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20)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아하즈에게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전한다. 이 예언은 마리아를 통한 메시아의 탄생을 암시하는 것이다(제1독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마리아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천사의 말을 믿고,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응답한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0-14 그 무렵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부모의 눈에는 자기 자녀가 가장 소중합니다.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설령 잘생기지 못했어도 그렇습니다. 부모의 마음에 담겨 있는 사랑 때문입니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내 안에 꽃이 자라나야 한다.” 돈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꽃을 보면 ‘저건 얼마짜리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아름다운 마음이 없다면 꽃을 보아도 무덤덤합니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사람 마음에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사람을 그림으로 그릴 때에는 고약하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모님을 묘사한 예술 작품은 모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모님께 담겨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사심(私心)을 조금도 품지 않으셨습니다. 성모님의 관심은 오직 하느님의 뜻이었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모든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만을 추구하며 사신 성모님에게서 발견한 최고의 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향기처럼 그 삶의 향기가 퍼져 나갑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이 세상이 선해서 내가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내가 모여 세상을 선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아름다운 마음을 키울 때, 그것이 이웃에게 전해지고, 결국 세상에 이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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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20)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아하즈에게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전한다. 이 예언은 마리아를 통한 메시아의 탄생을 암시하는 것이다(제1독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마리아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천사의 말을 믿고,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응답한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0-14 그 무렵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부모의 눈에는 자기 자녀가 가장 소중합니다.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설령 잘생기지 못했어도 그렇습니다. 부모의 마음에 담겨 있는 사랑 때문입니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내 안에 꽃이 자라나야 한다.” 돈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꽃을 보면 ‘저건 얼마짜리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아름다운 마음이 없다면 꽃을 보아도 무덤덤합니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사람 마음에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사람을 그림으로 그릴 때에는 고약하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모님을 묘사한 예술 작품은 모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모님께 담겨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사심(私心)을 조금도 품지 않으셨습니다. 성모님의 관심은 오직 하느님의 뜻이었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모든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만을 추구하며 사신 성모님에게서 발견한 최고의 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향기처럼 그 삶의 향기가 퍼져 나갑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이 세상이 선해서 내가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내가 모여 세상을 선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아름다운 마음을 키울 때, 그것이 이웃에게 전해지고, 결국 세상에 이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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