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7/01)


    한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이 교황 주일에는 교황의 사목 활동을 돕고자 특별 헌금을 한다.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딸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기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오늘은 또한 교황 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황님께서 우리 교회를 더욱 훌륭히 이끌어 나가시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모든 피조물이 이롭도록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지만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풍요롭게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진 것을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 회당장의 간곡한 청을 듣고 그의 딸을 살려 주신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간절한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복음).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13-15; 2,23-24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의는 죽지 않는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줍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8,7.9.13-15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은 편안하게 하면서 여러분은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24.35ㄴ-43 그때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텔레비전에서 ‘가시고기’라는 작은 물고기의 일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시고기의 어미는 알을 낳기 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알을 낳고는 가시고기의 아비만 남겨 두고 떠납니다. 남은 아비 가시고기는 정성스럽게 알을 보살핍니다. 알이 부화하면 아비는 지쳐서 죽고, 새 끼들은 죽은 아비의 몸을 먹고 살아납니다. 이처럼 아비 가시고기의 마음에는 바다를 품은 큰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병든 딸을 둔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는 아비 가시고기처럼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십사고 간곡히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 함께 가시어 그의 딸을 살려 주십니다. 요즈음 시대에 아버지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마음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아버지는 바쁘고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할 시간이 없습니다. 함께할 기회가 적으니 자녀들의 고민이나 관심이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잠시 시간을 내어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달리다쿰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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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7/01)


      한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이 교황 주일에는 교황의 사목 활동을 돕고자 특별 헌금을 한다.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딸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기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오늘은 또한 교황 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황님께서 우리 교회를 더욱 훌륭히 이끌어 나가시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모든 피조물이 이롭도록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지만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풍요롭게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진 것을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 회당장의 간곡한 청을 듣고 그의 딸을 살려 주신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간절한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복음).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13-15; 2,23-24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의는 죽지 않는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줍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8,7.9.13-15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은 편안하게 하면서 여러분은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24.35ㄴ-43 그때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텔레비전에서 ‘가시고기’라는 작은 물고기의 일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시고기의 어미는 알을 낳기 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알을 낳고는 가시고기의 아비만 남겨 두고 떠납니다. 남은 아비 가시고기는 정성스럽게 알을 보살핍니다. 알이 부화하면 아비는 지쳐서 죽고, 새 끼들은 죽은 아비의 몸을 먹고 살아납니다. 이처럼 아비 가시고기의 마음에는 바다를 품은 큰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병든 딸을 둔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는 아비 가시고기처럼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십사고 간곡히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 함께 가시어 그의 딸을 살려 주십니다. 요즈음 시대에 아버지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마음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아버지는 바쁘고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할 시간이 없습니다. 함께할 기회가 적으니 자녀들의 고민이나 관심이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잠시 시간을 내어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달리다쿰 일어나라!!
    
    
    
    

  2. user#0 님의 말: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당신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저에게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친다해도 당신을 믿으며
    참고 견딜 수 있을텐데...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믿음이 없기에 
    당신의 말씀이 어느 때는 기쁘지만 어느 때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신께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어느 때는
    당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을 원망하고 돌아서다가도 저의 가슴이 아프다는 사실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깨닫습니다
    참 혼란스럽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께서 원하시는대로 살지 못하니....
    언제나 공수표만 날리고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원인은
    저에게 당신을 믿는 마음이 부족하다는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온전한 마음으로 믿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무조건 믿기보다
    저의 요구를 당신께서 정말 들어주실까하는 의심을 하기때문입니다
    저의 믿음이 보잘 것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당신의 말씀을 믿는 마음도...
    모두 다...
    믿지 않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믿음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실 그날을 위해 열심히 당신의 말씀을 믿으며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저의 이 다짐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병고를 맡아 주시고,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도다
    아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묵상하며


    ♬ 아침안개 눈 앞 가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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