 일하고서도...
    왜 저만
    하루종일 일하고 또 해도 품삯을 같이 받는지...
    설령 첫째가 꼴찌가 된다하더라도...
    따지고 싶습니다 주님!
    왜? 저만 불이익을 당하는지...
    저도 당신의 자녀가 맞습니까? 하고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닏다
    신앙생활을 한지가 언제인데...
    복음묵상을 한지가 언제인데...
    봉사활동을 한 사람이 맞는지...
    피정.성지순례.봉사.희생(비록 약간이지만)한 사람인지...
    영세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하루종일 일한 사람과 품삯을 
    같이 받았다고 억울하다고 말 할 자격이 있는지...
    아니었습니다 주님!
    쩨쩨하고 치사하기까지 한 저의 옹졸한 심성이 부끄럽습니다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왜? 무슨자격으로 따지고 억울하다고 하는지 생각하니
    믿음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신앙심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말씀의 의미를 깨달으며
    한 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하루 품삯 아니!
    평생품삯을 바랬던 저의 이기심과 세속의 욕심을 반성합니다
    남을 판단할 자격도 단죄할 자격도 저에게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할 일은  제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판단 할 자격은 저에게 없음을 깨달으며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당신의 마음을 정말 알수 없을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왜냐구요?
    오늘복음말씀만해두요 주님!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왜 품삯이 같은지...
    왜 저만 손해를 보는지...
    왜 저 같이 미련한 사람은 당신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지...
    참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왜? 저만
    남들은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한 시간만 일하고서도...
    왜 저만
    하루종일 일하고 또 해도 품삯을 같이 받는지...
    설령 첫째가 꼴찌가 된다하더라도...
    따지고 싶습니다 주님!
    왜? 저만 불이익을 당하는지...
    저도 당신의 자녀가 맞습니까? 하고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닏다
    신앙생활을 한지가 언제인데...
    복음묵상을 한지가 언제인데...
    봉사활동을 한 사람이 맞는지...
    피정.성지순례.봉사.희생(비록 약간이지만)한 사람인지...
    영세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하루종일 일한 사람과 품삯을 
    같이 받았다고 억울하다고 말 할 자격이 있는지...
    아니었습니다 주님!
    쩨쩨하고 치사하기까지 한 저의 옹졸한 심성이 부끄럽습니다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왜? 무슨자격으로 따지고 억울하다고 하는지 생각하니
    믿음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신앙심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말씀의 의미를 깨달으며
    한 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하루 품삯 아니!
    평생품삯을 바랬던 저의 이기심과 세속의 욕심을 반성합니다
    남을 판단할 자격도 단죄할 자격도 저에게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할 일은  제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판단 할 자격은 저에게 없음을 깨달으며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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