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목요일(10/13)


    말씀의 초대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다. 믿음에는 차별이 없듯이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도 차별이 없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죄의 멍에를 쓰고 사는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주님의 의로움으로 깨끗하게 되었다(제1독서).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호된 질책은 계속된다. 바리사이들은 주님의 말씀에 반성하거나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독한 앙심을 품고 예수님을 옭아맬 구실을 찾는다(복음).
    제1독서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3,21-30ㄱ 형제 여러분,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영된 적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그렇듯, 내용이 너무 어둡고 마치 실화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교회에 대한 이해가 아직 약한 신자들과 비신자들에게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중세의 한 수도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그곳 수도원장이 당시 종교 재판의 조사관이었던 윌리엄 수사에게 살인 사건을 조사하도록 의뢰합니다. 그런데도 살인이 계속되자 수도원 안은 묵시록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 나갈 정도로 온통 어둡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윌리엄 수사는 모든 살인 사건이 수도원의 장서관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끈질기게 수사를 하여 마침내 장서관의 비밀의 방에서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냅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수도원의 늙은 수사 ‘호르헤’였습니다. 호르헤는 수사들의 웃음과 풍자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없어지게 하여 기독교의 중심 사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웃음과 희극 풍자에 관하여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책의 책장마다 독극물을 발라 두었고, 그 책을 본 사람들은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그의 범행 동기를 파헤친 윌리암 수사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 이런 게 바로 악마야!” “소설은 거짓을 가지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전기는 진실을 가지고 허구를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의 내용은 거짓이지만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진실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종교적인 독선과 아집, 위선적이고 배타적인 행동,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호되게 나무라시는 것과 이 소설에서 주고자 하는 것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를 경계하고 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시편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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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8주간 목요일(10/13)


      말씀의 초대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다. 믿음에는 차별이 없듯이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도 차별이 없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죄의 멍에를 쓰고 사는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주님의 의로움으로 깨끗하게 되었다(제1독서).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호된 질책은 계속된다. 바리사이들은 주님의 말씀에 반성하거나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독한 앙심을 품고 예수님을 옭아맬 구실을 찾는다(복음).
      제1독서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3,21-30ㄱ 형제 여러분,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영된 적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그렇듯, 내용이 너무 어둡고 마치 실화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교회에 대한 이해가 아직 약한 신자들과 비신자들에게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중세의 한 수도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그곳 수도원장이 당시 종교 재판의 조사관이었던 윌리엄 수사에게 살인 사건을 조사하도록 의뢰합니다. 그런데도 살인이 계속되자 수도원 안은 묵시록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퍼져 나갈 정도로 온통 어둡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윌리엄 수사는 모든 살인 사건이 수도원의 장서관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끈질기게 수사를 하여 마침내 장서관의 비밀의 방에서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냅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수도원의 늙은 수사 ‘호르헤’였습니다. 호르헤는 수사들의 웃음과 풍자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없어지게 하여 기독교의 중심 사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웃음과 희극 풍자에 관하여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책의 책장마다 독극물을 발라 두었고, 그 책을 본 사람들은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그의 범행 동기를 파헤친 윌리암 수사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 이런 게 바로 악마야!” “소설은 거짓을 가지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전기는 진실을 가지고 허구를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의 내용은 거짓이지만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진실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종교적인 독선과 아집, 위선적이고 배타적인 행동,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호되게 나무라시는 것과 이 소설에서 주고자 하는 것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를 경계하고 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시편 71
    
    
    

  2. guest 님의 말: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주님!
    어제에 이어 경고를 하시는 당신의 말씀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왜냐구요? 주님!
    실천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으로야 얼마든지 잘 할수 있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음믿음이라고 하는데
    이론은 얼마든지 이해하고 깨닫고 잘 할수 있습니다
    문제는 행동이지요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요
    머리로 깨닫고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데 세속의 온갖 욕심과 이기심
    알량한 자존심(저의 착각)으로 지고는 못사는 못된 성격과 심성으로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결과가 나쁘면 제일 먼저 당신을 원망하는 못된 습관들이
    저의 신앙생활을 퇴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 머리로는 기가 막히게 잘 이해하고 깨닫고 하는데….

    주님!
    그래도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려는 마음은 아직은 있습니다
    그 쥐꼬리만한 마음으로 아직은 믿음이라고 말씀드리기엔
    양심이 찔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대신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하는 외인만도 못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쥐꼬리만한 마음으로 ….

    참으로 좋으신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저의 죄를 보지마시고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묵상하며

    >♬ You Raise Me Up / 패티김 & 성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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