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1/22)


    체칠리아 성녀는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랐다. 성녀의 생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260년 무렵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박해 시대 내내 성녀에 대한 신심이 널리 전파되었다고 한다. ‘체칠리아’라는 말은 ‘천상의 백합’이라는 뜻으로, 배교의 강요를 물리치고 동정으로 순교한 성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체칠리아 성녀는 음악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일곱 번 봉인된 두루마리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이외에 그 누구도 그 속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를 모른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 속의 온갖 고통의 의미를 드러내 보여 주실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시어 그 도성에 장차 일어날 일을 내다보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예루살렘 도성의 파괴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복음).
    제1독서
    <어린양은 살해되시고, 자신의 피로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5,1-10 나 요한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또는 ‘평화의 근원지’라는 뜻을 지닌 도성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아 계약의 궤를 그곳에 옮겨 왔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뒤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때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때가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때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고 안타까운 나머지 눈물을 흘리십니다. 실제로 기원후 70년,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성벽 일부만 남기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자식이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의 눈물을 닦아 드리는 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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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1/22)


      체칠리아 성녀는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랐다. 성녀의 생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260년 무렵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박해 시대 내내 성녀에 대한 신심이 널리 전파되었다고 한다. ‘체칠리아’라는 말은 ‘천상의 백합’이라는 뜻으로, 배교의 강요를 물리치고 동정으로 순교한 성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체칠리아 성녀는 음악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일곱 번 봉인된 두루마리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이외에 그 누구도 그 속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를 모른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 속의 온갖 고통의 의미를 드러내 보여 주실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시어 그 도성에 장차 일어날 일을 내다보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예루살렘 도성의 파괴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복음).
      제1독서
      <어린양은 살해되시고, 자신의 피로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5,1-10 나 요한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또는 ‘평화의 근원지’라는 뜻을 지닌 도성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아 계약의 궤를 그곳에 옮겨 왔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뒤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때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때가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때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고 안타까운 나머지 눈물을 흘리십니다. 실제로 기원후 70년,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성벽 일부만 남기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자식이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의 눈물을 닦아 드리는 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2. guest 님의 말: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

    요즈음 우리본당에서
    “새 가족 찾기 선교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9일기도를 비롯하여 성체조배. 구역별 선교활동 금식등…
    하지만 저는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
    핑계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내는 약간의 봉헌금으로 신앙생활을 다한 것처럼
    사실 양심은 찔리지만 …..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

    그리고 참 뻔뻔한 것은 제가 할 일을 남편한테 대신하라고
    협박까지 미사와 기도 활동까지 모두 다~~~~
    복음을 묵상하려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즈음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될까? 생각해보니
    모두가 핑계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
    혼자만 바쁘고 혼자만 힘들고 괴롭고ㅠㅠㅠ 더도 덜도 말고
    지금보다 쬐끔만 아주 쬐끔만이라도 철이 들면 좋을 텐데
    당신의 마음을 쬐끔은 덜 아프게 해드릴텐데...
    하는 반성이 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불효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최소한 당신의 말씀을 기본만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세속적인 저의 마음으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는
    않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늘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아멘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묵상하며


    ♬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3. user#0 님의 말: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

    요즈음 우리본당에서
    “새 가족 찾기 선교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9일기도를 비롯하여 성체조배. 구역별 선교활동 금식등…
    하지만 저는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
    핑계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내는 약간의 봉헌금으로 신앙생활을 다한 것처럼
    사실 양심은 찔리지만 …..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

    그리고 참 뻔뻔한 것은 제가 할 일을 남편한테 대신하라고
    협박까지 미사와 기도 활동까지 모두 다~~~~
    복음을 묵상하려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즈음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될까? 생각해보니
    모두가 핑계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
    혼자만 바쁘고 혼자만 힘들고 괴롭고ㅠㅠㅠ 더도 덜도 말고
    지금보다 쬐끔만 아주 쬐끔만이라도 철이 들면 좋을 텐데
    당신의 마음을 쬐끔은 덜 아프게 해드릴텐데...
    하는 반성이 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불효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최소한 당신의 말씀을 기본만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세속적인 저의 마음으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는
    않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늘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아멘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묵상하며


    ♬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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