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릴로 성인은 826(825)년경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은 뒤,
동생 메토디오 성인과 함께 모라비아의 복음 전파에 크게 공헌하였다.
두 성인은 자신들이 창안한 알파벳으로 전례서들을 슬라브 말로 번역하였다.
또한 두 형제는 862년 모라비아의 슬라브족 요청으로 다시 파견되어
3년 동안 머무르며 그곳 사람들을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워 냈다.
그 뒤 로마로 돌아가,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869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한편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다시 모라비아에 파견되어
헝가리의 판노니아를 함께 관할하는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885년 무렵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야고보 사도는, 시련을 우리 인생살이의 한 부분으로서 믿음을 키우고
인내를 기르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께 유혹을 물리칠 힘을 주십사고 청해야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경고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빵이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누룩 이야기를 하셨다고 생각한다.
제자들은 아직도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1,12-18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유혹을 받을 때에 “나는 하느님께
유혹을 받고 있다.” 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고,
또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21
그때에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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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2/14)
치릴로 성인은 826(825)년경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은 뒤, 동생 메토디오 성인과 함께 모라비아의 복음 전파에 크게 공헌하였다. 두 성인은 자신들이 창안한 알파벳으로 전례서들을 슬라브 말로 번역하였다. 또한 두 형제는 862년 모라비아의 슬라브족 요청으로 다시 파견되어 3년 동안 머무르며 그곳 사람들을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워 냈다. 그 뒤 로마로 돌아가,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869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한편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다시 모라비아에 파견되어 헝가리의 판노니아를 함께 관할하는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885년 무렵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야고보 사도는, 시련을 우리 인생살이의 한 부분으로서 믿음을 키우고 인내를 기르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께 유혹을 물리칠 힘을 주십사고 청해야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경고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빵이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누룩 이야기를 하셨다고 생각한다. 제자들은 아직도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1,12-18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유혹을 받을 때에 “나는 하느님께 유혹을 받고 있다.” 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고, 또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21 그때에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날 빵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은 매우 중요한 생활필수품입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누룩은 부패의 상징이었습니다. 곧, 누룩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부패의 근원이며, 일상생활에서는 불결하고 비속한 것을 뜻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은 하늘 나라의 비유 말씀(마태 13,33; 루카 13,20-21 참조)에 나오는 역동적인 순기능을 하는 누룩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생각한 부정적인 의미의 누룩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과월절 예식을 윤리적으로 해석하면서 묵은 누룩을 악의와 사악으로, 누룩 없는 빵을 순결과 진실로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1코린 5,6-8). 이처럼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묵은 누룩은 급속히 번져 가는 악을 뜻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킨다고 하면서 배타적이고 위선적으로 살았습니다. 한편 사두가이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식민 통치자인 로마 황제의 하수인이었던 헤로데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순수 민족주의자라고 말하던 바리사이들과 로마의 권력자와 타협하던 사두가이들은 서로 대립 관계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에 관해서는 같은 노선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삶의 바탕에는 위선과 교만, 부패와 탐욕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파도에 휩쓸리면 사라져 버리는 바닷가의 모래성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할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의지할 분은 누구입니까?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이 저에게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당신을 믿겠다고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당신을 믿기 보다는 저의 뜻대로...
당신을 사랑하기 보다는 제가 사랑받기를...
입으로는 겸손과 믿음과 봉사를 밥 먹듯이 떠들어대지만
정작 저의 마음 속에는 교만과 불신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남들보다 더 잘살아야 하고...
남들보다 더 잘나야 하고...
자선을 베푸는 것같이 보이고 싶어 안달을 하는 모습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세속에 얷매여 사는 찌들은 저의 모습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에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반성을 해보지만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고 복음을 묵상할 때만...
실생활로 돌아오면 세속에 찌들어 살고 있는 볼품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입으로는 깨달았다고 떠들고 싶지만...
사실 깨달았다면 저의 행동이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데 말 뿐이지요
사랑도 희생도 봉사도 믿음도 신앙생활도....
모두 다...
말 뿐이지요
입으로는 무엇이든지 다 하고 삽니다
복음묵상도 열심히 한다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겠다고...
봉사도 희생도 모두 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힘들고 어려 울때마다
당신께 의지하다가도 유혹에 빠져 미신행위를 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어느 때는 “딱 한번만” 눈 한번 질끈감고 “점”을 한번 볼까?
고해성사 한번 보면 되지 않을까?
등등...
아직도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직도 신앙의 참맛이 얼마나 큰지...
아직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헤로데의 누룩처럼 저의 말과 행동으로 다른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나 반성해보며
저의 누룩으로 상처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사랑으로
치유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누룩으로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사랑을
치유되기를 기도하며 당신의 사랑으로 저의 교만과 오만과
부족한 믿음을 반성하며 당신의 자녀답게 당신의 말씀으로
기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묵상하며
♬ 내안의 그빛 (Con Dios-서울대교구 연합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