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히즈키야 임금은 자신이 병사할 것이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 슬퍼하며 자비를 간구한다.
주님께서는 히즈키야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그의 수명을 더해 주시며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 있는 도성을 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과 함께 밀밭을 지나가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에 바리사이들이 이를 두고 예수님께 항의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이 성전에서
제사 빵의 규정을 어기고 먹은 사례를 드시며 그들을 논박하셨다.
그리고 당신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8,1-6.21-22.7-8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이사야가 “무화과 과자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발라 드리면,
임금님께서 나으실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히즈키야가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이것은 주님이 말한 일을 그대로 이룬다는 표징으로서,
주님이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보라, 지는 해를 따라 내려갔던 아하즈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내가 열 칸 뒤로 돌리겠다.”
그러자 아하즈의 해시계 위에 드리워졌던 해가 열 칸 뒤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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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 금요일(7/07)
말씀의 초대
히즈키야 임금은 자신이 병사할 것이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 슬퍼하며 자비를 간구한다. 주님께서는 히즈키야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그의 수명을 더해 주시며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 있는 도성을 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과 함께 밀밭을 지나가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에 바리사이들이 이를 두고 예수님께 항의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이 성전에서 제사 빵의 규정을 어기고 먹은 사례를 드시며 그들을 논박하셨다. 그리고 당신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8,1-6.21-22.7-8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이사야가 “무화과 과자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발라 드리면, 임금님께서 나으실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히즈키야가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이것은 주님이 말한 일을 그대로 이룬다는 표징으로서, 주님이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보라, 지는 해를 따라 내려갔던 아하즈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내가 열 칸 뒤로 돌리겠다.” 그러자 아하즈의 해시계 위에 드리워졌던 해가 열 칸 뒤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세상은 예수님의 이름을 그리 낯설게 여기지 않습니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현대인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제법 익숙합니다. 기나긴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축적된 신학, 미술, 건축, 문학, 영화, 철학 등 인류의 문화유산에는 그분에 대한 이야기와 해석들이 가득 담겨 있고, 대중 매체는 사람들이 이를 손쉽게 대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나 그분의 활동을 수시로 듣고 보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달으려는 노력에 오히려 더 소홀하지는 않을까요? 그분에 대해 익숙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더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문자로 쓰인 법이 올바른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 곧 당신께 행위의 참됨이 달려 있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율법 규정 자체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서 보여 주시는 행적을 통하여 사람을 살리는 자비의 진리가 드러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를 ‘절대적’ 신뢰로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규정도, 거룩한 성전조차도 삶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고, 살아 계시는 주님 앞에서 상대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유한한 진리가 진리 자체이신 분을 가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진리 밖에 있다 하더라도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남는 쪽을 택할 것’이라는,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유명한 말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을 이처럼 절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은 그분께서 진리 자체이시라는 근본적 신뢰에서 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며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안식일의 주일이 예수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라는 생각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아니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적당히 세속과 타협도 하고 그러다
가끔씩 피정이나 성서공부를 할 때 회개하는 척도 하고
자신의 신앙생활이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하였습니다 세속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그럴 둣한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쭈~~~~~욱
복음을 묵상하면서
참 편리한대로 신앙생활을 했다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가끔씩은 존중하는 척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도 하면서
적당히 세속과...
정말 얼마나 타협과 핑계를 잘 대었는지 마술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제가 생각한 것을 특히 신앙생활은 영생을 얻게 되는 길인데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잘도 한 것같습니다
그러면서 세속의 일들은 왜 그렇게 힘들다고 엄살을 피웠는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어렵고 온통 힘들다는 생각만 하며 살았지요
신앙 안에서 보면 잘 풀렸을텐데....
혼자서 세상 고민 다 갖고 있는 사람처럼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말씀을 성찰하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께서 바라시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힘들고 지친 저의 영혼을 당신께 맡기며
당신께서 바라시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해야 한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더도 덜도 말고 기본만이라도 충실히 하는 신앙인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묵상하며
♬ 자캐오나무-그대 사랑에 눈뜰 때