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사순 제1주간 수요일(2/20)


    말씀의 초대
    요나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니네베를 단 하루만 걸으며 소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에 응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인 니네베는 놀랍게도 임금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곧바로 회개한다(제1독서). 요나의 소극적인 선포에도 니네베 사람들은 회개하였으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서도 군중은 새로운 표징을 요구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표징에 앞서 회개하는 마음을 요구하신다(복음).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은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과 당신 시대의 군중을 견주십니다. 니네베는 북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의 수도입니다. 그러니 니네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입니다. 요나는 그러한 원수들을 위해 예언하고 싶지 않아서,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그 도시에서 단 하루만 걸으며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하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극적인 선포에도 니네베 사람들은 곧바로 회개합니다. 그것도 임금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자루옷을 입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참으로 적극적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군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니네베 사람들과 다른,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요나와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시고, 여러 가지 표징까지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듣고도 제대로 듣지 못하였고, 그러한 표징을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계속해서 표징을 요구합니다. 소극적인 선포에도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린 니네베 사람들과 적극적인 복음 선포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예수님 시대의 군중이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더 가깝습니까? 혹시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말씀과 표징을 듣고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순 시기의 여정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Allegri - Miserere mei d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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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1주간 수요일(2/20)


      말씀의 초대
      요나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니네베를 단 하루만 걸으며 소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에 응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인 니네베는 놀랍게도 임금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곧바로 회개한다(제1독서). 요나의 소극적인 선포에도 니네베 사람들은 회개하였으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서도 군중은 새로운 표징을 요구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표징에 앞서 회개하는 마음을 요구하신다(복음).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은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과 당신 시대의 군중을 견주십니다. 니네베는 북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의 수도입니다. 그러니 니네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입니다. 요나는 그러한 원수들을 위해 예언하고 싶지 않아서,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그 도시에서 단 하루만 걸으며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하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극적인 선포에도 니네베 사람들은 곧바로 회개합니다. 그것도 임금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자루옷을 입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참으로 적극적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군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니네베 사람들과 다른,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요나와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시고, 여러 가지 표징까지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듣고도 제대로 듣지 못하였고, 그러한 표징을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계속해서 표징을 요구합니다. 소극적인 선포에도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린 니네베 사람들과 적극적인 복음 선포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예수님 시대의 군중이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더 가깝습니까? 혹시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말씀과 표징을 듣고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순 시기의 여정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Allegri - Miserere mei d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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