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연중 제3주간 화요일(1/29)


    말씀의 초대
    율법에 따라 바친 제물을 통해 얻게 되는 죄의 용서는 1년간의 효력밖에 지니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번제물과 속죄 제물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고자 자신을 제물로 삼아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는 영원한 효력을 지니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定義)를 내리신다. 혈육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믿고 실행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인 것이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성모님과 인연을 끊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성모님을 뒤로하신 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고 하시는 모습이 예수님마저도 성모님에 대한 공경이 무의미한 것임을 밝히셨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형제’, ‘누이’, ‘어머니’라고 선포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복음 전체에서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실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질 것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또한 이집트로 떠나라는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였으며,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5)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아들 예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실행하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 말씀을 성모님께 적용하면 그분이야말로 제대로 된 예수님의 형제, 예수님의 누이,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모님께서는 단지 혈연적인 관계로만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신앙의 이유로도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신앙으로도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모범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Alma redemptoris Mater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주간 화요일(1/29)


      말씀의 초대
      율법에 따라 바친 제물을 통해 얻게 되는 죄의 용서는 1년간의 효력밖에 지니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번제물과 속죄 제물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고자 자신을 제물로 삼아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는 영원한 효력을 지니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定義)를 내리신다. 혈육으로 말미암은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믿고 실행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인 것이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성모님과 인연을 끊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성모님을 뒤로하신 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고 하시는 모습이 예수님마저도 성모님에 대한 공경이 무의미한 것임을 밝히셨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형제’, ‘누이’, ‘어머니’라고 선포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복음 전체에서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실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질 것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또한 이집트로 떠나라는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였으며,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5)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아들 예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실행하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 말씀을 성모님께 적용하면 그분이야말로 제대로 된 예수님의 형제, 예수님의 누이,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모님께서는 단지 혈연적인 관계로만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신앙의 이유로도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신앙으로도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모범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Alma redemptoris Mater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